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맨파’·‘스우파’의 차이점을 해석하는 남성들의 ‘둔감한’ 시선

2022.08.26 16:01 입력 2022.08.26 18:55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여성의 경연엔 ‘질투·욕심’이, 남성의 경연엔 ‘의리·자존심’이 있다?

앞서 큰 사랑을 받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여세를 몰아 탄생한 Mnet <스트릿 맨 파이터>는 남자 댄서들로 구성된 여덟 크루가 댄스 배틀을 펼치는 댄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소 과격하고 살벌한 분위기의 예고편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스트릿 맨 파이터> 공식 예고편 영상

앞서 큰 사랑을 받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여세를 몰아 탄생한 Mnet <스트릿 맨 파이터>는 남자 댄서들로 구성된 여덟 크루가 댄스 배틀을 펼치는 댄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소 과격하고 살벌한 분위기의 예고편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스트릿 맨 파이터> 공식 예고편 영상

왜 남자들은 쓸데없는 말을 할까. 지난 8월23일 첫 방영한 Mnet <스트릿 맨 파이터>(이하 <스맨파>) 제작보고회에서 제작을 총괄하는 권영찬 CP는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와의 차이에 대해 “여자 댄서들의 서바이벌에는 질투,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 댄서들은 의리와 자존심이 자주 보였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사실이라 해도 특정 성별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하는 말을 그것도 본인이 CP를 맡았던 프로그램에 대해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이 아니다. 1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졌을지도 모르니 다시 상기시켜주겠다.

<스우파> 1화부터 여성 간 경쟁을 질투와 음해가 난무하는 ‘캣파이트’ 서사로 악마의 편집을 시도한 건 제작진이었고, 정작 시청자들은 그런 악마의 편집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여성 댄서들의 춤에 대한 자부심과 서로에 대한 존중, 각 무대마다의 탁월한 역량에 열광했다. 프로그램의 최고 명대사로 꼽히는 허니제이의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가 나왔을 때 방송사는 ‘캣파이트’를 기대하며 쾌재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해당 대사는 무대에서 자신들을 불사르는 여성들 간의 뜨거운 경쟁을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다. 그러니 권영찬 CP의 말은 헛소리다.

여성의 경쟁을 향한 부정적 편견
남성 CP는 성차별적 프레임
진행자는 ‘기 안 빨려서 편하다’

여성을 먼저 내세워 성공한 포맷
남성 버전엔 포상도 키워 지원
두 버전의 구도는 평등하지 않아

‘스맨파’의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
단, 남자들은 ‘쓸데없는 말’을 말자
그것은 사실이 아닌 헛소리이므로

남자의 쓸데없는 말은 약 한 달 전에도 나왔다. <스우파>에 이어 <스맨파>에서도 진행을 맡은 가수 강다니엘은 팬과의 소통 플랫폼에서 <스맨파> 참여 크루들과의 친밀함을 이야기하던 도중 “솔직히 말하면 남자들이라 너무 편하다. 행복하다. 기 안 빨려서. 원래 되게 무서웠다. <스걸파> 때가 더 무서웠긴 했는데 근데 지금이 더 좋다”고 말해 일부 팬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남자 60명 앞에서 시낭송 해봐라 무섭지 않나”라며 “나 큐카드 벌벌 떨리고 그랬다. 처음에 화장도 아이라인 하신 누님들인데 성별로 그런다니 할 말을 잃었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스맨파> 1화에서도 노골적으로 싸움을 붙이는 ‘노 리스펙트’ 미션과 함께 각 크루의 경쟁 심리는 살벌하게 연출됐고, 가수 보아를 비롯한 3인의 판정단은 압박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라인 하신 누님들’의 경쟁이 유독 더 기 빨리고 무섭다면, 그것은 아는 형들의 경쟁과 알력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면, 여성의 그것은 뭔가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강다니엘은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빠르게 사과했지만, 결과적으로 강다니엘과 권영찬 CP는 본인들의 의도와 반대로 <스맨파>에 대한 부정적 여론부터 형성한 셈이 됐다.

만약 <스우파>와 <스맨파>의 명백한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여성들의 질투나 욕심, 혹은 기 센 언니들에 대한 불편함 따위의 편견에 찬 주관적 평가를 남기기보단 객관적 변화를 따져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번 <스맨파>의 우승 크루 포상은 상금 5000만원, BMW 전기 세단, KB국민카드 광고 모델 기회다. 지난 <스우파>에선 우승 크루 특전으로 트로피만을 공지했다가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비판 여론이 끓어오르자 부랴부랴 상금 5000만원을 책정한 바 있다.

물론 Mnet의 대표 서바이벌 시리즈 <슈퍼스타 K>가 그러했듯 첫 시즌의 성공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포상이 커지는 건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불확실성 앞에 먼저 내세우는 것이 여성 대상 프로그램이고, 그것의 성공 이후 넉넉해진 자원이 같은 포맷의 남성 버전에 지원된다는 것이다. <스우파>와 <스맨파>가 그러하며,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 2가 그러했으며,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그러했고, MBN <당신이 바로 보이스퀸>과 <당신이 바로 보이스킹>도 그랬다. <프로듀스 101> 첫 시즌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강다니엘은 시즌 2에서 우승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을 수 있으며,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폭발적 반응과 시청률은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이 만들어낸 압도적 영웅 서사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이들 프로그램은 첫 시즌임에도 작지 않은 우승 베네핏을 제시했다. <스우파>는 그조차 보장되지 않는 열약한 상황에서 각 출연자들의 실력과 매력으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그 덕에 <스맨파>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남자들의 쓸데없는 말은 남자니까 속 편히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성이기에 훨씬 튼튼한 안전망 안에서 더 나은 보상을 얻을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말,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할 수 있는 말. <프로듀스 101> 시즌 1의 여성 출연자 101명은 사전 프로모션에서 ‘Pick me’를 외치며 자신들을 뽑아 달라고 어필한 반면 시즌 2의 남성 출연자 101명은 동일한 프로모션에서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과시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후자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건 잘못된 게 맞다. 예민함이 여성의 몫인지는 모르겠으나, 둔감함은 남성의 몫이다. 이러한 둔감한 관점에서 각각의 남녀 버전은 두 성별에 제공된 평등한 기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먼, 미스, 퀸과 맨, 미스터, 킹이 짝을 맞춘 대구(對句)는 착시다. 여성 출연자를 특정한 프로그램, 그리고 그것이 성공한 이후 만들어진 같은 포맷의 남성 버전 프로그램에는 성별을 특정하지만, 처음부터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엔 성별을 명시하지 않는다. MBC의 첫 아이돌 서바이벌인 <언더나인틴>, 역시 SBS의 첫 아이돌 서바이벌 <LOUD: 라우드>는 모두 보이그룹을 뽑지만 굳이 ‘보이’를 명기하지 않았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밴드 조합을 선보이겠다던 JTBC <슈퍼밴드> 시즌 1은 그럼에도 여성 멤버의 참가는 불허했다. 남성들만 모일 때는 굳이 성별을 밝히지 않고 쉽게 보편의 위치를 점하지만, 여성만 모일 땐 여성임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성공해 남성 버전이 만들어질 때야 비로소 남성의 존재가 제목에 드러난다. <스우파>를 비롯해 여성의 존재가 명시된 제목들은 사실 그들이 보편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증거에 더 가깝다. <스우파>와 <스맨파>의 일대일 구도는 조금도 평등하지 않다.

물론 이러한 누적된 불평등의 맥락으로 <스맨파>를 백안시하고 보거나, 출연 크루들의 노력과 경쟁을 폄하하는 건 너무 엄혹한 일이다. <스우파>가 이뤄낸 성취를 마중물 삼아 그에 못지않은 멋진 춤 경연이 벌어진다면, 그 안에서 정말 의리와 자존심의 서사를 구현한다면 출연자에게도, 방송사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하여 한 번 더 강조하건대, 남자들의 쓸데없는 말은 정말로 쓸데가 없다. 당장 나부터 <스맨파> 1화를 보며 대체 얼마나 <스우파>보다 그렇게 대단히 남자들의 의리가 빛나는지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됐다. 그게 <스맨파>에 좋은 일일까. <스우파>와 비교해 싱글벙글 웃으며 훨씬 여유롭게 대응하는 강다니엘에게서 더 발전한 진행자를 발견하는 게 온당하겠지만, 여성의 경쟁 앞에선 기가 빨리고 아는 형들 경쟁은 편하고 재밌는 남성 카르텔의 일원처럼 느껴지는 게 시청자의 잘못은 아닐 게다. 이게 갓 시작한 프로그램에 좋은 분위기일까. 남자들의 쓸데없는 말은 궁극적으로 남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남 순서로 제작된 서바이벌이 대부분 그러하듯 <스맨파>도 이러한 설화와 상관없이 전작보다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스우파>에 대한 존중으로 시작했더라면 훨씬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여성들이 맨바닥에서 일궈낸 레드카펫을 걷어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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