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학’ 주동근 작가 “겁이 많은데…짜릿한 재미 주려 더 잔인하게 그린다”

2022.05.24 20:49 입력 2022.05.25 10:07 수정

<지금 우리 학교는>을 그린 웹툰 작가 주동근씨가 주 1회 원고 마감을 마친 지난 12일 모처럼 외출했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그는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가 K웹툰의 원동력”이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지금 우리 학교는>을 그린 웹툰 작가 주동근씨가 주 1회 원고 마감을 마친 지난 12일 모처럼 외출했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그는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가 K웹툰의 원동력”이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지우학’ 웹툰 작가 주동근
올 1월 공개 후 글로벌 1위에 오른 넷플릭스 12부작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웹툰 원작자다. 1983년생.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꿨다. 무서운 이야기를 잘하는 재주가 있었다. 고3 때 YWCA 전국 청소년 만화 공모전에서 이야기만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한 뒤 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다 네이버 도전만화에 올린 한국형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이 2009년 공식 연재되며 웹툰 작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이후 네이버웹툰에 <강시대소동>(2012), <귀도>(2016)를 선보였고 현재 <아도나이>를 연재 중이다.

대학시절 해외 공포영화에 충격
국내엔 좀비물 거의 없던 시절에
가장 한국적인 좀비물 창작의 꿈
그래서 졸업 직후 ‘지우학’ 준비

완결 후 10여곳서 영화 제작 제의
다 거절하고 판권 가지고 있다
이재규 감독이 준비된 듯해 넘겨
포기할 즈음에 결국 내게 큰 선물

단정한 티셔츠 차림에 가벼운 서류가방 하나 들고 나타난 주동근씨(39)는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날카롭거나 그로테스크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낯가림이 조금 있다면서도 술술 말도 잘했다. 잔인하고 무서운 공포만화를 실감나게 그리기로 정평이 난 웹툰 작가인데 일상 모습은 평범한 동네 형이나 아저씨 같았다. 심지어는 “겁도 무척 많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제공

네이버웹툰 제공

<지금 우리 학교는>은 주씨의 웹툰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작품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학교에서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신선한 소재, 긴박한 스토리, 사실적 묘사로 연재 당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올 초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드라마가 나온 뒤 수주간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히트를 치면서 원작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가 1억1000만회를 넘었고 현재 영어·일본어·프랑스어 등 10개 언어로 배포되고 있다. 원작의 힘으로 세계적 흥행을 이끈 ‘K웹툰’의 전형이다.

그는 이미 13년 전에 영화·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지금 우리 학교는>을 기획했다. 좀비 자체가 생소하고, 웹툰도 막 유행할 때인 점을 감안하면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웹툰 작가로 입문해 자리 잡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세계에 통할 한국형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반지하 셋방에서 종일 스토리·그림과 씨름했다. 지난 12일 서울 홍대 인근에서 그를 만나 <지금 우리 학교는>의 창작과 영상화 과정, 웹툰 작가의 일상과 작품관, K콘텐츠 창작자로서의 계획과 포부 등을 들어봤다.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지 궁금해
잔혹한 작품 속 세계에 들어가
내가 이겨낼까 상상하며 얘기 키워
현실로 닥친다면 당연히 도망칠 것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가
K웹툰이 세계서 각광 받는 원동력
차기작에 대한 부담 많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지우학’ 주동근 작가 “겁이 많은데…짜릿한 재미 주려 더 잔인하게 그린다”

- <지금 우리 학교는> 드라마 공개 후 원작 웹툰이 조회수가 예전의 80배나 늘어나는 등 재조명받았는데.

“기쁜 일이다. 공들였던 작품이 오랜만에 빛을 본 느낌이다. 13년 만에 인지도라는 걸 얻었다는 기분도 든다.”

- 2009년에 연재를 시작한 초기작인데,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나.

“대학 시절 해외 공포영화 <28일 후>(2003)와 <새벽의 저주>(2004)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는 좀비물이 거의 없었던 시기다. 그때부터 우리 정서에 맞는 가장 한국적인 좀비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대학 졸업 직후인 2008년부터 <지금 우리 학교는> 웹툰을 준비했다.”

- 처음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뒀나.

“그렇다. 설정을 잘하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좀비물은 가장 자신있는 분야라 주저 없이 택했다. 흔하지 않은 장르라는 점에도 끌렸다. 미국의 유명한 좀비 드라마 <워킹 데드>가 2010년쯤 나왔는데 일부러 안 봤다. 한창 연재 중인 내 작품에 문제가 될까 싶어 그랬다. 나중에 몰아 봤더니 재미있더라. 한국 정서와 다른 점은 많이 보였다.”

- 영상화 제의는 얼마나 있었나.

“2011년 완결 이후에 10곳쯤의 제작사로부터 제의가 왔다. 그런데 대개는 헐값을 부르거나 한국 영화 시장이 어렵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제대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내가 가지고 있자고 생각하며 거절했다.”

- 이후에는.

“그러다 2015년쯤 <지금 우리 학교는> 드라마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을 만났고 드라마화 논의를 처음 나눈 끝에 판권을 넘겼다. 준비가 많이 됐다고 판단했다. 영화보다 수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에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추후에 넷플릭스 드라마가 된다고 전해들었다.”

네이버웹툰 제공

네이버웹툰 제공

- 공포물의 매력은 무엇인가.

“짜릿함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 최대한 잔인하고 무섭게 그리는데.

“몰입감이 좋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무서우면 저 학교에서 진짜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지 않을까.”

- 평소에도 작품 때문에 무섭고 잔인한 생각에만 집중할 것 같다.

“사실은 겁이 많다. 무서운 걸 잘 견디지 못한다. 대신에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좀비나 귀신이 들끓고 잔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작품 속 세계에 들어가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를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키워 나간다. 만약 내게 현실로 닥친다면 도망만 다닐 테지만.”

- 주동근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식 연재와 드라마화가 결정될 때, 거의 안 된다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큰 선물을 안겨준 작품이다. ‘자, 봐라, 기다리면 된다고 했지’라면서 답답한 속을 풀어줬다. 20대 후반 때 반지하 자취방에서 매주 힘겹게 마감하며 함께 살았던 친구이자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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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잘 그렸다. 달력이나 연습장을 휙휙 접고 잘라 칸을 나누고는 그림과 이야기를 얹었다.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술부원이던 그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대학에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졸업 후 서울에서 취직하겠다며 홀로 상경해 1년쯤 여기저기 낙방만 하고, 어두운 자취방에서 만화 몇 컷 그리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살았다. 그러다 번득 정신이 들었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만화가가 꿈인데 왜 남는 시간에만 만화를 그리고 있을까….’ 오기가 생겼다. 제대로 된 스토리를 한번 그려보자 마음먹었다. 이후 네이버의 아마추어 작가 공개 게시판 격인 ‘도전만화’ 코너에 작품을 매주 꾸준히 올렸고, 만화를 봐주는 독자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후 1년 지난 2009년 네이버의 정식 연재 결정이 나왔는데, 그 작품이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필명 ‘동그리’가 웹툰 작가 주동근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 실사에 가까운 정밀한 그림체라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손이 무척 느려서 시간이 많이 든다. 그림을 잘 그린다기보다 열심히 그리는 쪽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그림을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하나.

“그림체가 독특한 편이라 누가 도와주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혼자 작업했다. 분량과 퀄리티를 모두 잡는 게 숙제인데 그림 한 컷에 들이는 시간이 많다.”

네이버웹툰 제공

네이버웹툰 제공

- 스토리와 그림 작업을 어떻게 나눠서 하나.

“스토리를 짜는 게 먼저다. 완벽한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반대로 스토리가 영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림을 계속 파고들기도 한다.”

- 스토리와 그림 중에서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처음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한 장의 그림을 멋지게 그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야기의 힘과 매력이 우선이다.”

네이버웹툰 제공

네이버웹툰 제공

-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편 연재하는 작가의 주간 스케줄은.

“네 번째 웹툰 <아도나이>를 연재 중이다. 마감은 매주 수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한숨 돌리고, 금요일에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상한다. 그리고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바쁘게 마감 작업을 한다.”

-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마감 때는 눈 뜨고 있을 때 어김 없이 작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최소한 하루에 10시간 이상이다. 독자의 시선으로 여러 차례 읽어보며 빈틈없이 완벽한 이야기와 그림을 전하려 노력한다.”

- 대개의 만화가처럼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집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어렵고 불편하지 않나.

“사실은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성격인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고 힘들다. 아바타처럼 사는 느낌이다. 그냥, 못 나가는 걸 받아들이고 집에서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구상하는…, 말하자면 ‘집돌이’인 셈이다. 다시 태어나면 웹툰 작가는 안 하고 마음껏 돌아다니며 대화도 많이 할 수 있는 여행 가이드를 하고 싶다. 내 MBTI는 열정 많은 ‘ENFJ’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1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웹툰 시장 매출 규모는 1조538억원에 달한다. 2017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고 전년(6400억원) 대비 64.6%나 늘었다. 웹툰을 주 1회 감상하는 비율도 응답자의 64.5%로 전년 대비 11.6%포인트 늘었다. 이런 증가 추세는 웹툰의 드라마·영화·게임화가 갈수록 활발히 진행되며 원작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웹툰 원작 드라마는 2020년까지 80여편, 웹툰 원작 영화는 30여편 제작됐고,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세계적인 흥행 실적을 올린 작품도 많다. <이태원 클라쓰> <경이로운 소문> <스위트홈> <승리호> <지옥> 등 흥행작이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삼았다.

K웹툰이 글로벌 콘텐츠로 각광받는 이유는 여럿이다. 인기가 이미 검증됐고, 기술·비용 면에서 영상화하기 수월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바탕이다. 7400여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웹툰 작가들이 해외에서도 통할 K웹툰 창작에 힘을 쏟고 있다. 주씨도 그중 하나다.

-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웹툰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이미 독자들 눈에 선별된 작품들이 세계로 나가고 있는데 그런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고 충분히 많다. 그리고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게 스토리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끌어올리기 어렵다.”

- 글로벌 1위 드라마의 원작자로 이름을 알려 K웹툰의 대표주자가 된 셈인데.

“차기작들에 대한 부담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한참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아직 멀었다고 본다. 한 작품으로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 ‘리셋’하고 출발해야 한다는 각오다. 다만 드라마화 경험은 주위에 공유할 작정이다. 후배 작가들의 의욕을 높일 수 있다면.”

- 앞으로 목표는.

“10개 작품을 더 내놓고 싶다. 센스 있고 스타일리시한 작품들로. 한 편에 1~3년 정도 걸리니 어쩌면 평생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스토리텔러, 진정한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한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펼친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이 ‘취향저격’이다. 또 하나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예전에는 내 상상력을 웹툰 콘텐츠에서 실현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바뀌었다. 웹툰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로도 선보이고 싶다.”

- 웹툰 작가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오늘 한 고등학생이 현실적인 고민을 질문하기에 이렇게 문자로 답했다. ‘언젠가 예술과 현실적인 금전 문제로 고민할 날이 올 겁니다. 10대와 20대 때 제 주위에 미술하던 친구가 많았는데요, 지금은 각자 다른 인생을 그려나가고 있어요. 훗날 본인이 꿈꿨던 삶이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창작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삶을 산다면, 직업에 상관없이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창작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라고.”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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