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국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 “표현의 자유는 생명 그 자체”···국내서 첫 대규모 개인전

2021.12.13 16:10 입력 2021.12.13 22:05 수정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11일부터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아이웨이웨이의 대규모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관 측은 언론사 미술 담당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아 아이웨이웨이에게 전했다. 중국의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아래 일문일답은 미술관이 제공한 아이웨이웨이의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아이웨이웨이는 이번 전시에 맞춰 방한하려 했으나, 거주지를 둔 포르투갈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며 오지 못했다고 미술관은 알렸다.

-얼마 전 홍콩의 M+문화박물관이 선생님의 대표작인 <원근법 연구> 작품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관내 전시에서도 제외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문화예술검열 강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이고, 왜 중요한 가치라고 보시는지요?

“보통 표현의 자유는 좁은 의미로 어떤 정치환경이나 정치체제 안에서 개인이 실제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라 여겨지지만 더 중요하게는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란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이상 없게 됩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인 것입니다. 이 가치는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현실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생명으로서 개체가 당연히 자신만의 특징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 없이는 그 누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이 자유는 사회적인 약속이어야 하며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M+미술관 문제로 돌아가면,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홍콩 정부 산하의 문화기구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어느 수준의 검열을 받고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가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홍콩에 대해서만 이러는 게 아닙니다. 중국은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조명(Illumination)’,  2009년, 벽지 설치, 컬러 프린트, 가변 설치.  ⓒ Ai Weiwei Studio, 아이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br /><br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발생 후, 아이웨이웨이는 시민조사단을 결성해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작가의 블로그에 올렸다. 또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모아 무료로 배포했다. 작가의 블로그는 2009년 5월 정부에 의해 폐쇄 당했지만, 아이웨이웨이는 트위터와 유튜브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조명’은 2009년 8월12일 아이웨이웨이가 탄줘런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쓰촨성 청두에 갔을 때, 새벽 5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두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인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조명(Illumination)’, 2009년, 벽지 설치, 컬러 프린트, 가변 설치. ⓒ Ai Weiwei Studio, 아이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발생 후, 아이웨이웨이는 시민조사단을 결성해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작가의 블로그에 올렸다. 또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모아 무료로 배포했다. 작가의 블로그는 2009년 5월 정부에 의해 폐쇄 당했지만, 아이웨이웨이는 트위터와 유튜브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조명’은 2009년 8월12일 아이웨이웨이가 탄줘런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쓰촨성 청두에 갔을 때, 새벽 5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두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인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만약 한국에서 <원근법 연구> 작업을 하신다면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바로 대답하기는 좀 어렵네요. 제 작품은 모두 즉흥적으로 제작된 것이며, 따로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도착한 곳에서 셀프 촬영을 했던 것이며,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찍고 싶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이 일상생활과 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을 무렵 저는 로마에서 새롭게 각색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가 이 공연을 갑자기 취소해 충격이 컸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사태가 막 폭발했고, 이후 유럽으로 확산되는 출발지였습니다. 그래서 2020년 3월로 예정되었던 공연을 취소했고, 내년 3월에 오페라 <투란도트>를 다시 공연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제한된 생활을 했는데, 계속 스스로의 상태를 조정해 새로운 제약에 적응하려 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와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을 제한하는지도 보았는데요, 저는 정부가 개인이 스스로의 생명을 관장하는 일에 제한을 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기본권으로, 생로병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정부가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했고, 중국이 가장 심했습니다. 그들은 군사적 방식으로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습니다.

사실 예술가로서 저는 이렇게 제약이 많은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정치 난민으로서 아주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습니다. <바퀴벌레>, <로힝야>, 그리고 우한 코로나 상황을 다룬 <Coronation(코로네이션)>입니다. 네 번째 다큐멘터리인 <나무>도 이미 완성했습니다.

제 작업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이나 예술가의 역할이 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술이나 예술가에게 정해진 역할은 없습니다. 만약 역할이란 것이 있다면 인류의 환경이나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겠죠.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변합니다.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사회적 대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송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예술은 이미 반은 죽은 상태이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미학, 철학적 사유는 사실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세계화가 낳은 문제이죠.

이렇게 큰 인류의 고난과 불안에 대한 예술의 반응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한국에 전시된 <검은 샹들리에>는 사람의 두개골과 인체의 골격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죽음에 직면한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묘사한 것입니다.”

-최근의 시진핑 체제 강화가 중국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영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국 예술계가 더 나아지지 않겠지만, 바이든이 중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할 것입니다.”

-중국이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다른 종류의 미디어 작품을 시도하실 수도 있나요?

“예술은 문제와 모순으로부터 나오고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정치 환경이 엄혹한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작품이란 것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바로 이렇습니다.”

아이웨이웨이 ⓒ Ai Weiwei Studio.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이웨이웨이 ⓒ Ai Weiwei Studio.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어떤 채널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제 이슈를 파악하시나요? 또 현재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저 스스로가 바로 국제 이슈입니다. 제 생명, 생명에 대한 이해, 제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죠.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인터넷 공간에서 보내고, 거기서 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봅니다.

일이라는 것은 생활의 일부입니다. 저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일하기와 작업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일하기란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반드시 완성해야만 하는 것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지금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고 요 며칠은 이탈리아에 다녀옵니다. 자주 가는 곳은 영국이고, 작업하느라 독일에도 자주 갑니다. 저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중국 정부가 전국 학교에서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나 정부는 미래의 발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려면 국가 내부에 가치관이 꼭 형성돼 있어야 하고, 가치관은 국가의 형태를 만드는 기초입니다. 제가 누군가의 사상을 연구해 본 적은 없지만 모든 국가는 어떤 가치관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가치관의 표현은 주로 정부가 하는 일이 되는 것이겠죠.”

-<코로네이션>을 제작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상영 후 어떤 불이익을 당하진 않으셨나요?

“<코로네이션>을 비롯해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는 소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기록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역사에 증언을 남기려는 것이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팬데믹이 심각해지던 시기에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지인 우한의 상황을 다룬 <코로네이션>을 완성했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하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반겼지만 결국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중국의 국가 위상이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중국 시장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중국은 유럽,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행동 모든 면에서 그 국가들의 행동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디유초가 원래 선생님의 조수였고, 현재 이탈리아에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그는 패러디를 통해 중국 정부에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어 전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선배 작가로서 그의 용기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바디유초는 청년 세대의 예술가입니다. 그는 적극적이고 집요하죠. 또한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그의 작업은 나름의 의미를 갖습니다.”

-중국이나 중국 미술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사실 중국 미술계와 중국은 하나입니다. 중국이 직면한 도전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정치적, 경제적 힘과 보잘것없는 가치체계로 어떻게 서방 자본주의, 가치체계를 설득하고 정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도전은 점점 거세게 압박할 것입니다.

중국 미술계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미술계는) 생존을 위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추구와 사실 추구라는 입장을 포기했습니다. 언어와 다른 수단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중국 미술이 생존하려면 이러한 태도를 전환해야할 것입니다.”

-예술가로서 선생님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제 자신만을 놓고 보자면,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얘기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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