노동·돌봄·정치…시간 다루는 건 권력

2023.11.10 20:28 입력 2023.11.10 20:29 수정

[책과 삶] 노동·돌봄·정치…시간 다루는 건 권력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테레사 뷔커 지음 | 김현정 옮김
원더박스 | 400쪽 | 2만원

‘저녁이 있는 삶’은 한국 선거사를 통틀어 손꼽힐 만큼 매력적인 슬로건이었다. 이 슬로건이 울림을 준 이유는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 활용하고픈 저녁 시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테레사 뷔커는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기본 전제로 논의를 시작한다. 생각대로 삶을 살 가능성은 각자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뷔커는 시간의 분배, 사용, 측정의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 정의의 문제로 확장한다. “시간을 다루는 것은 언제나 권력의 문제다.”

뷔커는 노동 시간, 돌봄 시간, 정치를 위한 시간 등 시간의 여러 양태들과 그 속성을 분석한다. 한국에서 도입이 논의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가난한 나라의 가족을 해체하여 자신의 부와 안락함을 창출하는 부유한 국가의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이라고 본다. 현대 정치 제도의 문제점도 시간과 관련해 지적한다. 직업 활동을 멈추고 선거 운동에 뛰어들기 위해선 돈과 시간이 많아야 한다. 돈과 시간이 없는 청년, 장애인 등 소수자들은 정치에 뛰어들 수 없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는 의회에서 들리지 않는다.

뷔커는 시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학계에서 논의된 몇 가지 낯선 모델을 제시한다. 8시간의 수면 시간을 제외한 16시간을 각각 유급노동, 돌봄, 문화 활동, 정치 활동에 4시간씩 할당하는 모델, 모든 사람에게 안식년 같은 9년의 선택적 시간을 제공하는 모델 등이다. ‘유토피아적’이라는 비판에 저자는 반박한다. “유토피아를 달성할 수 없는 것, 너무 크고 먼 미래의 일로 해석하면 지금의 권력 관계를 뒤흔들 수 없다. (…) 정의로운 사회는 고정된 어떤 지점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되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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