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남도…은폐, 왜곡된 제주 4·3 의미를 찾아서

2018.03.27 14:21 입력 2018.03.27 14:26 수정

31일 개막하는 ‘잠들지 않는 남도’ 전의 취지는 “지난 70년간 한국 현대사에서 왜곡·은폐되어 온 제주4·3의 실체와 의미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환기”하려는 것이다.

‘잠들지 않는 남도’ 전은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결과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도립미술관이 주관한 이 전시엔 공간41, 대안공간 루프, 성북예술창작터, 성북예술가압장, 이한열기념관, d/p 등 서울의 문화 공간 6곳이 협력 기관으로 참여했다.

성북문화재단_김현주_내 귓속에 묻힌 묘지들_3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 loop_2016.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성북문화재단_김현주_내 귓속에 묻힌 묘지들_3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 loop_2016.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프로젝트 협력 기획자들은 “한반도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 사건들과의 접점을 공유하고, 제주4·3의 특수 상황을 대한민국 역사의 보편 문제로 확장해 서울 시민에게 제주4·3을 알리기 위한 전시”라고 설명한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다음은 6곳 공간에서 작성한 전시 설명과 작품이다.

■공간41 : 잃어버린 말

“잃어버린 말을 되찾는 법을 생각한다. 고통은 말을 훔쳐간다. 아픔의 크기만큼 언어를 상실한다. 정적이 길어질수록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정적을 깰 수 있는 건 소리다. 정적은 무엇으로도 깰 수 있다. 두 손이 맞닿는 파열음. 갑자기 켜지는 형광등. 바쁘게 쿵쾅거리는 발소리. 어느 것으로든 정적을 멈추어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잃어버린 말을 떠올려야 한다. 기억의 악용과 왜곡을 멈추기 위해서 토해내야 한다.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서울 연남동의 공간41에서는 서울과 제주의 시각예술가와 함께 정적을 깨고 잃어버린 것을 떠올려 본다. 전시는 70년 동안 잃어버린 말을 찾기 위한 과정 중 하나다. <제주4·3 미술제>를 통해 제주의 정적을 깨고자 노력했던 작가와 한반도에서 자행된 또다른 국가폭력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 국내 작가를 초청한다. 본 전시는 4·3을 작게나마 되찾고 기억할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될 것이다.”

*전시 참여작가: 박소연, 박영균, 배인석, 양동규, 여상희, 오석훈, 전승일, 한항선, 홍진숙 (총 9명)

공간 41_홍진숙_잃어버린 사람 1_목판화_100 × 70_1998.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공간 41_홍진숙_잃어버린 사람 1_목판화_100 × 70_1998.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전승일, 인천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디지털 페인팅, 2016.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전승일, 인천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디지털 페인팅, 2016.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대안공간 루프, 1948, 27719, 1457, 14028, 2018

“1950년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밝힌 27,719명이라는 제주4·3 사망자수는 1960년 6월 6일 자진신고를 바탕으로 한 국회 기록에서 1,457명으로 축소된다. 2000년 김대중 정권의 유족신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료집에서 14,028명으로 최종 기록된다. 사망자수와 제주4·3의 실체와 의미는 한국 현대사에서 줄곧 왜곡, 은폐되어 왔다. 또한 유족들의 연좌제에 기인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더해지면서 제주4·3의 실상이 더욱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제주4·3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조종에 의한 사건이라는 시각과 순진한 양민에 대한 학살이라는 대립하는 시각은 모두 참여한 인민의 주체성을 무시한 채 억압과 부당한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주4·3의 보편적 의미를 지워갔다. 지난 70년간 전쟁과 분단, 그리고 극우 반공주의의 세월 속에서 제주4·3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희생자의 주체적 역사의식을 축소하는 행위다. 1947년 3·1절 제주에서 일어난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기인한 민관 총파업, 1948년 남북한 분단에 반대하는 5·10선거 거부는 남한에서 유일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제주의 인민을 단순히 무지한 양민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주4·3이 갖는 보편적 의미는 무엇일까.”

루프_정용성, 멜젓처럼,Chiness ink on korean paper,240 x1200㎝,2008.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루프_정용성, 멜젓처럼,Chiness ink on korean paper,240 x1200㎝,2008.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세미나: 혁명노트, 메타노이아, 김규항

4월 12일 (목) 7:00pm 자유로운 노예들

4월 19일 (목) 7:00pm 자본주의교의 삼위일체

4월 26일 (목) 7:00pm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반공주의

5월 3일 (목) 7:00pm 메타노이아, 삶의 지속

* 참여작가: 강문석, 강정효, 고길천, 김영화, 김영훈, 유비호, 성창학, 정용성(총 8명)

루프_김영화, 얽히다, 천, 솜, 가변크기, 2017.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루프_김영화, 얽히다, 천, 솜, 가변크기, 2017.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성북예술창작터/성북예술가압장 : 너븐숭이 유령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제주4.3의 특수성을 대한민국 역사의 보편 문제로 확산하기 위하여, 서울시의 6개 문화공간들에서 4.3 70주년 기념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4.3 사건이 70년 전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라는 섬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때 제주주민들이 겪었던 비극과 고통의 원천은 그 이후의 6·25전쟁, 5·18, 세월호 사건 등의 역사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실제 그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회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개인, 심지어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까지 그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성북에서는 4.3의 정신과 본질에서 출발하되, 4.3의 현장으로부터 한반도의 제노사이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과(국가의 존재), 그 속에서 개인이 겪은 실존의 문제, 트라우마 등으로 시선을 확장하고자 한다. 제주4.3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로 당시 하루 만에 가장 많은 주민이 학살 당한 북촌의 ‘너븐숭이’를 시작점으로 삼아, 지금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지역 경계를 넘어 떠돌거나 흐르고 있는 ‘제주4.3’의 정신을 지역과 관련 있는 제주작가와 국내작가들 총 11명의 작품을 통해 보고 주고자 한다.”

*전시 참여작가: 강정효, 강태봉, 김영화, 김현주, 박경훈, 손정은, 양미경, 오석훈, 정석희, 정용성, 홍진훤(총 11명)

성북문화재단_강태봉_49년-가족_캔버스에 아크릴_ 130×162 ㎝_1994.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성북문화재단_강태봉_49년-가족_캔버스에 아크릴_ 130×162 ㎝_1994.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이한열기념관 : 바람 불어 설운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폭력적 억압과 살상의 현장이었던 제주의 4.3 항쟁.‘바람 불어 서럽고 고단했던 제주 민초들의 삶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란 물음으로 전시의 열음이 시작된다. 제주는 섬이자 신화(본풀이)의 땅이다. 삼성신화, 설문대할망신화의 탐라 탄생이야기부터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까지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만들어진 존재형성의 필연성과 수호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이야기들의 보고인 셈이다. 그렇다면 4.3항쟁의 중심을 살아냈던 이들에게 바람여신과 돌미륵에의 기댐과 바램은 어떠했을까? 더 간절하고 절절한 마음이었을테고 그래서 더 공허하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간절함과 공허함의 공존을 가정한다면 오늘날 제주 신화는 어떻게 우리 가슴속에 되살아나야 할까? 전시는 참혹한 고통의 기억을 예술굿이란 장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고 그들이 치유되도록 전개된다. 종이로 만들어진 기메를 연상시키는 테라코타의 형상으로 승화시킨 하늘길을 향한 몸짓, 제주에만 자생하는 신비로운 사스레피의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 녹슨 숟가락과 동백의 모습에 담긴 생과 사의 절박함에 비친 제주 민초들의 삶을 느낀다. 4.3 부활의 그 날을 기다리며 눈부시고 푸르른 폭포앞에 서 있는 소녀의 꿈, 실핀의 오브제가 화한 고통을 상징하는 봄비 속의 동자승의 모습을 맞아 본다. 전시의 닫음은 70년이 흐른 오늘, 섬에서 육지로 옮겨온 4.3의 응어리들. 이 조각들을 잘게 부수는 움직임들로 국가 권력의 사회적 고통을 인지하고 치유하는 길을 찾아 본다.”

* 전시 참여작가: 김수범, 박경훈, 양미경, 오윤선, 이명복 (총 5명)

이한열기념관_오윤선_사스레피-골절_캔버스에 유채_167x97cm_2005.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이한열기념관_오윤선_사스레피-골절_캔버스에 유채_167x97cm_2005.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d/p : 경계에 선 것들

“d/p는 제주4.3이 70주년을 맞이해 육지로의 확산을 기획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물리적인 지역적 확산을 넘어서 4.3이 지금까지 육지로 확산되지 못한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며 그 함의를 드러내고자 한다. 역사는 단편적인 사건에만 집중해서는 알 수 없다. 사건의 앞과 뒤, 그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을 두루 살피고 시선을 수축하고 팽창하는 태도를 지녔을 때 비로소 역사의 윤곽을 살필 수 있다. d/p는 제주4.3의 특수성에 주목하면서 지금 이때에 왜 4.3이 뭍으로 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전시 보여주려고 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부터, 제주와 동떨어진 곳에서 제주를 바라보는 작가들이 4.3을 대하는 태도를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소개한다.”

* 전시 참여작가: 권윤덕, (김)범준, 옥정호, 이승민, 이재욱, 임경섭 (총 6명)

dp_이재욱_RED LINE #1_Digital C-print, 62x83cm, Edition of 7 +1AP_2018.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dp_이재욱_RED LINE #1_Digital C-print, 62x83cm, Edition of 7 +1AP_2018.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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