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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속 '냥도리'..박순찬 화백에게 직접 묻다

2017.12.07 18:18 입력 2017.12.07 20:02 수정

처음엔 지나쳤다. 두번째는 우연인가 싶었다. 세번째부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장도리에 등장하는 ‘고양이’ 말이다.

[알아보니] 장도리 속 '냥도리'..박순찬 화백에게 직접 묻다

현재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에 근무하고 있는 ‘나(김냥덕)’는 당직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먼저 독자들이 기다리는 만평, 장도리를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 채널에 소개한다. 전날 하루를 ‘네 컷’으로 요약하는 장도리를 통해, 놓쳤던 트렌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윌리를 찾아라’처럼 네컷 중 등장한 고양이를 찾는 게 또 하나의 목적화 되고 있지만 말이다. 고양이가 컷 구석에 등장한 날엔 찌뿌둥하게 졸린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보다. 언제부턴가 장도리에 등장하는 ‘시선강탈’ 얼룩 고양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컷만 모아 짤방으로 만들었다. “큰일났다. 이쯤되면 시사는 핑계고 고양이가 목적이 돼버렸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이 고양이는 최근 고양이 전문 언론인 ‘월간 야옹이 신문’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알아보니] 장도리 속 '냥도리'..박순찬 화백에게 직접 묻다

장도리 속 고양이는 치솟는 인기 덕에 최근 한 고양이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출처: <야옹이 신문>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장도리 속 고양이는 치솟는 인기 덕에 최근 한 고양이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출처: <야옹이 신문>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과연 장도리 고양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숨겨진 주인공인가” “정말로 장도리에서 시사는 이제 핑계에 불과하고 고양이가 목적이 되고 만 것인가”.

사안이 중대하니 직접 묻겠다고 나섰다. 팀장이 오케이 싸인을 내렸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그간 폴더에 눈에 띌때마다 저장해뒀던 장도리 고양이 짤을 꺼내 하나 둘 복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장도리 1년 연재분 가운데 고양이가 총 25번(약 11.3%) 등장했고, 그 중 대사가 있었던 것은 두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말도 한다.

말도 한다.

이쯤되면 준비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저..선배. 전 00기 김냥덕입니다. 이러이러한 중대한 질문이 있어서 인터뷰를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시간이 되실까요?”

다행히 선배는 흔쾌히 인터뷰 부탁을 들어주셨다. 지난 6일 오후 회사 인근 커피숍에서 만나게 됐다.

출처: 미국 시트콤 <Seinfeld>

출처: 미국 시트콤 <Seinfeld>

Q.장도리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 귀여운 고양이의 이름이 있나요?

A.저도 SNS를 통해 재밌는 감상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고양이의 이름은 ‘냥도리’입니다.

Q.직접 기르시는 고양이인가요?

A.많이들 제가 직접 기르는 고양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제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진 않아요. 중학교 때 몇년정도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긴 했죠. 장도리에 등장하는 ‘냥도리’는 제가 2014년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 한 가게에서 보았던 길고양이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유심히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장도리에 ‘길고양이’라는 언급도 나오고요. 무엇보다도 길고양이이기 때문에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겠죠.

‘길고양이’라고 소개되는 냥도리

‘길고양이’라고 소개되는 냥도리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Q.냥도리의 첫 등장은 언제인가요?

A.2015년 2월쯤 처음으로 헤더(네컷 만화 위 소개 이미지)에 고양이를 넣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장도리 캐릭터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걸 쳐다보다가 나중엔 촛불을 들었다가 조금씩 모습이 바뀌어서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았습니다.

Q.냥도리는 길고양이라고 하셨는데요. 만화에 등장시키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2014년에 이집트에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이집트의 한 작은 식당에서 닭고기 요리를 먹는데 길고양이가 슬렁슬렁 가깝게 다가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앞에 의자에 와서 딱 앉더라고요. 마치 내 일행인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웃음). 그래서 나누어줘서 같이 고양이와 앉아서 먹었습니다. 우리나라같으면 아예 식당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을텐데 식당 주인도 그렇게 막 내쫓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사람과 고양이가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리는 분위기였죠.

‘냥도리’의 모델이 된 이집트의 도도한 길고양이. 마치 원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요구했다. /사진제공: 박순찬 화백

‘냥도리’의 모델이 된 이집트의 도도한 길고양이. 마치 원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요구했다. /사진제공: 박순찬 화백

사실 옛날엔 우리나라에도 길 골목에 길강아지와 길고양이들이 많이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숨어’ 살죠.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린 것을 (이집트에서) 발견한거죠. 인간과 동등한 입장에서 고양이가 도시를 활보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보기 좋아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고양이를 데려올 수는 없고, ‘그렇다면 만화에 한번 넣어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런데 장도리 주인공이 뜬금없이 통닭을 먹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주인공이 커피잔 들고 있고 그것을 고양이가 보고 있는 걸로 만화에 넣게 되었습니다.

2014년 이집트 여행 중 찍은 사진. 멀리 배경엔 피라미드들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 박순찬 화백은 이집트 여행이 고양이와의 만남 외에도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박순찬 화백

2014년 이집트 여행 중 찍은 사진. 멀리 배경엔 피라미드들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 박순찬 화백은 이집트 여행이 고양이와의 만남 외에도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박순찬 화백

Q.2015년에 냥도리가 처음 등장했는데, 만화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인 것 같아요. 그간 냥도리가 많이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그간 우리나라 상황을 두고 시사 만화를 그릴 때, 워낙 많은 중대한 일들이 있었고 정치적 상황이 급박했죠.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만화 내용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고 고양이같은 것이 들어갈 여유가 없었던 편이었습니다. 조금씩 들어가긴 해도 많이 등장하진 않았는데 최근엔 정치 상황이 조금 바뀌면서 그나마 뭔가 비교적 조금 여유가 생기는듯한 분위기로 흘러가기 때문에 등장할 여지가 조금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냥도리가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인기도 많아지고 있어요. 냥도리의 인기를 실감하시나요?

A.인터넷 보면 (장도리) 내용은 관심 없고 고양이 보려고 본다는 사람도 있고...(웃음)

목줄이 매였지만 표정은 즐겁다.

목줄이 매였지만 표정은 즐겁다.

Q.최근 그린 냥도리의 등장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A.롱패딩을 입은 고양이(17년 11월24일자)를 그린 것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롱패딩이 유행하니까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구입해서 입고 있는 상황이 재밌다고 느껴졌어요. 하도 유행이니까 ‘고양이까지’ 입는 상황이라는 거죠. 롱패딩이 가성비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우리 사회엔 “남이 뭘 하면 나도 그렇게 따라하지 않으면 두려운”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다수에 따르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남이 사면 나도 사야하고. 그것이 패션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낳을 수도 있는 문제거든요.

롱패딩을 입은 냥도리

롱패딩을 입은 냥도리

대통령 회견에서 냥도리가 기자로서 질문을 하는 장면(17년 1월3일자)도 있었는데요. 당시에 하도 대통령 회견에 질문이 제대로 안나온다는 지적이 많았었으니까.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등장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금 떨어져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냥도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냥도리 기자

Q.냥도리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정해두신 것이 있으신가요?

A.성격을 따로 잡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고양이를 볼 때 고양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죠. 다만 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다만 조금 지향했던 바가 있다면 ‘자유로운’ 고양이를 그리고자 했어요. 인간이 만들어놓은 공간, 인간이 고양이나 동물을 통제하려고 하는 시도로부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요.

그러면서도 냥도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상징하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한국에선 길 동물들이 쓰레기를 흩어놓고 미관상 좋지 않다 등의 이유로 덫을 놓아서 죽인다거나 약을 밥에 탄다거나 하는 잔인한 일들도 심심치않게 일어나요. 나에게 해가 된다고 하면 나서서 씨를 말리려고 하는 행동이죠. 제가 이집트를 비롯해 동남아 등의 국가를 여행하면서 감동받았던 점은, 동물들이 조금 귀찮고 먹을 것을 훔치고 하더라도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관리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점이었어요. 최근에 어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놀란 점이, 한국엔 장애인이 없냐는 것이었대요. 길거리에 장애인이 한명도 보이지 않으니까. 우리와 다른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시 시스템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표준형 인간’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라예요. 사람도 못다니는데, 고양이가 어떻게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겠어요. 이처럼 냥도리는 우리시대의 ‘주류가 아닌 이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촛불시위 장면을 그리면서 촛불을 든 고양이를 그리기도 했는데, 만약 이집트에서 촛불 시위가 열렸다면 정말로 고양이들이 촛불 사이로 다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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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주류가 아닌 이들’을 상징하는 냥도리

우리시대의 ‘주류가 아닌 이들’을 상징하는 냥도리

Q.냥도리가 나올 부분을 미리 생각하고 만화를 그리실 때도 있나요? 아니면 마지막에 끼워넣으시는 편인가요?

A.고양이 만화가 아니라서 고양이를 주로 생각하진 않아요(웃음). 틀을 짜다보니까 이정도에 고양이 넣으면 되겠다 싶은거지. 넣고 싶은데 못들어갈때도 있어요. 내용 흐름자체가 심각하거나 여유가 없는 경우엔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갈 자리가 없죠. 웬만하면 넣고 싶은데.

사실 주인공보다 고양이가 넣기 쉽긴 해요. 사람이 등장해서 무언가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때는 독자들이 주인공에 동일화를 하기 쉽기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곤 하죠. 만약에 ‘사람 기자’가 질문했다고 하는면 “기자가 왜 저질문을 하지?”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고양이가 질문을 하게되면 거기서 자유롭죠.

Q.“시사 만화에 고양이가?”라는 반응인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A.원래부터 시사만화가 마냥 진중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처음 시작은 귀족들만 즐기던 회화가 인쇄술 발전을 통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재미나게 권력을 풍자하는 속성을 갖고 있었죠. 50~60년대 신문에 실리던 시사 만화들을 보면 의외로 동물들도 많이 나오고 코믹한 유머들이 많아요, 다만 긴 군사독재시기를 겪는 과정 속, 시사 만화가 엄혹한 시기에 간접적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면서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굳어진 경향이 있죠.

우리나라는 현재 대통령 탄핵이라는 굉장히 큰 일을 겪은 뒤 큰 변화를 겪고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대통령이 바뀐 것으로 변화가 끝난 건 아니죠. 지금부터 시작이죠. 정치문제 뿐아니라 우리가 겪는 경제, 언론, 생활 등 삶의 모든 부분에서 다시 성찰하는 기회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보려면 우선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해요. 인간을 객관적으로 보기위해선 고양이의 시선으로 보는것도 한 방법이죠. 물론 처음부터 그러려고 거창한 생각으로 고양이를 넣은건 아니예요(웃음). 이집트에서 본 고양이가 기억에 남아서 시작된건데. 고양이를 그림에 자주 넣게되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Q.마지막으로 장도리와 냥도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네컷 만화의 특성상 많은 동물들이 나오진 못하겠지만 고양이는 당분간 종종 등장할 것 같습니다. 전 고양이 키우고 있진 않지만 고양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고, 인간 외의 생물체와 인간은 동등한 입장에서 계속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만화에 길고양이가 등장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부지불식간 그러한 인식이 조금씩 자라날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알아보니] 장도리 속 '냥도리'..박순찬 화백에게 직접 묻다

경향신문 독자들을 위해 박순찬 화백의 손에서 슥슥 탄생한 냥도리의 귀여운 모습. 밥그릇엔 앙증맞은 생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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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도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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