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벽을 탄다, 이 짜릿한 성취감 ‘터치’

2021.06.11 17:18 입력 2021.06.11 18:45 수정

남녀노소 누구나 즐긴다 스포츠클라이밍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클라이밍이 생활체육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에서 홀드를 잡고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 ‘클라이밍계의 박세리’로 불리는 이재용 강사가 직접 강습에 나섰다(작은 사진 아래). 이석우 기자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클라이밍이 생활체육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에서 홀드를 잡고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 ‘클라이밍계의 박세리’로 불리는 이재용 강사가 직접 강습에 나섰다(작은 사진 아래). 이석우 기자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회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비가 와서 몸이 찌뿌드드하다”는 빈말 한마디 없다.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손가락 보호용 테이프를 감고 스트레칭을 준비했다.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냅다 벽을 타는 이도 있었다. 3월 말부터 강습을 받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 기초반 회원들이다. 회원 16명은 지난 2개월 동안 주 2회, 기초 과정을 함께 익히며 돈독해졌다. 스트레칭을 마친 회원들은 3~4명씩 팀을 이뤄 강사가 지정해준 벽면의 홀드를 잡고 벽을 올랐다. 다양한 색의 홀드 중 이번 문제는 보라색. 호기롭게 먼저 나선 양정현씨가 보라색 홀드를 점선 삼아 연결하듯 잡고 디디고 오르더니 이윽고 최종지점(Top) 홀드에 양손으로 매달렸다. 1, 2, 3초 성공!

이어 양씨는 자신이 어떤 루트로 올랐는지 팀원들에게 브리핑했다. 노하우를 공유한 뒤에는 출발 지점에 선 회원을 잡아주고 격려했다. 뒤에서 영상을 찍어주기도 했다. “파이팅” “멋있다” “되잖아!” 등의 구호로 클라이밍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회원들이 “클라이밍계의 박세리”라고 자랑한 이 수업의 강사는 1990년대 아시아를 제패한 1세대 스포츠클라이밍 스타 이재용(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교육안전팀)이다. 경기 해설자이자, ‘암벽 여제’ 김자인과 박희용, 사솔 등 걸출한 클라이밍 선수를 배출한 지도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왕초보’도 ‘국(가)대(표) 감독’ 출신에게 배울 수 있는 스포츠. 2020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프로의 영역이자,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대중에게 스며들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 아닐까 싶다. 오는 8월3일부터 경기가 시작되는 도쿄 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에는 ‘제2의 김자인’으로 불리는 고교생 서채현 선수와 아시아 최초로 2015년 볼더링 남자부문 세계랭킹 1위를 기록한 천종원 선수가 출격한다.

‘암벽 여제’로 불리는 김자인 선수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볼더링 경기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암벽 여제’로 불리는 김자인 선수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볼더링 경기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암벽등반 기량 향상 위한
훈련이 경기로 발전한 것

■ 스포츠클라이밍의 대중화 이끈 볼더링

스포츠클라이밍은 암벽등반 기량 향상을 위해 인공 암벽에 부착된 홀드를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디며 오르던 훈련이 경기로 발전한 종목이다. 최초의 스포츠클라이밍대회는 1971년 구소련에서 개최됐고, 국내에서는 1981년 전국선수권대회가 시작됐다.

올림픽을 비롯한 대회에서는 리드경기, 스피드경기, 볼더링경기 등 3종목을 치른다. 리드경기(난이도경기)는 높이 15m, 경사각 90~180도 내외의 인공암벽에서 난이도를 고려하여 설계한 루트를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오르는 선수가 승리한다. 끈기와 버티기, 지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리드경기가 클라이밍의 마라톤이라면, 스피드경기는 100m 달리기다. 높이 15m, 경사각 95도의 인공암벽을 오르는 시간으로 순위를 가린다. 경쟁자 2명이 동일한 루트를 오르는데 5초 내외로 승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을 보는 듯한 플레이에 긴박감이 넘친다. 두 경기는 안전벨트와 로프를 사용한다.

거친 홀드를 잡고 오르다보면 물집이 잡히거나 굳은살이 생기기 십상이다. 장희정씨는 “초크 사용과 굳은살로 손바닥이 건조해지면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거나, 바셀린을 바르면 다음날 편해진다”는 팁을 알려줬다.  | 장희정씨 제공

거친 홀드를 잡고 오르다보면 물집이 잡히거나 굳은살이 생기기 십상이다. 장희정씨는 “초크 사용과 굳은살로 손바닥이 건조해지면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거나, 바셀린을 바르면 다음날 편해진다”는 팁을 알려줬다. | 장희정씨 제공

리드경기·스피드 경기 외
대중적 인기 견인한 볼더링
코스마다 게임 레벨업 느낌
도전·성취감 ‘최고의 매력’

볼더링경기는 시작 홀드와 끝 홀드가 정해진 루트를 마치 퍼즐을 풀 듯이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4~5m 높이의 인공암벽 8~10세트를 등반하여 해결한 문제 수와 등반 중 시도한 횟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비교적 낮은 인공암벽을 무대로 하며 특별한 장비나 로프 없이 암벽화만 있으면 된다. 유연성, 힘, 균형감각, 문제 해결 능력 등이 적절히 발휘되어야 한다.

볼더링은 테이프(분홍색)의 방향에 맞춰 같은 색의 홀드(파란색)를 따라 벽을 타고 목표지점까지 오르는 종목이다. | 장희정씨 제공

볼더링은 테이프(분홍색)의 방향에 맞춰 같은 색의 홀드(파란색)를 따라 벽을 타고 목표지점까지 오르는 종목이다. | 장희정씨 제공

목표 지점을 향해 로프의 위치를 옮겨가며 팔과 다리를 뻗어 나아가는 선수들의 기량을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는 리드경기는 ‘스포츠클라이밍의 꽃’으로 불린다. 개인기에 가까운 선수의 화려한 동작과 문제를 푸는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볼더링은 최근 스포츠클라이밍의 대중적인 인기를 견인한 종목이다.

전국 동호인 80만명 추정
전국 암벽장 300개소 가량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천종원, 사솔, 김자인 선수가 금·은·동메달을 획득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 동호인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맹 추산 동호인 수는 80만명. 국내 스포츠클라이밍동호인대회(노스페이스컵)는 20분 만에 200명의 참가 신청이 마감됐다.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의 외벽을 장식한 암벽. 리드경기는 높이 15m, 경사각 90°~180°내외의 인공암벽에서 난이도를 고려하여 설계한 루트를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오르는 선수가 승리하는 종목이다. 안전벨트와 로프가 필수다. | 이석우 기자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의 외벽을 장식한 암벽. 리드경기는 높이 15m, 경사각 90°~180°내외의 인공암벽에서 난이도를 고려하여 설계한 루트를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오르는 선수가 승리하는 종목이다. 안전벨트와 로프가 필수다. | 이석우 기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클라이밍, 볼더링 등의 해시태그로 수십만건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온다. 국내 최초 클라이밍 동호회로 알려진 ‘나무늘보’를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직장인 권상혁씨(36)는 “약 3년 전부터 볼더링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대중성이 더욱 커졌다”며 “2년 새 서울시내 실내 암벽장이 2배로 증가했음에도 이용자가 늘어서 붐비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강사는 서울시 실내 암벽장은 3년 전 50여곳에서 코로나19 이전까지 70여곳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현재 전국의 실내외 암벽장은 약 3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인공암벽장업이 체육시설법에 포함됨에 따라 체육시설물로 허가를 받아야 운영 및 개업이 가능해져 조만간 인공암벽장업체 숫자가 파악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니아들은 주중에는 도심 속 외벽이나 실내암벽장을 찾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자연 바위를 찾아 클라이밍을 즐긴다.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에 푹 빠진 강습생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클라이밍, #볼더링 등의 키워드로 수십 건의 영상과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에 푹 빠진 강습생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클라이밍, #볼더링 등의 키워드로 수십 건의 영상과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 이석우 기자

■ 최고의 매력은 성취감

자전거를 즐겨 타는 직장인 장희정씨(31)는 “다른 운동을 하나 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운동 종류별 장단점이 적혀 있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실내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당장 살빼기보다는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으며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이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회사 인근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강습을 받은 뒤 그 기록을 자신의 블로그(야근러 히댕댕의 취미생활)에 연재했다. “경쟁심리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하면 계속 난이도에만 집중해 무리하고 오버트레이닝을 해서 금방 지쳤을 것”이라는 장씨는 “혼자 하면서 자신의 템포대로 갈 수 있어서” 클라이밍을 계속 즐길 수 있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즐겁게 운동하는 동안 힘이 생기고 근육이 붙었으며 체력까지 좋아졌다는 장씨는 “수영이나 헬스처럼 방법만 알면 언제든지 가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고로 뽑은 클라이밍의 장점은 “계속 도전하던 (볼더링 코스의) 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이다.

양정현씨도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커서 지구력, 승리욕을 기르기에 이만한 게 없다”면서 “4학년 딸아이의 영어학원을 제쳐 두고 클라이밍 강습에 등록시켰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권상혁씨는 “홀드에 매달렸을 때는 스트레스 같은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또 “볼더링 코스마다 문제를 푸는 재미가 마치 게임 레벨업을 하는 느낌이라 젊은 클라이머들이 선호하는 듯하다”고 풀이했다. 코로나19 이전 700여명에 달했던 ‘나무늘보’ 회원이 만든 문화가 이른바 ‘암(벽)장 투어’다. 당시에는 주말마다 30~40명이 모여서 노하우를 공유하고, 왕성한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코스를 찾아 전국의 새로운 암벽장을 누비곤 했다. 동호회 안에서 열 커플이 탄생했다는 훈훈한 후기도 있다. 권씨는 “취미의 힘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거든다. “평생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도 강점으로 언급했다.

이재용 강사는 “현재 수업 참여자 중에는 65세도 있으며, 주변에는 80대 선배도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단신(153㎝)인 김자인 선수가 세계를 제패했듯, 신체 조건에도 크게 제약이 없다. 장희정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클라이밍장을 선택한 이유로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여성들도 탈 수 있도록 홀드를 배치한 센스”를 꼽았다.

대한산악연맹은 “경기가 아닌 순수 스포츠클라이밍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허용된 한계나 시간만큼 도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외적인 힘을 이용하다보니 일종의 운이 작용하지만, 클라이밍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스포츠라 훨씬 만족감이 크다”는 해석도 들려줬다.

기본 지키면 안전한 스포츠
8세부터 60대까지 일일강습
전 ‘국대’ 감독 이재용 강사
“체력·정신수양에 이로워”

■ 남녀노소 누구나 가능한 안전 스포츠

지난 5월15일 기자가 참여한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스포츠클라이밍 일일체험 강습반의 수강생은 8세부터 50대 중년까지 다양했다. 나이와 성별 구분 없는 구성원이 한자리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험은 참 소중했다. “힘으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몸의 모양을 삼각형으로 만들어서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이동하라”는 이재용 강사의 이론 강의를 경청한 어린이들은 이론과 실전을 능란하게 넘나들었다. 화살표를 따라 초보용 빨간색 홀드를 잡고 올라 목표 홀드에 양손으로 3초간 매달리고 ‘문제를 해결한’ 어린이들은 두툼한 쿠션으로 이뤄진 바닥으로 일말의 망설임 없이 가볍게 뛰어내렸다. 어린이들의 습득 능력을 직접 본다면, 초심자인 어른이 스스로를 ‘○린이’라고 일컫는 허튼소리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월강습반 회원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는 이재용 강사. 김자인, 사솔 등의 선수를 이끈 그는 스포츠클라이밍계의 1세대 스타로 손꼽힌다. | 이석우 기자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월강습반 회원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는 이재용 강사. 김자인, 사솔 등의 선수를 이끈 그는 스포츠클라이밍계의 1세대 스타로 손꼽힌다. | 이석우 기자

이재용 강사는 약 8세부터 만 14세에게 좋다며 스포츠클라이밍을 권했다.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위험 안에서 목표를 설정한 뒤 나아가고 또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라며, 과거 ‘태권도장’의 역할을 클라이밍 교육장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체력 및 정신 수양에 이롭다는 얘기다.

대한산악연맹은 “정확한 기본 방법을 익히고 기본 사항이 지켜지는 상황에서 한다면 매우 안전한 스포츠”라고 밝히고 있다. “취미가 클라이밍”이라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배워야 할까. 이재용 강사는 “벽 위에서 내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실제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형태뿐만 아니라, 상상하는 형태, 그 이미지도 누군가에게 구술할 수 있는 능력이 될 때까지 3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클라이밍의 역사부터 생리학적 접근 등 이론도 겸한다.

주말 2시간 일일 체험 수강료가 성인 1만1700원, 어린이 8800원. 기초·특별반 월 강습료도 3만원 남짓이라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의 월 강습반 예약은 순식간에 끝난다. 이재용 강사는 “클라이밍 문화가 더욱더 대중에게 신뢰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로 만들기 위해 조성된 상징적인 교육시설”이라고 전했다. 3월 하순부터 시범 운영된 센터의 이용객은 5월 말 현재 5000명을 넘겼다. 대한산악연맹의 전국 17개 시·도연맹에서도 유소년, 청소년, 장년 및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무료 스포츠클라이밍 체험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클라이밍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생활스포츠지도자와 대한산악연맹의 등산강사 국가 자격증이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이 인기를 얻으며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만을 위한 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만들기 위해 문체부와 함께 준비 중이다.

알록달록 예쁜 색 홀드는 마음을 사로잡지만, 느낌은 발뒤꿈치 각질 제거용 돌처럼 거친 재질이다. 물집이 잡히거나 굳은살이 생기기 십상이다. 장희정씨는 “초크 사용과 굳은살로 손바닥이 건조해질 때 핸드크림이나 바셀린을 듬뿍 바르면 다음날 편해진다”는 팁을 공유하며 “마냥 힘만 써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요령도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분들도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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