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읽는 한국인의 삶

(8) 한국 통신 역사 130년, 전화기

2015.11.20 19:32 입력 2015.11.20 20:02 수정
조현신 |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 자료: KT 통신역사전시관 갤러리 130, 국립중앙과학관

여보세요, ‘LTE’ 니? 지금 거긴 행복하니?

현대의 제품 디자인은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기계문명과 쌍생아이다. <기계화는 명령한다(Mechanization Takes Command)>라는 지그프리트 기디온의 책 제목처럼 현대 디자인의 역사는 기술의 메커니즘과 일상을 맺어주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화기는 통신 기술의 마지막 기기라는 뜻으로 단말기라 하는데, 자연히 이 뒤에는 이를 생산하는 산업시스템과 송신탑, 기지국, 케이블, 교환기 등 복합적인 정보통신기술과 기기가 작동하고 있다. 마치 사람의 얼굴이 몸의 상태를 보여주듯 이러한 전자네트워크의 얼굴이기도 한 전화기는 한국 현대 통신 역사 130년의 여정을 보여준다.

■연금술적 디자인의 변형들

에릭슨 전화기(1892년·스웨덴 에릭슨사)

에릭슨 전화기(1892년·스웨덴 에릭슨사)

한국 최초의 전화기는 1896년에 덕수궁과 인천 사이에 개통되었으며, 텔레폰의 음역(音譯)인 덕률풍(德律風), 다리풍, 전어기(傳語器) 등으로 불렸다. 이 전화기는 스웨덴의 에릭슨사가 1892년에 만든 것이다. 개통 3일 후에는 일본 순사를 죽인 죄목으로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22살의 청년 김구를 석방하라는 고종의 어명이 이를 통해 전달되었고, 순종은 고종의 승하 후 봉분에 수화기를 대고 곡을 하며 3년간 매일 아침문상을 드렸다고 한다. 수화기 거치대와 다리의 곡선, 벨과 핸들의 깔끔한 원, 작은 장식 등이 철제의 물성을 완화하면서 유려한 형태미를 보이고 있다. 이 디자인은 과도한 장식으로 뒤덮인 재봉틀이나 회전의자 등 근대 기계의 조잡한 디자인들과 대조되는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 이렇게 차가우면서도 단정한 공예적 미학의 제품들은 후에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로 규정된다.

벽걸이 자동식 전화기(1935년·일본전기)

벽걸이 자동식 전화기(1935년·일본전기)

1935년에는 자동식 교환기가 설치되고, 최초의 다이얼 전화기가 들어와 해방 이후까지 사용되었다. 나무판은 벨, 송화기, 다이얼의 차가운 재질감을 완화하고 있다. 소리를 모으고 보내는 형상을 지닌 수화기, 돌리는 행위만이 가능한 다이얼, 신호를 만들어내는 종모양 등을 통해 기능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화기를 걸어 놓고 동력을 돌린 행위에서 “전화를 건다”, “따르릉”이라는 전화 벨소리, “전화를 돌린다” 등의 어휘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이 디자인은 형상을 통해 그 기능을 추정할 수 있고, 자연의 물성이 노출되어 있기에 친근감을 준다. 근대기술 문명이 대중에게 확산되던 이 시기는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대로 자연물을 변형시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던 ‘연금술의 시대’였고, 형태는 기능을 따르던 시대였다. 이 디자인은 이러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용건만 간단히’-기능주의 디자인의 전형

체신 1호 자동식 전화기(1974년·체신부가 개발하고 동양정밀이 제작)

체신 1호 자동식 전화기(1974년·체신부가 개발하고 동양정밀이 제작)

1960년대 전화 가입자는 9만5000명이었지만 대부분 교환원을 거쳐야 하는 수동식 전화 가입자였다. 1974년 체신부가 자체적으로 자동식 전화기 ‘체신 1호’를 개발했고 동양정밀에서 제작했다. 전화가 개통된 이래 1980년대까지 전화기는 가입자의 선택이 아니었고 체신부가 빌려주는 형식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 디자인의 원형은 1937년 미국 AT&T사의 전화 300형으로 영국 디자이너 헨리 드레퓌스가 디자인한 것이다. 무게, 크기, 안전성, 편리성 등을 고려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디자인했으며 박스 안으로 벨이 숨고, 표면에는 다이얼과 수화기만 보이는 초기능적인 디자인이다. 일본에서 1963년 이를 참조해 몸체가 둥근 600형 전화기를 만들었고, 이 디자인이 한국에 와서는 몸체가 더 납작해지면서 윗부분이 사선으로 흐르는 네모 박스로 변형된 것이다. 또한 검은색은 모든 색을 흡수해 생기는 물리적인 속성상 무거운 분위기를 줄 수밖에 없고, 권위적이며, 힘을 나타내는 색이다. 체신부에서 빌려주던 이 사각형의 까만 플라스틱 전화기에서 1960~1970년대 산업을 위한 성장과 효율, 집단을 강조하는 권위적인 이미지가 풍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전화기에는 대부분 ‘용건만 간단히’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귀부인 R형 전화기(1982년·동양정밀)

귀부인 R형 전화기(1982년·동양정밀)

1981년 1월 ‘전화기자급제’(자유화)가 실시되면서 전화 단말기를 가입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동양정밀, 태흥정밀, 금성, 삼성, 현대 등이 주로 생산했는데 대부분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하거나 조금씩 변형했다. 이제 전화기들은 ‘듀크’ ‘귀부인’‘모드랑’ ‘물망초’ ‘수선화’ ‘너와 나’ 등의 이름을 달고 백화점에 다른 전자제품들과 나란히 진열되었다. “색상과 디자인이 마음에 꼭 들어요” “대화를 이어주는 다정한 벗” 등의 광고카피도 등장했다. 드디어 전화가 필요한 용건의 전달만이 아닌 잡담과 대화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1978년 등장한 주황색과 초록색의 주화식 공중전화기는 1983년 시외겸용 디디디 전화기, 카드 공중전화기가 나오면서 은색의 각진 박스형으로 변경되었다. 실체를 알지 못하는 미래, 기술의 색으로 정체불명의 중성인 회색이 선택된 것이다. 이후 밤거리에서도 홀로 불을 밝힌 공중전화 박스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어지고 싶은 인간의 접속본능을 상징하면서, 수많은 사연을 만들어냈고 노랫말과 소설 등에도 자주 등장했다.

체신 701-A형 공중전화기(1978년) | 차세대 공중전화기(1991년· 한국통신)

체신 701-A형 공중전화기(1978년) | 차세대 공중전화기(1991년· 한국통신)

■발생술 시대의 디자인-‘언제 어디서나’를 위하여

일반 전화기가 연금술의 시대를 상징한다면, 모바일 전화기는 ‘발생술 시대’의 디자인이다. 정보혁명을 상징하는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1981년을 기점으로 또 하나의 세계, 즉 전자네트워크의 가상공간이 발생했다. 과거 물리학과 생물학의 시대를 벗어난 생명공학, 신경공학과 정보공학 등 뉴 테크놀로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발생기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삼성 SCH-100(1996년·삼성전자) | 다이나택 8000S<br />(1988년· 모토롤라)

삼성 SCH-100(1996년·삼성전자) | 다이나택 8000S
(1988년· 모토롤라)

1983년 모토롤라가 개발한 최초의 휴대폰 다이나택이 1988년 한국에 출시되면서 한국 휴대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이나택은 700g에 240만원이었지만 호응이 대단했다.

삼성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96년 디지털 방식의 휴대폰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것이 국산 모바일폰의 효시다. 그 해 4월1일부터 시작된 디지털 011 광고는 ‘언제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누구와도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LG KP 8400<br />(2004년· LG)

LG KP 8400
(2004년· LG)

음성통화만 가능했던 1세대 (1G, 1984~1999) 최초의 모바일 전화기는 막대형(bar) 디자인이었고 무게가 700g에 이르렀다. 송수화기도 없어지고 번호키만 보인다. 하지만 이 바형을 절반으로 접고 무게도 절반으로 줄인 303g의 모토롤라 스타택 950이 이 시대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2G(1996~)부터 메일과 문자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청각기기였던 전화기에 시각이 끼어들고, 자연히 액정의 크기가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크게, 얼마나 선명하게 전달하느냐를 해결하기 위해 숫자 버튼과 디스플레이 화면이 분리되면서 폴더형과 슬라이드형 디자인이 출시되었다. 이후 비음성 정보인 동영상, 영화, 게임 콘텐츠가 제공되고,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3G(2007~)부터 스마트폰으로 불리는데 이는 ‘전화기능이 있는 소형 컴퓨터’로 규정된다. 전화기라고 불리지만, 사실 통화는 접속의 한 양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삼성 갤럭시 SⅢ SHV-E210S(2012년·삼성전자)

삼성 갤럭시 SⅢ SHV-E210S(2012년·삼성전자)

이후 스마트폰의 모든 외형 디자인의 화두는 액정의 크기였다. 아이폰의 디자인을 본뜬 외형을 두고 모방논쟁이 벌어져 모서리가 둥근 것이 특허가 될 수 있느냐를 놓고 소송까지 일어났다. 사실 터치폰은 2007년 LG의 프라다폰이 효시로, 터치 버튼을 화면 속으로 숨기면서 시작되었지만 이는 2세대 디자인에서 키판의 형식만 바꾼 것이었다.

이후 모든 전화기는 터치폰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4G(2011~)부터는 속도와 선명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모바일폰은 ‘더 가볍고, 더 슬림하고, 더 큰 화면’을 목표로 하면서 현재는 몸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웨어러블 디자인이 목표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본질인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거의 양분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TDX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국은 초기의 모토롤라, 노키아를 넘어 전 세계 모바일폰 기기시장을 석권했지만, 이제 이 시장은 중국의 가파른 성장 속에서 다시 지각변동 중이다.

이렇게 접속의 인터페이스인 전화기는 기나긴 여정 끝에 인터랙션을 유발하는 정직한 인터페이스의 시대를 지나 모든 인터페이스가 안으로 숨어버린 역사를 보여주며, 동력 공급이 안되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해독도 불가능한 작은 기기로 귀결되었다. ‘휴대폰으로 안되는 게 없다’는 기사가 나온 1999년, TTL 광고의 “너 행복하니?” 카피에는 묘하게도 모바일 시대를 향한 은유적인 울림이 담겨 있다.

올해 2월 기준 한국의 LTE 가입자 수는 30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 하지만 접속 순간 ‘지금, 여기’는 사라지고 우리의 몸은 단지 접속을 위한 터미널로 변한다.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기에 특정 장소성이 사라지고, 언제나 접속할 수 있기에 특정 시간도 사라진다. 유선의 끝, 그 접속점을 떠날 수 없어 울면서도 통화해야 했던 길거리의 공중전화, 깊은 밤 거실의 한 귀퉁이에서 부모님께 들킬까 숨죽이며 통화하던 그 장소와 시간은 이제 까마득하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행복을 바라며 네트워크에 와이어드(wired)하지만, ‘지금, 여기’는 사라지고 오로지 뇌파만이 작동하는 그 전자공간에서 우린 진정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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