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자녀, 너의 세상으로 가는 길

2021.11.13 14:51 입력 2021.11.15 10:43 수정

퀴어축제에 참여한 나비(왼쪽)와 비비안. 엣나인필름 제공

퀴어축제에 참여한 나비(왼쪽)와 비비안. 엣나인필름 제공

연신 소매 끝으로 눈가를 닦으면서도 계속 웃음 짓게 되는 시간이었다. 월요일 오전 반차까지 쓰고 시사회에 간 보람이 있었다. 진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행복해졌으니까. 50대가 돼도 세계란 저렇게 열릴 수 있구나! 계속 성장하는 두 여성을 응원하며, 두분의 생기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11월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얘기다. 나비(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명)는 34년차의 베테랑 소방공무원이다. 레즈비언은 알았어도 트랜스젠더는 잘 몰랐다. ‘딸’ 한결이 가슴을 절제하고 남성으로 성별을 정정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비의 첫 반응은 이랬다. ‘사회에서 여성으로 차별을 받아와 남성이 되고 싶다는 거냐.’ 자신의 몸을 낯설어하고 혐오하며 살아온 한결의 고통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던 그는 앞으로의 인생에선 한결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기로 한다.

비비안(활동명)은 27년차 항공승무원이다. 국제선을 수없이 오가며 ‘저 커플 게이래’ 소리를 들어봤지만 내 아들이 게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들 예준이 장문의 편지로 ‘남성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이렇게 말한 것을 지금까지도 후회한다. ‘불행한 인생을 살게 낳아준 엄마가 미안하다.’ 불행할 이유가 없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성소수자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라면. 사랑하는 남성과 울고 웃고 다투고 사랑하며 살면 된다. 혼란을 딛고, 게이 아들과 동성 연인을 편견없이 대하는 ‘쿨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발랄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두 사람은 축제 현장에서 한결과 예준이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를 고스란히 마주한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인권을 가장한 변태, 절대 반대….’ 기독교단체 등 반대집회 참가자들은 축제 참가자들을 때리고, 욕하고, 위협했다. 나비는 말한다. 이렇게 위험한 데라면 자식을 안 보내고 싶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세상이 잘못됐다고 나서서 말하게 된다고.

50대 엄마와 20대 자녀가 좌충우돌하며 서로 믿고 이해해나가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지만, 서로를 단단하게 이어주고 성장시켰다. 변규리 감독은 4년에 걸쳐 그 여정을 담아냈다. 가장 묵직한 대목은 소방관인 나비가 한결의 ‘죽음’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숙대 트랜스젠더 여성 합격 포기 사건’ 때, 한결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 복용하던 정신과 약을 늘리고 상태를 살펴야 했다. 엄마는 말한다. “이런 혐오와 차별이 계속된다면 한결이가 삶을 포기하는 순간이 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변규리 감독의 말처럼 “영화를 통해 같이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시급한 것은 관련법을 마련하는 일이다. 헌법은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무엇이 차별이고 어떻게 구제할지를 제대로 다루는 법이 없다. 때문에 시민사회, 인권단체들은 차별금지법 통과를 계속 촉구해왔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일상적인 혐오를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법적·제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은 생존의 문제다. 정치권이 더 이상 차별금지법을 ‘나중에’로 미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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