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일기를 읽는다]15. 기상관측과 특징

2006.12.04 18:04

기상정보가 담긴 광해군 7년(1615)은 8월의 승정원 일기 초고.

기상정보가 담긴 광해군 7년(1615)은 8월의 승정원 일기 초고.

현존하는 승정원일기(이하 일기)에는 개인 일기와 마찬가지로 매일의 날짜 아래 그날의 날씨 정보가 적혀 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인조 원년부터 영조 52년 5월까지 기록된 날씨 변화는 대략 114종이다. 흐림(陰) 맑음(晴) 비(雨) 눈(雪) 등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의 종류에도 흙비(매), 안개비(비), 가랑비(細雨), 부슬비(灑雨), 소나기(驟雨), 종일비(雨終), 계속 비(雨達不止), 잠깐 비(乍雨) 등으로 당시의 기상 상태를 세밀하게 알려준다.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의 기상 정보가 이상 기후가 있던 날에 제한되어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2006년 11월에는 비나 눈이 내린 날이 9일간이었고, 맑은 날이 18일, 흐린 날이 3일이었다. 일기에서 300년 전인 숙종 32년(1706) 11월 한달 동안의 날씨를 보면 맑은 날이 24일, 흐린 날이 6일로서 비나 눈이 온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 전해인 숙종 31년을 보아도 비온 날이 6일이었으며 숙종 33년은 아예 비온 날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오늘날에 비해 숙종 연간 서울의 날씨가 매우 건조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일기는 국왕이 직접 집무하지 않고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는 기간에는 국왕의 일기와 세자의 일기 두 종이 작성되었기 때문에 천문기록을 파악하는 데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조선후기에 비가 가장 많이 온 해 중의 하나는 영조 37년(1761)으로 비나 눈이 온 날이 130일이나 되었다. 그런데 이 해는 정조가 대리청정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해에는 영조가 머물던 경희궁과 세자가 집무하던 창덕궁에서 관측한 천문기록이 모두 기재되어 있다. 예컨대 그해 1월7일 경희궁에서 본 날씨는 ‘혹음혹청’인데 비해 창덕궁의 날씨는 ‘맑음’으로만 되어 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의 기상 관측에도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까닭은 아마도 관측 시간의 차이나 당시 이상 징후가 빈번하게 출현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기를 통해 당시의 기상 현황을 추적하는 데는 그만큼 다양한 변수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어려움 또한 동시에 알려준다. 일기의 이런 날씨 정보를 면밀히 이용한다면 최근 학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17세기 이후 소빙기 이론에 대한 좀더 정확한 검증이 가능해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뿐이 아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요, 국왕의 건강이 곧 국운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하에 승정원일기는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하늘의 별자리 이동을 자세하기 기록했다. 예컨대 “숙종 22년 10월4일(정해일) 5경(五更)에 유성이 필성의 아래에서 나오더니 남쪽 하늘가로 들어갔다. 생김새는 주먹을 닮았고 꼬리 길이는 2~3척 정도가 되었으며 색깔은 붉었다”는 특이한 유성의 출몰이나 “오시부터 신시까지 햇무리가 끼다. 초저녁에 붉은 기운이 서방으로부터 나타나더니 곧바로 곤방으로 향해가다. 길이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는데 넓이는 수척에 달하였다. 한참 있다가 사라졌다”는 다양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양력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승정원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정확한 표현은 비서원일기)에는 고종 건양 원년 을미(1895) 11월17일 끝에 ‘양력 1월1일’이라고 병기되어 있는데 이렇게 시작된 음력과 양력 병기는 순종 융희 원년(1907) 10월25일(양력 11월30일 토요일)까지 지속되다가 그 다음날부터는 ‘융희 원년 12월1일 일요일(음력 정미 10월26일 병신)’이라 양력을 먼저 쓰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양력은 1895년 11월17일부터 도입된 뒤 12년여 만에 1,000년 넘게 쓰이던 음력을 대체한 것이다. 모쪼록 승정원일기의 대단히 독특하고 귀중한 자료인 날씨 정보를 이용해 조선후기 역사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박한남/국사편찬위원회 자료정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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