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2016.04.29 19:41 입력 2016.04.29 19:56 수정
글 한윤정 선임기자 사진 박기호 사진가

소설가 조경란 ‘봉천동 서재’

‘세상에 이렇게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지명이 다 있을까. 어휴, 내 이름이 조봉천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사람들은 봉천동, 하면 우선 판자촌을 떠올린다. … 나는 봉천동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봉천동에 산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와 내 가족의 궁핍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느낌이기 때문이다.’(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울 관악구 봉천동은 중앙동을 거쳐 지금은 은천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봉천동이 가난한 동네라는 선입견을 준다고 해서 중앙동이란 무덤덤한 이름을 얻었고, 다시 도로명 주소가 덧씌워졌다. 그러나 이렇게 지명이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나 자란 ‘봉천동’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지은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에서 2층으로 서재를 옮겼을 뿐, 자신의 삶이 된 많은 책장과 책상을 끌어안고 문학과 함께 살아간다.

작가 조경란씨(47)의 하루는 오후 1시에 시작된다. 이때 일어나서 남들 기준으로는 하루 한 끼밖에 안 먹는 식사를 하면서 세 종류의 종이신문을 읽는다. 과거 서재였다가 지금은 침실이 된 옥탑방에서 부모님이 사시는 3층 살림집을 거쳐 2층 서재로 내려오는 시간은 오후 3~4시. 두 군데 대학의 문예창작 강의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 밤 12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출입이 허락된 사람은 그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국어와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생 조카 둘뿐이다. 세 자매 중 첫째인 그는 도쿄에 사는 두 조카를 포함해 네 조카의 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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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의 두 번째 끼니는 그가 ‘영혼의 빵’이라고 부르는 맥주 한 캔과 빵 한 쪽.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계란 프라이를 빵에다 얹어 먹는다. 조금 마시고 싶은 날에는 대여섯 캔까지도 거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캔에 그친다. 쓰기 이전에 읽기가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그는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받는 책보다 직접 사는 책이 훨씬 많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 읽고 싶은 책을 주문한다.

자정이 되면 이번에는 일이 아닌 여가를 위한 책을 들고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서재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와 쪽문으로 나간 뒤 다시 살림집으로 난 대문을 통해 3층까지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 부모님을 들여다본다. 자정 무렵이면 각자 방에서 각자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은 채 주무시기 일쑤다. 텔레비전과 불을 끄고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새벽 5시쯤 잠이 든다.

낮밤이 바뀐 생활은 1996년 작가가 된 이후 20년간 변함 없이 이어졌다. 읽고 쓰는 데 온전히 바쳐진 일상. 그 기원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한 그는 방에 틀어박혀 꼬박 6년간 책을 읽었다. 뭘 할지 몰랐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책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식구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간대를 거꾸로 생활한 것도, 친구들과 함께 처음 2500cc의 맥주를 마신 뒤 똑바로 걷는 자신을 보면서 맥주가 영혼의 빵임을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가 시인이 되고 싶어 199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스승 김혜순 시인으로부터 시 말고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그는 졸업하던 해 소설가가 됐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재라는 말은 너무 멋지고, 이 7평짜리 작업실은 ‘균형의 방’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긴장과 의무인 책과 글쓰기, 휴식과 위안인 맥주와 코끼리가 이 비좁은 곳에 다 있으니까요. 이 균형이 무너지면 사는 이유마저 흔들릴 때가 있어요. 작업실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사나’ 하는 질문, 의기소침에 빠지지 않고 더 살고 싶은 의욕, 이유 같은 것들이 내 옆에 머무는 느낌이 들어요. 나한테 필요한 것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는 방,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방….”

한 마디로 그의 삶과 생각이 농축돼 있는 방이다. 그는 옥탑방과 현재 작업실을 꾸려온 과정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자기 방에 상을 편채 쭈그리고 앉아 쓴 소설로 등단한 직후, 원래 막내동생이 쓰던 옥탑방으로 옮겨갔다. ‘커다란 책상이 갖고 싶었다. 옥탑방에도 책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작은 하이그로시 식탁을 하나 샀다. 지금은 군데군데 테두리 칠이 벗겨지고 다리가 흔들거리긴 하지만 아직 쓸 만하다. 옥탑방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심야통화를 했다.’ ‘옥탑방엔 점점 더 책들이 쌓여간다. 책들의 일부를 아래층 거실로 옮겼다. 냉장고 옆면에도 소파가 있던 자리에도 책장을 들여놨다. 아버지가 거실에 기둥을 하나 세웠다. 내 옥탑방을 받쳐놓기 위해서다.’(단편 ‘코끼리를 찾아서’)

책 때문에 천장이 무너질까봐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는 지경에 이르자 어머니가 나서면서 작가가 된 지 11년 만에 서재는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근처에 괜찮은 방이 하나 나왔다고 했다.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근방인 낙성대와 신림동까지 작업실로 쓸 만한 방이란 방은 죄다 알아보고 다닌 터였다. 어지간한 곳은 터무니없이 세가 비쌌다. … 엄마를 따라나섰다. 골목으로 난 쪽문을 열고 열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한 일곱평 정도 될까. 나는 복도를 눈여겨봤다. 간신히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지만 입구에서 방까지 석자짜리 책장을 다섯개쯤 세워놓을 수 있어 보였다.’(단편 ‘봉천동의 유령’)

어머니가 데려간 곳은 세입자가 나간 자기 집의 빈 방이었다. 이 복도에는 그의 눈짐작대로 5개의 책장이 놓였고 9년이 지난 지금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히다 못해 켜켜이 쌓였다. 하얀 롤스크린으로 가려진 오른쪽 싱크대 옆으로는 세계 각국의 맥주가 들어있는 냉장고와 함께 커피밀, 주전자, 컵들이 정리돼 있다.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오자 창 앞에 책상이 있는 면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책장이다. 높이 170㎝쯤 되는 5단 책장 10개에 책들이 가득하다. 계속 버려도 책은 줄지 않는다.

서재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다. 가구는 책상과 의자 외에 딱딱한 벤치 하나뿐이다. 처음 이곳으로 옮겨올 때 놓았던 푹신한 소파베드는 치워버렸다. 누구를 초대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책상 오른쪽에는 국내외 시집과 시 이론서, 왼쪽에는 소설 이론서와 문학 이론서, 등 뒤에는 평생 갖고 있을 국내외 소설, 복도에는 산문집과 미술책이 꽂혀 있다. 30년이 지난 책도 먼지 한톨 없다. 줄잡아 3000권은 돼 보이지만 “매일 책등을 보기 때문인지” 필요한 책은 바로 뽑아낸다.

소박한 책장에 비해 책상은 호사를 부렸다. 그는 침실과 분리된 서재를 마련한 기념으로 스스로 디자인한 책상을 목수에게 주문해 홍송으로 짰다. 가로로 얕은 서랍이 세 개 달린 책상에서는 반지르르 윤기가 흐른다. 그 위에는 클로버 747 TF 타자기가 있고 한 자루도 어김없이 뾰족하게 깎은 일제 연필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바로 아래 동생이 사는 도쿄의 신사에서 사온 연필에는 ‘하루하루의 노력’ ‘한발한발 나간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연필로 책에 줄을 긋거나 창작 메모를 하고 학생들의 소설 원고를 수정해 준다.

그의 책장마다 놓인 작은 조각은 코끼리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사모은, 조금씩 다른 재질과 모양의 코끼리가 서재 이곳저곳에 숨은 그림처럼 존재한다. 코끼리의 등장 역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필름 한 장이 남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잠을 잤다. … 잠에서 깨어났다. 숨을 멈추고 있다가 기습하듯 찰칵, 셔터를 눌렀다. 잡아 뺀 듯 필름이 툭 빠져나왔다. 얼른 불을 켰다. … 웬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거기 있었다.’(‘코끼리를 찾아서’)

그는 자신의 생일에 손수 복어국을 끓여먹고 자살한 친할머니, 애인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은 연숙이 고모, 간암으로 죽은 도성이 삼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받고 헤어진 옛 애인의 이야기를 소설이나 산문에 쓴 적이 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건설 노동자로 살아온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결혼해 스무 살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지상에서 가장 크지만 온순한 초식동물 코끼리는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삶의 무게와 고통과 고독의 현신이다.

그러나 우울하기만 한 게 인생이라면 누가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지하고 무겁기만 한 게 문학이라면 누가 감동할 수 있을까. 밝고 따뜻하고 좋은 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조씨의 소설에는 이런 균형이 있다. 그는 가족의 비극을 다룬 소설 <식빵 굽는 시간>에 향긋하게 부풀어오른 빵 냄새를 불어넣었다. 연인 사이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인 <혀>에서는 제철 재료를 사용한 서양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상처받은 남녀의 이야기인 <복어>는 끝내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서정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서정적 시기라는 것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젊은 시기이거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라면 말이다. 평범한 개도 어둠 속에서는 승냥이처럼 보인다. 서정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그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혹은 어둠 너머의 것을 주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봉천동의 유령’)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의 문제가 가장 커서 그 너머가 잘 보이지 않던 젊음의 시기가 지나서 그런지, 여태까지 써왔던 글보다는 보다 더 ‘그들’ 혹은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침착하게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어요. 크든 작든 읽는 사람에게 생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소설 말이에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나쁜 일을 덜어내는 것, 평온함, 조용한 고립, 찢김이 아니라 스스로 아무는 상처 같은 고독을 원했다는 그는 ‘균형의 방’에서 조금씩 아껴가면서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

■조경란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백화점>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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