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추억'이 동물에겐 '죽음'...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사회는 인간도 함부로 다룹니다."

2018.07.06 14:40 입력 2018.07.06 15:29 수정

‘산천어축제, 최다 인파 기록 깼다’ ‘나비축제, 농·특산물 판매 ○○억원’ ‘고래축제, 물놀이장 선보여’.

지방자치단체들이 주최하는 동물축제와 관련한 기사 제목들이다. 특히 산천어축제나 나비축제는 성공한 지방 축제 사례로 상찬받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성공’인가. 자치단체장이나 지역 상인들에겐 성공일 수 있다. 치적을 쌓고 돈을 버니까.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에게도 성공일 수 있다. 한겨울 얼음에 구멍을 뚫어 산천어를 낚아 올리거나, 넓은 벌판에서 날아가는 나비를 따라가 본 경험은 괜찮은 추억일 테니까. 하지만 동물 입장에서도 ‘성공’일까. 동물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산천어축제는 산천어에겐 죽음이다. 나비축제도 나비에겐 죽음이다. 나비축제가 열리는 4월 말~5월 초는 나비가 활동하기엔 기온이 낮다. 고래축제에서는 고래고기를 판다. 포경은 불법이기에 고래고기 유통은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쳐둔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혼획’의 경우만 인정되는데, 고래축제 기간을 앞두고 고래 혼획이 ‘우연히도’ 늘어난다.

7일 은평구 서울 혁신파크 피아노숲에서 열리는 제1회 동물의 사육제 ‘동물축제 반대축제’(이하 동축반축)는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동물축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됐다. 동축반축의 의뢰를 받은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13~2015년 전국 86개 동물축제 프로그램 중 동물을 죽게 하거나 죽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활동이 84%에 달했다.

동축반축의 기획자인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42)과 김한민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39)를 최근 만났다. 형제인 둘은 각각 ‘국내 최초’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김산하는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국내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이고, 김한민은 해양생물 보호를 앞세우는 국제적 비영리 환경단체인 시셰퍼드의 국내 최초 활동가다.

지난달 29일  영장류학자 김산하(왼쪽), 일러스트레이터 김한민 형제를 생명다양성재단이 있는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형제는 제1회 동물의 사육제 ‘동물축제 반대축제’를 기획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난달 29일 영장류학자 김산하(왼쪽), 일러스트레이터 김한민 형제를 생명다양성재단이 있는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형제는 제1회 동물의 사육제 ‘동물축제 반대축제’를 기획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동축반축의 시발점은 무엇입니까.

김한민(한민) = 제겐 고래였습니다. ‘혼획’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고래 불법포획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고래축제에서 고래 보호 프로그램을 만들기는커녕, 고래고기를 판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요. 마치 사파리에서 기린을 본 다음에 기린고기 먹는 거하고 다를 바 없죠. 그러다보니 고래축제뿐 아니라 나비, 산천어, 주꾸미, 대게 등 온갖 동물축제가 다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김산하(산하) = 외국의 나비학자를 데리고 나비축제에 간 적이 있어요.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지 몰랐는데, 막상 가보니 나비와는 관계없는 것투성이였어요. 화양목을 나비 모양으로 깎고, 박제 나비를 전시하고, 살아있는 반달가슴곰을 전시하고, 자라는 뒤집어져 있고…. 외국 학자가 그러더군요. ‘네 책임이다.’ 제가 나라를 대표해서 부끄럽다고 사과했어요.

한민 = 우리 책임 맞아요. 전 그런 동물축제들이 지옥 같아요. 동물원도 조사가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면회’ 갑니다. 그런 곳에 안 간다고 다가 아니에요. 여기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도리가 아닙니다.

김한민 작가가 제1회 동물의 사육제를 위해 그린 벽화 /동물의 사육제 제공

김한민 작가가 제1회 동물의 사육제를 위해 그린 벽화 /동물의 사육제 제공

- 동물축제를 기획한 지자체들은 반발하겠는데요.

산하 = 미투운동도 그랬지만, ‘화살표’가 누군가를 가리키지 않으면 의미도, 효과도 없습니다.

한민 =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돈 버는 능력을 넘어선 공감 능력입니다. 약자에게 공감하지 않고, 폭력에 무감각하다면 그 얼마를 번다 해도 무슨 소용인가요. 게다가 이런 축제들은 돈도 별로 못 법니다. 그 많은 동물축제 중 흑자 난 축제가 단 하나라고 합니다.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에요. 수산자원으로 하는 축제 대부분이 산란기 때 한다고 해요. 이렇게 근시안적인 일이 어디 있나요.

- 동물권 얘기하면 항상 나오는 반론이 있죠. ‘인간이 먼저다.’

한민 = 간디가 그랬습니다. ‘어떤 나라에 대한 평가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보다 약한 존재, 덜 자유로운 존재에 대한 대우가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나라는 인간도 함부로 다룹니다.

산하 = 올해처럼 환경 이슈가 많이 이야기된 적이 없습니다. 미세먼지, 재활용, 기후변화를 내내 말했잖아요. 동물도 환경의 지표 중 하나입니다.

한민 = 시셰퍼드 창립자 폴 왓슨은 ‘생명체는 모두 한배를 탔다’고 했습니다. 각 선원들이 엔진실, 갑판, 조타실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죽이는 건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있는 기관사를 죽이는 겁니다. 전 거꾸로 묻고 싶어요. 왜 동물이 인간과 상관없죠?

김산하씨(왼쪽)는 국내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고, 김한민씨는 국내 최초의 시셰퍼드 활동가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산하씨(왼쪽)는 국내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고, 김한민씨는 국내 최초의 시셰퍼드 활동가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동물권이나 비건 이야기만 나오면 유독 격렬하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하 = 우리 삶의 모델이 반자연적이고 소모적이니, 사람들도 피로감을 겪고 있을 겁니다.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상 없는 분노도 있겠죠.

한민 = 사회 변화가 있을 때 처음 나오는 반응은 비난이고 그다음은 조소입니다. 그 이후에야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아마 동물권 주장이 사람들의 죄의식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죄의식이 없으면 흥분할 것도 없죠. 그건 모든 소수자 운동의 숙명입니다. 동성애 운동이 지금 고통스럽게 걷고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 그렇다면 동물축제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산하 = 동물을 먹거나 죽이는 착취형 축제가 아니라, 과학적 관찰로 동물의 생태를 살피는 축제가 돼야 합니다. 예술과 과학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동물과 관련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들면 됩니다. 사냥꾼의 올무를 제거하거나 폐비닐 줍는 대회를 열어도 좋겠어요.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거예요. 아이들처럼 세상 구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없잖아요.

한민 = ‘비치 클리닝’에 몇 번 참여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요. 세상이 나로 인해 깨끗해졌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같아요. 벨기에에 중세부터 내려오는 ‘고양이 지붕에서 떨어뜨리기’ 축제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사악한 동물로 여긴 풍습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이 축제는 19세기에 폐지됐습니다. 대신 요즘 고양이축제에선 고양이 인형을 던집니다. 이후 축제가 열리는 도시는 관광명소가 됐습니다. 조금만 머리를 맞대 상상력을 발휘하면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쌀락 국립공원의 밀림에서 긴팔원숭이를 관찰하고 있는 김산하 박사(오른쪽). 밥을 먹으면서도 나무 위의 원숭이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쌀락 국립공원의 밀림에서 긴팔원숭이를 관찰하고 있는 김산하 박사(오른쪽). 밥을 먹으면서도 나무 위의 원숭이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에서 시셰퍼드 활동중인 김한민 작가/시셰퍼드코리아 제공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에서 시셰퍼드 활동중인 김한민 작가/시셰퍼드코리아 제공

동축반축에서는 고래, 낙지, 산천어, 나비 등 ‘동물당’ 후보들의 합동유세전을 담은 연극이 공연된다. 산천어는 ‘인간을 낚시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는 반면, 고래는 다소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선거는 인간들의 난입에 파국을 맞는다. 록밴드 허클베리 핀은 신곡 ‘동물의 사육제’를 이날 처음 공개한다. 서민, 우석훈, 황선도 등 연사들의 릴레이 토크도 열린다.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김산하가 동물 책을 읽으면 김한민은 동물 그림을 그렸다. 김산하는 과학자가 돼 동물을 연구했고, 김한민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둘은 어린이를 위한 동물 과학 그림책 ‘스톱!’ 시리즈(전 9권, 비룡소)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

- 당신들은 동물을 사랑했고, 결국 그 사랑을 직업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취향과 일이 겹치는 건 쉽지 않은 경우인데요.

산하 = 누군가 강제로 없애지만 않으면 어렸을 때 좋아한 것들은 그대로 유지되는 듯해요. 취향과 취미가 너무나 엉뚱해서 사회에 그에 대응할 만한 직업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사회엔 동물 관련 일거리가 많거든요. 동물 일을 안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죠. 전 어쩌다보니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가 됐지만, 저 이전에도 수많은 ‘최초’가 있었을 겁니다. 다만 가족과 사회의 역학 안에서 사라졌을 뿐이죠.

한민 = 전 꿈을 이룬 사람이에요. 환경운동 하고 그림 그리고 책도 쓰니까요. 지금 하루하루가 굉장히 보람 있습니다. 제게도 계기는 있습니다. 여동생처럼 생각하던 강아지가 죽었어요. 다국적기업 페디그리의 사료를 먹고 신장에 이상이 생겼거든요. 그전까진 ‘난 작가니까 누가 대신 해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사랑하는 존재가 죽으니 더는 직접 행동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이후 요즘 최고 명문대인 ‘유튜브’에서 수학하고 동물 학대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때 형에게 e메일을 썼습니다. ‘이제 안되겠다. 내가 발을 담그겠다.’

김산하, 김한민 형제가 함께 쓰고 그린 어린이책 ‘스톱!’ 시리즈 /비룡소 제공

김산하, 김한민 형제가 함께 쓰고 그린 어린이책 ‘스톱!’ 시리즈 /비룡소 제공

‘스톱!’ 시리즈 중 /비룡소 제공

‘스톱!’ 시리즈 중 /비룡소 제공

김산하, 김한민 형제가 자신들을 개의 종류인 비글과 불테리어로 표현한 그림 /비룡소 제공

김산하, 김한민 형제가 자신들을 개의 종류인 비글과 불테리어로 표현한 그림 /비룡소 제공

- 동물과 만난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산하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야생 코끼리를 만났을 때요. 코끼리는 밀림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라고 해요. 한번 화가 나면 끝까지 쫓아오거든요. 동료 연구자가 있는 숲을 찾았는데 처음에는 코끼리는 못 보고 코끼리 똥만 발견했어요. 포기하고 돌아오려는 마지막 날 홀로 습지 근처로 나갔는데 멀리 커다란 코끼리 엉덩이가 보이더라고요. 귀까지 펄럭거리면서. 좀 진정이 된 뒤에 언덕 위로 올라가니 코끼리 무리가 보였어요. 어떤 원형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한민 = 진짜 경이로운 순간은 포토제닉하지 않죠. 카메라 들 생각도 못하거든요. 전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에 시셰퍼드 일원으로서 활동하러 나간 적이 있어요. 멕시코 어부들이 저희 배에 불을 지르려 할 정도로 방해해서 너무나 힘들 때였습니다. 그때 근처 수면 위로 고래가 올라왔습니다. 동료들 모두 촬영할 생각을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어요. 갑판에 있는데 펠리컨 무리가 뒤뚱뒤뚱 걸어와 저를 둘러싼 적도 있어요. 동물들이 말 못한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없다뿐이지 의사는 다 전달해요. 그때 펠리컨이 절 같은 동물 동료로 대해준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같은 지구를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 언제 가장 행복하신가요.

산하 = 행사든 교육이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편인데, 사람들이 일로 느끼지 않고 진심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 때요. 개인의 이득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발전을 위한다는 느낌이 들 때, 우주가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민 = 자연 속에서 강아지와 산책할 때요. 걷다가 바람이 불면 풀잎을 만지는 순간, 정말 사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동물과 사람과 숲이 하나가 된 느낌이 듭니다. 지금 비록 강아지는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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