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예림(Lim Kim), 3년 공백 끝에 ‘지옥에서’ 돌아온 이유는

2019.06.17 06:00 입력 2019.06.17 06:03 수정

림킴 제공

림킴 제공

가수 김예림, 아니 림킴(Lim Kim·25)이 ‘지옥에서’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김예림이 3년 여의 공백을 깨고 돌연 컴백했다. 2011년 Mnet <슈퍼스타K3> TOP3에 올랐던 듀오 ‘투개월’의 그 김예림이다. ‘림킴’이라는 새 활동명으로 발표한 신곡 ‘SAL-KI’(살기)는 ‘인어’라 불리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소녀의 이미지를 산산히 찢고 부쉈다. 세상을 쏘아보는 매서운 얼굴, 이전과는 180도 다른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힙합 음악, 억압적인 현실에 ‘선전포고’하는 강렬한 랩핑까지…. 각종 음원 사이트 댓글난에는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충격과 환호가 뒤섞인 반응이 터져나왔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림킴을 만났다.

“미스틱을 나오기 1년 전쯤,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강한 감정들이 생겨났어요.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에는 주어진 음악에 목소리를 더하는 보컬리스트였다면 이제는 제 안의 메시지를 전하는 창작자이자 퍼포머가 된 셈이에요.”

2016년 5월, 4년 간 함께했던 소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미스틱스토리)와 결별하고 자취를 감춘 이유부터 새로운 음악 지향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하는 일문 일답.

-신곡 ‘SAL-KI’(살기) 발표 이후 반응이 뜨거워요. 요새 어떻게 지내나요?

“예전에는 신곡을 발표하면 계속 방송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바쁘게 활동을 했었는데, 요새는 그저 일상생활하며 지내고 있어요. (웃음) 소속사 없이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거든요. 제가 직접 모든 일정을 정하고 있어 새로운 느낌이에요. 반응은 챙겨보고 있어요. 유튜브에 올린 뮤직비디오나 인터뷰 동영상 댓글을 주로 보죠. 인터넷 기사 댓글난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재미있는 반응이 나오면 친구들이 보내주기도 해요.”

-반응을 보고 어떤 생각 하셨나요?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곡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놀랐어요. ‘살기’ 가사를 영어로 썼기 때문에 그 내용까지 관심을 가져주실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예상보다 해석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반응도 봤는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주신 것 같았어요. 단순히 콘셉트를 다크하게 잡은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이 바뀌어서 돌아온 느낌’으로 인식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3년 넘는 공백을 깨고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음악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나요?

“제가 창작자로서 만든 첫 번째 음악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음악으로 처음 만들어 봤어요. 어릴 땐 그냥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을 했고, 결과적으로 잘 되어서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음악을 통해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음악과 사회 활동을 계속 하다보니 전하고 싶은 강한 감정과 메시지, 창작 욕구가 생겼어요. 소속사를 나오기 1년 전쯤부터요. 과거에는 주어진 음악에 목소리를 더하는 보컬리스트였다면 이제는 제 안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창작자이자 퍼포머가 된 셈이에요.”

-창작은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소속사에 있을 때에는 멜로디 메이킹을 조금씩 해보는 게 전부였어요. 본격적인 창작은 2016년 소속사를 나온 직후, 새 앨범 작업에 빠지면서 시작했어요. 계약 종료 이후 반년 정도는 제가 같이 작업하고 싶은 동료를 찾는 시간을 가졌죠. 그러다 지금 함께하는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티를 만나 고시 공부하는 것처럼 음악에만 매달렸어요. 3년 정도 기본적인 의식주만 챙기고 음악 작업만 하다보니 사람들 눈에는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였나봐요. (웃음) 사실 지난해 앨범 수록곡은 다 완성됐고요, ‘살기’는 앨범의 ‘예고편’격으로 올해 만든 가장 최근 곡이에요. 앨범의 주제와 콘셉트의 흐름과 일치하면서도 ‘시작하는 마음’을 더한 곡으로 포문을 열고 싶었죠. ‘살기’라는 제목은 날카롭고 찔릴 것 같은 ‘살기 있게’라는 표현에서 가져왔고요.”

-소속사에서 활동할 때에는 퍼포머이자 창작자로 활동하는 것이 어려웠나요?

“3~4년 정도 가수 활동을 하다보니, 음악을 발표하면 당연하듯 이어지는 뮤직비디오 촬영, 음악 방송, 인터뷰 등이 꼭 쳇바퀴처럼 느껴졌어요. 오히려 음악 자체로는 무궁무진하게 재밌는 일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이 직종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해면서도 대개는 그냥 그 울타리 안에 머무르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모든 게 다 정해진 상황에서 ‘왜 이래야 되지?’하는 의문이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그때 회사를 나와 작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모든 게 다 정해진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예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시도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회사 시스템을 거치다보니 이게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살기’ 가사에도 담았듯이, 회사와 대중이 저에게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당연하게 정해져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고요. (여성으로서 느낀 답답함도 있었나요?) 그렇죠. 여성으로서 훨씬 더 많이 느끼게 되긴 하죠.”

-“남성의 시선 속에서 날 정의하지 않아” “더 이상 어리고 평범한 소녀가 아냐” 등 ‘살기’의 가사들에서 그런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특정인을 겨냥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어요.

“특정한 사람, 상황보다는 사회의 어떤 풍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린 여성이 솔로 가수가 된다고 할 때 정해진 길들이 있죠. 이건 사회적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제 활동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여성, 더 나아가 동양 여성들의 삶을 음악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Lim Kim(림킴)의 신곡 ‘SAL-KI’의 커버 아트. 림킴 제공

Lim Kim(림킴)의 신곡 ‘SAL-KI’의 커버 아트. 림킴 제공

-곧 발표될 새 앨범에도 그런 이야기가 담겼나요?

“‘동양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메인 주제라서 모든 곡에 그런 요소가 들어가있어요. 지금까지 동양 여성을 메인 캐릭터로 내세운 음악이 거의 없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색깔로 그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곡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주제 의식에 맞춰 비트와 목소리 등을 모두 새롭게 시도해봤죠. 예를 들어 ‘살기’는 ‘공격적인 동양 여성’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앞세우고, 제가 가진 목소리나 성격 중에 이 인물에 어울릴 만한 것들을 뽑아내 투영한 곡이에요. 창법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앨범의 다른 곡들에서는 더욱 다양한 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어요. 곡마다 특색이 있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설정돼 있기 때문이에요.”

-‘동양 여성’을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봤을 때 동양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여성 뮤지션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그 역할을 맡고 싶었죠. 저는 혼자 있을 때 주로 해외 뉴스나 역사책 등을 봐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이 항상 있거든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엄청나게 동기부여가 돼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얘기하고 행동하는 게 지금 저에겐 가장 큰 창작 동기인 것 같아요.”

-‘살기’에서 ‘칭챙총’이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겠죠?

“온라인 반응 보니 정확하게 짚어주신 분이 있더라고요. 서양에서 동양인을 상대로 인종차별을 할 때 쓰는 표현이잖아요. 그들의 놀림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역으로 그들을 놀리고 싶었어요. 가사를 영어로 쓴 이유도 비슷해요. 동양 여성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들었으면 좋겠어요.”

림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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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프로듀싱부터 작사, 작곡까지 모두 홀로 해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음악 작업은 두 명의 친구들(노 아이덴티티·배가현)과 함께 해나갔어요.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티와 주제를 상의한 뒤, 그 친구가 비트를 보내주면 제가 그 위에 멜로디와 가사를 만드는 식이었죠. 퍼포머로서 어떻게 곡을 표현할 것인지 혼자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작곡을 이전에 배운 적은 없었어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흥얼거리며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것도 작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독학이네요?) 네. 저는 성격상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해보는 습관이 있어요. 남에게 배우는 것이 빠르고 쉬운 길일 수도 있는데도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하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바로 만나는 그런 타입입니다.”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편인가요?

“초등학교를 대안학교로 나왔고, 중·고등학교 때 유학과 이민을 했는데 대부분 제가 결정한 일들이에요. 심지어 어렸을 땐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단 생각에 기도도 하고 그랬어요. 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적극적인 스타일이었어요. (대중이 보기에) 지금의 모습들이 새롭게 느껴지시겠지만 저는 늘 그랬듯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뿐이에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여성 뮤지션인 M.I.A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특히 2008년 곡 ‘Paper Planes’(페이퍼 플레인)을 통해 이민자와 피난민에 부정적 시각을 보내는 서구 사회·정부를 과감하게 비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비주얼이나 음악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렇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팝 가수가 흔치 않잖아요. 이렇게 멋있는 뮤지션을 보고 자라다보니 어릴 때부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음악 자체도 중요하지만 음악으로 전할 수 있는 영향력과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고요.”

-그래서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음악 작업은 말씀드린 대로 다 끝났는데 다른 부수적인 작업도 정리해야돼서…. 최대한 빨리 낼 계획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옥에서 돌아온 소감은 어떤가요?

“‘내 것’을 들고 단련해서 나오니까 세상의 다른 것들에도 더는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옥에서 단단해진 느낌? (웃음) 뭐든 들이닥쳐도 타격이 덜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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