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호 와이파이 괴담의 진짜 진실은

2021.05.29 10:53

[언더그라운드.넷] “헐. 이제부터 소음 날 때마다 공포네.” 한 누리꾼의 반응이다.

초여름으로 진입하는 5월 말이어서인지 갑자기 ‘604호 와이파이 괴담’이 여러 커뮤니티에 걸쳐 흥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살면서 와이파이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와이파이 창을 보면 다른 집이 사용하는 와이파이들도 잡힌다. 그런데 캡처된 사진을 보면 604호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주민들이 단합해 와이파이 이름 설정을 이용,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특정 집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괴담일까. 캡처된 와이파이 목록에 아래와 같은 글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센터에서 알립니다.] 604호실에 대한 민원이 폭주하고 있지만, 현재 604호실에는 입주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살지 않은 공실에 대고 아파트 주민들은 층간소음 유발자라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들었다던 아이들 쿵쿵거리는 소리 등은 뭐였을까.

/fm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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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괴담은 아니었다. 저 이미지의 유래를 검색하면 2016년께부터 돌던 것이다.

관리사무소는 실제 그런 공지를 냈을까. 저 캡처된 사진만으로 어디 아파트인지 알 수가 없으므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관리사무소에서는 저 공지를 내지 않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누리꾼이 만들어낸 ‘드립’이니까. 당시 저 관리사무소 공지 댓글이 달리던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찾아보니 아직 게시물이 남아 있다. 지난해 1월 4일, 루리웹 커뮤니티에 ‘어느 아파트의 와이파이 이름들.jpg’라고 올라온 위 캡처 사진에 그날 오후 3시 18분 ‘아리나라플’이라는 필명의 누리꾼이 남긴 댓글이다. 달린 반응을 보면 “갑자기 괴담 분위기ㅋ”과 같이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1월 4일 ‘어느 아파트의 와이파이 이름들.jpg’라는 제목으로 루리웹에 올라온 글에 달린 댓글. 답 댓글들을 보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공지는 ‘아리나라풀’이라는 닉네임의 누리꾼이 창착한 것을 누리꾼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루리웹 캡처

지난해 1월 4일 ‘어느 아파트의 와이파이 이름들.jpg’라는 제목으로 루리웹에 올라온 글에 달린 댓글. 답 댓글들을 보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공지는 ‘아리나라풀’이라는 닉네임의 누리꾼이 창착한 것을 누리꾼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루리웹 캡처

그런데 누군가 출처를 살짝 지우고 실제 공지인 것처럼 편집해 등록(사진)하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밸런타인데이는 안중근 사형선고일’이라는 인터넷 밈도 비슷한 사례다.”

MBC 프로그램 <심야괴담회>에서 팩트체크 캐릭터를 맡고 있는 곽재식 SF작가의 말이다.

“원래 농담 드립으로 시작한 것이다. 커플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는 경건하게 보내겠다’며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찾다 발견한 것이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다. 사형선고일인 것은 맞는데 거사일도 아니고, 실제 사형된 날도 아닌 크게 의미가 없는 날이다. 억지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안다는 걸 전제로 시작한 드립인데, 여기저기 돌다 보니 원래의 유머코드가 세탁돼 꽤 그럴듯하게 퍼진 이야기다.”

“발렌타인 데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 누리꾼 드립으로 시작한 주장에 종편 방송사까지 낚였다. /연합뉴스TV 캡처

“발렌타인 데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 누리꾼 드립으로 시작한 주장에 종편 방송사까지 낚였다. /연합뉴스TV 캡처

결론을 내자. ‘604호 와이파이 괴담’은 실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공지는 오랫동안 돌던 캡처 이미지에 지난해 1월 누리꾼이 붙인 ‘드립’이었다. 누군가 이 ‘드립’의 출처를 삭제하면서 진짜 공지로 탈바꿈해 그럴듯한 괴담으로 발전한 사례다. 인터넷 밈 전파 과정에서 특정 문맥 탈락 등으로 일어난 돌연변이, 변태를 일으킨 사례로 보면 될 것 같다. 오늘의 팩트체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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