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또케’와 ‘페페’는 얼마나 다를까? 혐오의 밈으로 결집한 정치 세력의 탄생···책 ‘인싸를 죽여라’

2022.02.25 14:00 입력 2022.02.25 21:42 수정

개구리 페페는 포챈(4chan) 등 극우 성향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아돌프 히틀러, 테러리스트(왼쪽부터) 등의 이미지로 합성되며 백인우월주의, 반여성주의, 네오나치즘, 이슬람 혐오 등을 의미하는 ‘극우의 밈’으로 소비됐다. ‘쿨하고 웃긴’ 밈의 포장 덕분에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온라인 커뮤니티 밖 일반 대중에게까지 자연스레 뻗쳐나갔다. 출처: 웹사이트 KnowYourMeme

개구리 페페는 포챈(4chan) 등 극우 성향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아돌프 히틀러, 테러리스트(왼쪽부터) 등의 이미지로 합성되며 백인우월주의, 반여성주의, 네오나치즘, 이슬람 혐오 등을 의미하는 ‘극우의 밈’으로 소비됐다. ‘쿨하고 웃긴’ 밈의 포장 덕분에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온라인 커뮤니티 밖 일반 대중에게까지 자연스레 뻗쳐나갔다. 출처: 웹사이트 KnowYourMeme

인싸를 죽여라
앤절라 네이글 지음·김내훈 옮김 | 오월의봄 | 252쪽 | 1만6000원

대선 공약에 여성혐오 ‘밈(meme·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인터넷 유행어 혹은 이미지)’이 등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사법정책 공약 보도자료엔 “경찰관이 ‘오또케’ 하면서 사건 현장에서 범죄를 외면했다는 비난도 있(다)”는 문장이 쓰였다. ‘어떡해’의 변용인 ‘오또케’는 2019년 서울 대림동 여성 경찰관 진압 영상과 함께 유포된 말로, 성별을 근거로 여경 전체의 무능을 조롱하는 혐오표현이다. 논란이 일자 윤 후보 측은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밈은 삭제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2019년 ‘여경 무능론’이 확산한 당시 경찰은 대림동 영상의 전체 촬영분을 공개하고 여경의 대처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오또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 집단 전체의 직무 능력을 비하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유희가 된 혐오는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울타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선 공약에 버젓이 등장한 ‘오또케’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성혐오는 ‘쿨하고 재밌게’ 포장된 밈을 통로 삼아 어느새 주류 정치로 나아갔다. ‘밈 공장’처럼 혐오를 유희로 포장해내던 이들을 더 이상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노닥거리는 한심한 누리꾼 정도로 치부할 수 없게 됐음을 보여준 사례다.

미국에는 ‘개구리 페페’가 있다. 페페는 2003년 작가 맷 퓨리의 만화 <보이즈 클럽>에 등장한 캐릭터였다. 어딘가 슬퍼보이는 얼굴로 미국 누리꾼들의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인터넷을 잠식한 젊은 극우 세력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백인우월주의, 반여성주의, 반유대주의, 네오나치즘 등 다양한 극우사상의 신봉자들은 페페를 자신들을 상징하는 극우의 밈으로 만들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자신을 합성한 페페 그림을 트위터에 올려 스스로 밈이 됐다. 페페를 탈취한 이들 역시 온라인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밈처럼 확산했다. 온라인 미디어 제국을 통해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대량으로 뿌리는 ‘대안우파(alt-right)’ 세력의 주류가 됐다.

원작 만화 속 페페는 각종 극우 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작고 행복한 개구리다. ⓒ맷 퓨리

원작 만화 속 페페는 각종 극우 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작고 행복한 개구리다. ⓒ맷 퓨리

한국과 미국, 많은 부분 닮아 있는 이 현상의 기원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미국에서 2017년에 출간된 앤절라 네이글의 <인싸를 죽여라>(원제: Kill All Normies)는 2010년대에 부상한 미국의 혐오 정치의 배경, 인터넷 문화전쟁의 맥락을 살핀다. 온라인 극우주의자들은 어떻게 조롱의 밈을 통해 주류 인터넷문화로, 더 나아가 ‘대안우파’라는 정치적 세력으로 결집하여 부상했을까. 좌파 문화연구자로서 우파와 리버럴의 문화정치학을 비판해 온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저자는 ‘페페’로 결집한 극우주의자뿐만 아니라 이들의 거울상으로 존재하는 ‘온라인 좌익’의 현주소도 살핀다.

책의 제목은 저자의 결론을 효과적으로 함축한다. ‘인싸’로 번역된 단어 ‘normies’는 미국의 극우 남성 커뮤니티에서 “주류의 감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는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은어다. 저자는 극우주의자들이 진보의 형식으로 치부된, 주류를 거부하는 ‘반문화’의 공백을 스스로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아랍의 봄과 월가 점령 운동 등이 불러온 ‘사이버 유토피아’의 환상이 만발하던 2010년대 초반,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리더 없는 수평적 인터넷 중심 정치학” “정치적 무근본성”의 과실을 누린 이들은 뜻밖에도 애초 이 환상에 초대된 적 없는 극우 청년들이었다.

‘오또케’와 ‘페페’는 얼마나 다를까? 혐오의 밈으로 결집한 정치 세력의 탄생···책 ‘인싸를 죽여라’

2010년대 초반, 어나니머스와 위키리크스 등 정치세력화한 해커 운동을 바라보던 좌파들은 “제도권의 전통적 미디어는 더 이상 정치를 통제할 수 없고 리더 없는 이용자 생산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새로운 공론장이 성장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변화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가 권력을 잡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리더 없는 익명의 공론장에 등장한 포챈의 이용자들은 “기괴한 포르노그래피, 은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알아듣는 농담, 잔인한 이미지, 자살·살인·근친강간 충동, 인종차별주의와 여성혐오” 등을 적나라하게 표출했다. 바로 이들이 2016년을 전후해 ‘대안우파(alt-right)’의 이름으로 형성된 다양한 집단을 대중화하고 주류로 끌어올린 세력 ‘알트라이트(alt-light·온라인 밈과 셀럽 중심으로 성장한 젊은 극우주의자)’다. 저자는 “대안우파에 특유의 젊은 에너지와 해커의 전술을 제공한 건 이미지와 유머에 근간을 두는 포챈 그리고 나중에는 에이챈(8chan)이 된 저속한 밈 공장이었다”고 말한다.

이 뜻밖의 포식자들이 ‘반문화’의 공백을 차지한 배경은 무엇일까. 네이글은 책 전반에 걸쳐 ‘리더 없음’과 ‘반문화’, 혹은 ‘반도덕’ 등의 문화적 형식에는 당연하게 진보적인 철학이 깃들 것이라 기대해 온 좌파의 허술함을 꼬집는다. 저자에 따르면 온라인 우익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인물 마일로 이아노풀로스는 “위반적”(transgressive, 금기를 깬다는 의미)이라는 수사를 가장 선호했다. 저자는 “새로운 온라인 우파를 이해하려면 정통 우파에서 공통점을 찾기보다 차라리 1968년 좌파의 슬로건이었던 ‘금지를 금지하라’와 접점을 찾는 편이 유의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아노풀로스를 위시한 온라인 우익은 애국주의와 민족, 공동체 등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나 신보수주의와는 별 관련이 없다. 다만 18세기 마르키 드 사드의 저작, 19세기 파리 아방가르드, 1990년대 ‘광란의 남성 영화’ <파이트 클럽> 등의 전통을 따른다. 지금껏 좌파들에 의해 “위계질서와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급진적 위반”의 형식으로 간주되며 찬사를 받았던 바로 그 전통들이다. 저자는 이들이 “신랄하고 반문화적이고 위반적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놓는 지경까지 왔다”면서 “우리는 진부하고 낡아빠진 반문화적 이상의 가치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인싸를 죽여라>에 따르면 미국의 온라인 우익은 18세기 마르키 드 사드의 저작, 19세기 파리 아방가르드, 1990년대 ‘광란의 남성 영화’ <파이트 클럽> 등의 전통을 따른다. 영화 <파이트클럽>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책 <인싸를 죽여라>에 따르면 미국의 온라인 우익은 18세기 마르키 드 사드의 저작, 19세기 파리 아방가르드, 1990년대 ‘광란의 남성 영화’ <파이트 클럽> 등의 전통을 따른다. 영화 <파이트클럽>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책은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해 “소환하고 낙인찍고 숙청하는” 문화에만 골몰하는, 온라인 플랫폼 텀블러 중심의 온라인 좌파 감수성도 살핀다. 저자는 “매사 심각하고 독선적이며 올바름을 말해야 하는 진보적 소셜미디어의 감수성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절정에 이른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발로 인터넷 깊숙한 곳에 암약해 있던 아이로니컬하고 냉소적인 조롱의 스타일이 주류 인터넷문화로 부상했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 연구에 헌신해온 학자를 일순 ‘트랜스젠더 혐오주의자’로 몰아 낙인을 찍거나,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기보다 경쟁적으로 ‘백인 특권’ ‘남성 특권’ ‘이성애자 특권’만 조롱하는 등 이들의 신경증적인 비방과 숙청, 거듭되는 ‘취소 문화’는 온라인 극우가 부상하는 배경이 됐다는 이야기다.

자칫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가 도리어 ‘반도덕적 극우’를 불러왔다는 책임론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책의 주장은 보다 날카롭다. 온라인 극우가 지금처럼 번성한 배경에는 ‘위반’의 대상이 되는 주류 대중문화의 성격을 ‘여성적인 것’으로 비하하던 관습이 있음을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인싸’, 즉 주류의 문화를 순종과 허영으로 상징되는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이에 대한 반항을 ‘남성적’인 것으로 바라본 ‘반문화’의 오래된 서사를 문제 삼는다. 저자는 “위반과 포르노그래피, 그리고 폭력의 재현들은 정착에 대항하는 힘으로 여겨지며 남성의 공간을 침해하는 여성들을 향한 온라인 증오 범죄의 동력”이 됐다고 분석한다. 온라인 극우들을 집결시켜 번성케 한 비도덕적 하위문화의 핵심에는 “아무 생각 없이 주류 취향을 좇는 젊은 여성을 향한 증오”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저서 <프로보커터> <급진의 20대> 등에서 한국의 정치 담론 지형을 살폈던 김내훈이 번역을 맡았다. ‘옮긴이의 말’에서 그는 “한국에서도 반페미니즘 세력인 신남성연대가 확장세를 보이고, ‘반페미 코인’을 노리는 유튜버들이 준동하며, 페미니스트 혹은 조금이라도 페미니즘적 면모를 보이는 이에게 ‘남성 혐오’라는 언어도단을 휘두르는 집단괴롭힘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이 책은 그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매우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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