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피해’ 유우성 “보복 기소한 검사가 검찰수장 되면 밑의 검사들이 뭘 배우겠냐”

2022.05.31 22:59 입력 2022.05.31 23:00 수정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가 지난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유씨는 “사건을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고 그 검사가 명예퇴직을 하고 중요한 직책에 발탁돼 일하고 있다”며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보복 기소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가 지난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유씨는 “사건을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고 그 검사가 명예퇴직을 하고 중요한 직책에 발탁돼 일하고 있다”며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보복 기소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1980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중국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중국 국적을 선택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유씨 남매는 화교 신분이 됐다. 북한에서 의학전문대를 졸업했다. 먼저 탈북한 동창생으로부터 한국에서의 의사 생활을 전해 듣고 동경하던 끝에 2004년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한 후 2011년 탈북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이 됐다. 2013년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총장 후보 거론 이두봉 검사장, 국감서 사과 거부에 소름 돋아
자백 강요한 이시원 검사가 비서관 되자 여동생 통곡하고 충격
국익보다 조직 이익 위한 사람들이 출세…검찰개혁 거꾸로 가

윤석열 정부가 검찰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면서 2013년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소환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그때 그 검사’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잘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원 당시 검사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됐고, 조작 사건이 무죄로 선고된 뒤 ‘보복 기소’를 지휘했던 이두봉 인천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41)에게는 약 10년 전의 그 사건이 악몽이다. 대법원 무죄 확정을 받았음에도, 그를 간첩으로 몰고 보복 기소했던 검사들이 출셋길에 오르면서 악몽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6일 만난 유씨는 이두봉 검사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된다고 하자 “그런 사람을 법을 지키는 수장으로 세우게 되면 그 밑에서 일하는 검사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시원 전 검사의 공직기강비서관 임명에 대해서는 “ ‘오빠가 간첩’이라는 자백을 강요한 검사가 발탁됐다는 소식에 여동생이 통곡하고 충격에 지금도 많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금이라도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스스로 사과하고 그 자리에서 사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건 관련 전·현직 검사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면서 유씨 남매에게 ‘간첩조작 사건’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 당시 검찰은 유씨가 정말 간첩 행위를 했다고 생각한 것인가.

“(검사들이) 스스로 최면을 건 것이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짓말을 계속 이어가야 되는, 슬픈 현실이다. 왜냐하면 그 프레임이 벗겨지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걸 대중 앞에 스스로 드러내야 되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사과한 검사가 있나.

“재판정에서 국가정보원에 있는 모 간부가 우리 가족한테 너무 미안하다며 사과를 직접 했다. 그런데 검찰은 10년 동안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 2019년 검찰 과거사위가 당시 검찰총장에게 사과를 권고하지 않았나.

“그때 문무일 검찰총장만 사과했다.”

- ‘보복 기소’를 지휘한 이두봉 검사장은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검사장)을 법을 지키는 수장으로 세우게 되면 그 밑에서 일하는 검사들은 뭘 보고 배우겠나. 검찰개혁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검찰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씨는 말을 끊고 한참 있다가 대답을 겨우 이어나갔다. 이후 이 검사장에 대한 원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혀 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1심에서 유씨가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뒤,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중국 공문서 증거자료가 위조된 것임이 드러나 외교적 문제로 비화했다. 검찰은 진상조사팀을 구성해 국정원 직원을 구속기소했다. 간첩조작 사건에 관여한 이시원 검사 등이 징계를 받은 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이두봉 부장검사)는 2014년 유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은 이미 2010년 검찰이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수사했으나 기소유예로 마무리했던 사안이다. 검찰이 ‘보복 기소’를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를 기각한 항소심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 이 검사장을 만난 적이 있나.

“없다. TV에서 본 적밖에 없다. 안동완 검사는 법정에서 봤다.”

‘보복 기소’ 당시 이 검사장은 부장검사였고, 안 검사가 실무를 맡았다. 안 검사는 최근 검찰 내부망에 “보복 기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 검사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이 글은 유씨의 간첩조작 사건을 재소환했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현직 검사가 대법원이 인정한 공소권 남용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어서, 많은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 안 검사는 추가로 발견된 증거가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법정에서 새롭게 내놓은 증거가 없었다. (보복 기소가 아니라는 주장은)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다. 비겁한 변명이다. 대법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이 나왔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7개월이 지난 후에야 말을 꺼낸 거다. 이두봉 검사에 대한 검찰총장 이야기가 나오고 이시원 검사가 승진한 시점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 화교인데 중국 국적을 갖고 있었나.

“증조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북한 회령에 머물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가 중국 국적을 선택해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 남매는 ‘재북화교’가 됐다.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국정원에서는 내 신분이 재북화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의 외가 어른들이 북한 정권과 가까워 국정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나를 그냥 탈북민으로 인정해줬다.”

유씨에 대한 간첩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라고 판결받았지만 여권법·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사기 혐의는 유죄였다. 보복 기소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는 유죄가 됐다. 네 가지 유죄는 유씨가 ‘재북화교’라는 신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화교라는 사실을 숨기고 탈북민으로 위장해 여권을 만들고 정착지원금을 받고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것이다.

“간첩으로 내몰리고 내가 간첩이 아니라고 버티니까 화교임을 속이고 탈북민으로 위장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권법 등의 (위반) 혐의를 걸었다. 재북화교를 탈북민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국정원의 재량이라고 한다.”

2006년 북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유씨는 국정원에 자진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때 유씨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이 빌미가 돼 유씨는 간첩 혐의를 받고 2013년 초 기소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가 2014년 초 변호인과 함께 검찰에 출석했다가 조사를 거부한 후 민변 사무실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가 2014년 초 변호인과 함께 검찰에 출석했다가 조사를 거부한 후 민변 사무실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왜 국정원에서 간첩 혐의로 몰아갔다고 생각하나.

“2012년 대선 때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국정원이 비난을 받고 있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 때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어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국정원이 나를 박 시장과 얽어매려고 했다.”

-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시름을 덜었다고 생각했을 텐데, 다시 보복 기소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검찰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2014년 초에 증거조작이 드러나 검찰이 굉장히 비난받았다. 얼마 안 되어 4년 전의 사건을 들춰내어 기소했다.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자신들의 입장이 곤란해지니까 보복 기소를 한 것이다.”

- 왜 그렇게 했다고 보나.

“간첩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유씨)이 뭔가 문제가 많으니까 이렇게 연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검찰이)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들의 조작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 책임을 저한테 떠넘기는 방식이다.”

- 어떤 생각이 들던가.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들은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고, 나는 사실을 주장할수록 힘만 들었다. ‘한 번의 재판(간첩조작)은 이겼는데 또 다른 재판(외국환관리법 위반)에서도 이길 수 있겠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간첩조작 피해’ 유우성 “보복 기소한 검사가 검찰수장 되면 밑의 검사들이 뭘 배우겠냐” 이미지 크게 보기

- 지난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책임자였던 이두봉 검사장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너무 소름이 돋았다.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조작할 수 있고, 검사의 잘못을 처벌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검사는 사과도 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했다.”

간첩조작 사건의 무죄를 최종적으로 인정받는 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유씨가 ‘보복 기소’에서 벗어나는 데는 7년의 세월이 걸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유씨는 재판에만 매달린 셈이다.

- 이시원 비서관의 임명 때 간첩조작 사건이 거론됐다.

“양심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좋은 검사들도 있다. 한국에서 치안이 잘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훌륭한 검사들이 승진해야 한다. 지금 인선(공직기강비서관)이 수긍할 수 있는 인사인지 의문이 든다. 지금이라도 이시원 검사가 스스로 사과하고 그 자리에서 사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직접 본 적이 있나.

“여러 번 봤다. 나중에 증거조작 관련 재판에 그가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도 봤다. 저한테는 정말 무서웠던 사람이다.”

- 여동생(유가려씨)을 취조했던 검사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여동생은 오빠가 간첩이 아니고 억울하다고 했는데, 이 검사가 수사관을 나가라고 한 뒤 여동생과 1대1로 앉아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너희 가족을 도와줄 수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더라. 여동생을 협박한 거다. 이 검사가 발탁됐다는 소식에 (여동생이) 통곡하며 울고 충격으로 지금도 많이 힘들어한다.”

- 유가려씨는 어떻게 지내나.

“정신적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최근 국정원의 초기 조작에 가담했던 수사관의 재판 증인으로 채택됐다. 옛날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진술해야 하는데 굉장히 힘들어한다.”

-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됐지만 검사들은 기소되지 않고 내부 징계만 받았다.

“결국에는 자기 식구 감싸기로 솜방망이 처벌밖에 안 된다.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누구보다 잘 사는 것을 보고 있다. 법의 불공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검찰 역사에 얼마나 큰 오점을 남길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 검찰 쪽에서는 국정원에서 조작한 것을 몰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압수수색하고 수사에서 기소까지 거의 2∼3년 동안 담당했던 검사다. 여동생이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하지 못하게 막았다. 검찰과거사위 조사 결과도 담당 검사들이 사건을 알고도 조작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사위 검사들은 수사 검사들을 대신해서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 국회에서 검찰개혁을 이야기할 때 간첩조작 사건의 예를 많이 든다.

“직접 피해를 당했던 사람으로서 검찰이 개혁돼야만 한다고 본다. 사건을 조작해도 처벌을 받지 않고 그 검사가 중요한 직책에 발탁돼 일하고 있다. 제대로 처벌을 받았다면 조작 사건과 보복 기소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지금 검찰이 주는 메시지는 국익과 국민의 이익보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 더 잘된다는 것이다. 개혁돼야 하는데 그런 점을 검찰 스스로 모르는 것 같다.”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 출신이 대통령실에 포진하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 고위직에 소위 ‘윤석열 사단’이 임명됐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다. 그런 약속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정권에 대해 평가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 검사의 잘못된 점을 비판할 수 있으나 정권에 대한 비판은 피하고 싶다. 저에 대한 비난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 ‘간첩조작 피해자가 이제는 정치도 하려고 하냐’는 댓글이 많다. 저는 그냥 억울하게 당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잘못됐다고 얘기를 하고 싶다. 왜냐하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호우 논설위원

윤호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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