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닿지 않는 곳에 책 꽂아놓고 “완전 개가식”

2014.06.01 21:27

출판도시문화재단 파주 ‘지혜의 숲’ 개관

24시간 무료 개방…“시민들의 공간으로”

경기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열린도서관 지혜의 숲’(사진)이 오는 19일 문을 연다. 출판단지 내 지식연수호텔 지지향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의 로비를 연결한 공간에 문을 여는 ‘지혜의 숲’이 다른 도서관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개방성’이다. 운영 시간은 24시, 운영 방식도 완전 개가식이다. 24시간 서가를 자유롭게 오가며 책을 골라 볼 수 있다. 재단은 하반기부터 인문학 강좌, 북콘서트 등 문화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지난달 28일 진행한 ‘지혜의 숲’ 언론 공개 행사 때 재단 이사장인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우선 내세운 점도 개방성이다. “다른 도서관에선 책 좀 읽으려고 하면 문을 닫잖아요.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읽게 하자, 과감하게 문을 열자고 했지요.”

손 닿지 않는 곳에 책 꽂아놓고 “완전 개가식”

재단이 출판사와 개인 기증을 받아 확보한 도서 50만권 가운데 20만권을 우선 비치했다. 중소 도시 도서관의 장서 수와 비슷하다. 8600㎡(2600평) 규모에 서가 길이는 3.1㎞다. 서가는 3개의 섹터로 나뉘었다. 1섹터 출판사 도서 코너에선 30개 주요 출판사의 대표작과 신간을 볼 수 있다. 학자·연구자 등 개인 24명이 기증한 도서로 꾸린 2섹터는 ‘지혜의 숲’의 특징을 보여준다. 김 대표는 “학자, 연구자들의 수십년간 독서 이력과 세계관, 관심 사항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영어, 불어, 독어, 일어 자료도 많다. 재단은 기증자들의 이름표를 책꽂이에 붙일 계획이다. 3섹터는 출판사·유통사의 기증 도서로 채워졌다. ‘지혜의 숲’ 조성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7억원이 들었다.

‘열린도서관 지혜의 숲’이 일반 도서관과 다른 점은 몇 가지 더 있다. 총류부터 철학-종교 순으로 이어지는 10진 분류법이나 가나다순을 따르지 않는다. 개인 기증 도서의 경우 별 기준 없이 비슷한 크기의 한국 책과 외국책이 뒤섞여 꽂혀 있다. 도서 검색 기능도 갖추지 않았다. 원목 재질에 2층 높이의 서가는 고급스럽고 웅장한 느낌을 주지만, 팔이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꽂힌 책들은 장식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벌써 ‘책의 납골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김 대표는 “책을 분류하고 빌려주는 기존 도서관과 차원이 다르다”면서 “대학 도서관조차 보존 공간을 못 구해 기증 책을 못 받는 실정에서 종이책이 오갈 데가 없다. ‘지혜의 숲’은 종이책 수명을 연장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혜의 숲’ 건립 취지가 애초 종이책을 보호·보존하려는 지식의 리사이클링 운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책이 방대해 목록을 다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 다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책만 우선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지혜의 숲’에는 사서를 두지 않는다. 대신 권독사(勸讀士·책과 독서를 권하는 사람)란 이름의 자원봉사자를 최근 30명 모집했다. 수장 도서 내용을 방문객들에게 안내하고 독서를 권유하는 역할이다. 이들은 하루 4~6시간씩 교대로 일하게 된다. 24시간 개방에 20만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무보수의 자원봉사자로 꾸려나가게 된다. 재단은 교통비와 식사비 1만원만 주기로 했다. 계약직, 비정규직이나 해고 같은 노동 소외가 고질인 한국 사회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식과 지혜, 책의 유토피아를 내걸며 만든 열린도서관의 고용 형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출판계 일각에서 이미 나온다. 한 출판인은 편집자 없는 출판사에 비유한다.

김 대표는 “이 넓은 공간을 관리하는 비용은 엄청나다. 다 감당 못한다”며 “ ‘지혜의 숲’은 책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중추가 되어 끌고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권독사의 헌신적인 참여로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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