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를 외치며 악령을 꾸짖던 서구…정작 악령은 유럽문명이었다

2020.02.28 17:01 입력 2020.02.28 17:04 수정
주강현

(15) 문명이 섬에 보낸 역병이라는 ‘선물’

서구 문명이 신세계에 안겨준 최대의 ‘선물’은 전염병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디딘 지 불과 40년 만에 탐험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밟고 다녔다. 유럽인이 도입한 강제노동제도 그리고 유럽에서 이입된 새로운 질병과 접촉하면서 원주민은 멸절되고 말았다. 흑사병으로 알려진 새로운 역병이 유럽인을 공격해 죽은 인구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신대륙에서 유럽에서 온 역병으로 죽어갔다.

호놀룰루 시내의 주정부 청사 정면에는 ‘하와이 한센병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미엔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호놀룰루 시내의 주정부 청사 정면에는 ‘하와이 한센병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미엔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스테카 왕국의 심장부로 공격해 들어가 원주민을 조직적으로 잔인하게 죽였다. 그는 사람뿐 아니라 그곳의 문명 자체를 파괴했다. 스페인의 국토회복전쟁이 배출한 인물인 코르테스는 자신이 정복한 땅이 스페인 국토의 일부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고, 토착 원주민을 기독교로 완전히 개종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에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았다.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이와 똑같은 일이 태평양의 섬에서도 벌어졌다.

■ 유럽에서 배를 타고 온 병균

하와이 같은 대양의 섬에는 병원체가 별로 없었다. 동남아시아 대륙과 연계된 뉴기니 같은 오세아니아군도가 전염성 있는 바이러스, 원생생물, 세균 등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로 가득 찼다면,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하와이 같은 섬에는 질병이 비교적 없었다. 말라리아나 여타 풍토병도 비교적 적었다. 먼 대양의 섬사람들은 현대 의학을 이용할 필요도 없이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서구인이 옮겨온 온갖 병균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당했던 것처럼 섬 주민을 치명적인 재앙 속으로 밀어 넣었다.

유럽의 배를 통해 모기도 들어와 말라리아가 퍼졌다. 또 유럽의 성병으로 하와이 여자들이 죽어갔다. 쿡 선장의 선원들에게서 전염된 치유 불가능한 온갖 질병이 하와이 인구를 감소시켰다. 쿡은 선원들을 하와이 여성에게서 격리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820~1840년 태평양 고래잡이가 번성하던 시절 하와이 원주민 수는 급감했다. 하와이 원주민에겐 아무런 저항력이 없었다. 성병, 천연두, 홍역, 유행성이하선염, 독감 등이 원주민을 공격했다.

병은 하와이에 국한되지 않았다. 고래잡이 선단이 태평양 전역을 휩쓸면서 요원의 불길처럼 청정 해역이던 대양의 섬들로 퍼져 나갔다. 하와이가 입은 피해와 똑같은 일이 대양의 섬들에서 일어났다. 미크로네시아 폰페이에서 일어난 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통계 수치와 그래프는 전염병에 따른 인구 격감의 실제 기록치를 보여준다. 19세기 초반 1만5000명이던 인구는 19세기 후반 1700명대로 떨어졌다. 고래잡이 등이 끝나고 식민화도 어느 정도 마무리돼 외래인의 무분별한 이입이 안정적인 추세로 접어든 시점에서 다시금 인구가 증가하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늘어나 오늘날에는 적정 규모가 됐다.

전형적인 산호섬의 모습. 작은 규모의 산호섬은 탈출할 방법이 없어 역병에 취약하다.

전형적인 산호섬의 모습. 작은 규모의 산호섬은 탈출할 방법이 없어 역병에 취약하다.

■ 더 치명적인 한센병

더 치명적인 병이 원주민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하와이 원주민 사이에 이상한 병이 돌기 시작했다. 원주민은 막연하게 ‘중국병’이라 불렀는데, 백인은 이를 한센병으로 간주했다. 1940년대에 약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이 병에 걸리면 심하게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몰로카이섬 칼라우파파에 격리 수용 지구가 만들어지고 환자는 여기에 강제로 수용됐다. 칼라우파파의 한센병환자촌은 1865년 하와이 국왕 카메하메하 5세가 ‘한센병전염금지법’을 선포하고 지형적으로 고립된 몰로카이섬 구석에 한센병 환자 수용소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1959년 격리 정책이 종료될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7000여명이나 강제수용됐다.

신대륙이 발견된지 40년만에
원주민은 ‘역병’으로 전멸했다
태평양 섬들도 다르지 않았다

청정지역이고 주민은 건강했다
고래잡이 배들은 병을 퍼뜨렸고
급기야 나병까지 번진다

더 심한 질병은 ‘자본주의’
땅을 빼앗겼고 무기가 들어왔다
술이 들어왔고 매춘도 생긴다

하늘에서 온 ‘빠빠라기’들은
원주민들을 동정한다
너희는 가진게 없다는 것이다
사모아의 추장은 묻는다
그들의 선물이 무엇을 남겼는가
역병의 시대에 문명의 선물을 생각해 본다

하와이의 집단촌에는 한국인도 수용됐다. 17세이던 1904년 이민을 간 김춘석이 1915년 28세에 이 환자촌에 강제수용됐다. 한센병은 자동으로 이혼의 원인이 됐으므로 이혼까지 당한 그는 칼라우파파에 갇혀 있으면서 외로움에 미쳐 죽어갔다고 한다. 1959년에 이르러서야 하와이 주정부는 한센병 환자의 강제 입소를 중단하고, 그 대신 요양원이나 집에서 통원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 이때까지 수용소에 있었던 한인은 57명이었다.

■ 토착 지식 시스템의 붕괴

기본적으로 섬은 연약한 공간이다. 태평양에 퍼져 있는 자그마한 산호섬은 그 자체로 소우주다.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바다에 있는 산호초인 보초를 경계로 안과 밖이 정확히 갈린다. 안쪽이 생명이라면 바깥은 죽음이다. 실제로 수심 5000m에 달하는 바다는 사막(blue desert)일 뿐이다. 수심 5000m의 심해저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는 제한적이다. 대개의 물고기는 초호 내에서 산호초에 의지해 산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탈출할 방법이 전혀 없으며, 일단 역병이 퍼지면 섬 전체가 고립돼 묶인다. 산호섬처럼 작은 규모의 섬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섬의 생물과 토질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침입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즉 산호섬의 산호는 장구한 세월 동안 형성되지만, 파괴는 일시에 가능하다. 섬의 균형 잡힌 건강한 생태계와 섬 주민의 건강도 외부로부터 이질적인 역병이 들어오면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원주민은 자신이 태어난 토양과 풍토, 이에 걸맞게 장기 지속적으로 이어온 치료법으로 그들 나름의 대처 방식을 세워 오랫동안 생존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토착 지식 시스템이 외부의 충격을 강하게 받아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원주민 멸종 혹은 급격한 인구 감소라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하와이의 민간 요법에 대한 기록. 대륙에서 떨어진 하와이에는 질병이 비교적 없었다.

하와이의 민간 요법에 대한 기록. 대륙에서 떨어진 하와이에는 질병이 비교적 없었다.

■ 문명의 저주

병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국민국가의 체력 보존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 집단 수용에 나선 역사는 20세기 전반기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언급했듯이 근대적 가치에는 사회적 통제와 권력 문제가 반영돼 있다. 한센병 환자를 가두는 감호소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혼재된 공간이었으며, 수용소의 의사는 의사라기보다 행정감독관이며 사제였다. 하와이의 한센병 환자 수용소는 일제에 의해 한반도의 소록도로 재탄생한다. 하와이의 칼라우파파와 한반도의 소록도는 전혀 무관한 섬이지만, 국민국가의 국민 통제적 보건법을 통해 같은 역사적 궤적을 그린 셈이다.

호놀룰루 시내의 주정부 청사 정면에 청동으로 빚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팡이를 손에 쥐고 모자를 쓴 키 작은 사내가 자못 엄숙하게 서 있다. 다미엔 신부(1840~1889)라 쓰인 현판에서 이 사내가 왜 주정부 청사의 앞마당에 홀로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미엔 신부는 하와이 한센병 환자들의 아버지였다. 다미엔 신부가 1873년 당도할 때까지는 어느 성직자도 이 수용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환자들은 탈법과 극심한 처우 속에 살아가야만 했다. 성자 후보에 오른 다미엔 신부는 벨기에 사람으로, 추방된 환자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다미엔 동상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질병의 사회사를 떠올린다. 서구인은 문명과 개화를 부르짖으면서 악마와 유령을 꾸짖었지만, 정작 유럽 문명 자체가 악마와 악령이었던 셈이다.

■ 최악의 질병

그 어떤 질병보다 더한 질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개념조차 몰랐던 원주민 사회에 자본이라는 이름의 질병이 퍼진 것이다. 신분제 사회였기에 생산품으로 일정한 공납을 바치던 사회에 돈이 출현했고, 이것이 사회적 유대감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돈이 최고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돈이 없는 원주민 사회는 절망했다. 그리고 절망 끝에 돈에 빠져들게 됐다.

땅의 소유를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은 땅을 사고판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들의 땅 대부분을 외래인에게 빼앗기고 난 다음, 땅에서 추방된 원주민은 또 한 번 절망했다. 문제는 그 절망이 한 세대에서 그치거나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이웃 섬과 전쟁을 벌였어도 석기시대 단계에 머물렀기 때문에 쇠붙이를 몰랐던 이들에게 쇠붙이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만 도입됐다. 총과 대포가 들어오고, 화약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래잡이배의 날카로운 쇠작살이 내뿜는 살기를 알았을 때 원주민 사회도 이러한 항구적 폭력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문득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카바 같은 마취성 음료를 먹는 의례를 집행하기는 해도 독한 술은 마시지 않던 이들에게 양주가 흘러들어왔다. 독한 양주는 뱃사람을 통해 지천으로 널리 퍼졌다. 술은 반드시 여자를 필요로 했으니 매매춘이 성행하게 됐고, 원주민 여성은 몸을 팔기 시작했다. 자본은 하와이에서도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 빠빠라기의 교훈

1990년대 초반 한국에 번역 소개된 <빠빠라기(Papalagi)>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다를 건너온 박래품 문화와 태평양 원주민 문화의 자생성을 비교하는 데 이만 한 우화가 없을 것 같아 간단하게 소개해본다. 사모아 추장의 이 연설집은 본디 1920년 세상에 출현했다.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1976년 독일 출판계에 재등장해 돌풍을 일으켰고, 전 세계에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문명의 황폐함에서 벗어나 되돌아가자는 세계적인 당대의 움직임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문명을 본 남태평양 티아베아 섬마을 추장 투이아비 연설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빠빠라기>에서 빠빠라기는 영어도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아니며, 남태평양 원주민이 백인을 가리키는 사모아 말이다. 그 뜻은 ‘하늘을 찢고 온 사람’이다. 말의 연원은 사모아의 하늘로 이어진 바다, 바다로 이어진 하늘 그리고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가 타고 온 돛배와 관련이 있다. 바다와 하늘이 분간되지 않는 아득한 수평선 너머 흰 돛배가 나타났고, 그것은 마치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 돛배에서 빠빠라기들이 내려 사모아의 섬에 발을 디딘 것이다. 빠빠라기라는 말 속에는 왕왕 경멸과 반발이 강하게 담긴다.

다른 원주민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그저 감각과 순간 속에 살고 있을 때 사모아의 추장 투이아비는 맑은 이성의 눈으로 자연과 인간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선교사를 통해 빠빠라기(백인, 문명인)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고, 성년이 돼 빠빠라기의 나라를 직접 보고 돌아온 투이아비 추장은 원주민 동포를 향해 그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추장은 말한다. 빠빠라기가 늘 원주민에게 하는 말은 ‘너희들은 가난하고 불행하다. 너희들에겐 많은 원조와 동정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라는 것이다. 추장은 말한다. ‘너희가 만든 문명의 선물이라는 것이 남긴 진정한 결과물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되묻는다.’ 코로나 시대, 역병이 번지는 시대에 섬에서 벌어졌던 문명의 ‘선물’에 관해 잠시 생각해본다.



[주강현의 바다, 문명의 서사시]개화를 외치며 악령을 꾸짖던 서구…정작 악령은 유럽문명이었다


▶필자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 전 제주대 석좌교수. 해양사, 문화사, 생활사, 민속학, 고고학 등 융·복합적 전방위 연구로 세계를 누벼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 노마드’이자 비교해양문명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해양문명사가. <등대의 세계사> <독도강치 멸종사>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환동해 문명사>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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