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지식 한곳으로…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지식 활용의 새 장 열다

2023.05.19 21:36 입력 2023.05.19 21:40 수정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6) 지식을 수집하기 시작하다

19세기 독일 화가 오토 본 코빈이 그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상상도. 당시 고고학적 증거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위키피디아 이미지 크게 보기

19세기 독일 화가 오토 본 코빈이 그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상상도. 당시 고고학적 증거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위키피디아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유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제 우리는 지적 행위를 이루는 두 번째 동사로 ‘수집하다’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무엇인가를 모은다. 필자의 어릴 적 경험을 떠올려보면 우표나 동전을 모으기도 했고, 요즘 아이들은 특정 캐릭터 카드를 모으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무엇인가를 모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수집을 하는가?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수집하는 대상이 지닌 가치에 따라 제각각 다를 것이다. 때로 우리가 모으려 하는 것들이 보존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 진귀한 것들이어서 도로 팔았을 때 경제적 이익이 남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은 모은다는 것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낱개로 존재했을 때보다 꽤 많은 것들이 하나의 컬렉션이 되어서 더 빛을 발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듯이.

그러나 반대로 사실 우리가 수집하지 않는, 혹은 수집하지 못하는 것들도 꽤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수집한다는 것은 수집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한데 모을 만한 충분히 매력적인 이유가 있고, 또 그것들을 모으는 것이 실제로 가능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관심을 쏟고 있는 ‘지식을 수집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생각할 지점이 많은 행위이다. 최소 두 가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지식은 어떻게 해서 수집할 만한 대상이 되었는가? 둘째, 어떻게 지식을 수집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 되었는가?

이 질문들은 지식이 별다른 매력이 없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수집할 만한 매력적인 대상으로 변모했으리란 이야기는 아니다. 고대부터 오랫동안 지식은 수집해야 할 대상이었다기보다는 사람을 거쳐 입에서 입으로 전수해야 할 대상이었다는 점을 환기하려는 것이다. 한 세대의 지식을 그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것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지식을 이어주는 것으로 충분한 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구술문화의 전통에서 지식은 오늘 우리가 상상하듯 책 속에 붙잡아 선반에 올려둘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도서관의 어원 ‘비블리오테케’는 ‘책을 놓아둠’이란 뜻이다). 그때의 지식은 한곳에 포획돼 멈춰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일 속에 녹아들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할 것이었다. 이런 오랜 전통을 깨고, 지식의 전수를 넘어 더 본격적으로 방대하게 지식을 수집해야 하는 일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사람들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 끊임없이 움직이던 지식을 모두 모으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최대 50만개 장서에 ‘색인’만 120권 달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도서관에서부터 찾아보려고 한다. 기원전 3세기쯤 그 유명한 도서관(정확히는 ‘무세이온’)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도 문서들을 수집했던 몇몇 도서관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7세기 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에 아슈르바니팔 왕의 장서 보관소가 있었다고 하고, 아테네의 참주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도 기원전 6세기에 비슷한 취지의 도서관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최초의 도서관’이란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특별한 것은 지식을 수집한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첫 정점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름을 따라 세워진 도시에서 지식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 이 도서관이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소요학파 철학자인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였던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가 기원전 3세기 초 이집트로 옮겨갔고, 프톨레마이오스 소테르의 궁정에서 조력자로 활동하며 도서관의 건설과 장서들의 수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그러나 고대의 많은 기록들이 그렇듯이 이 도서관에 얽힌 여러 전설들 속에서 몇몇 확실히 믿을 만한 사실들을 골라내는 작업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 고대 지중해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에서부터 얻을 수 있었던 방대한 양의 장서들이 수집돼 있었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책들이 소장돼 있었는지 가늠해보기 위해, 학자들은 그 당시 책의 형태였던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의 개수를 기준으로 적게는 4만개부터 많게는 50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산을 해왔다. 정확한 개수야 어찌 됐든, 헬레니즘 시기 위대한 시인이자 학자였던 칼리마코스가 도서관이 소장한 장서들의 색인(index) 격으로 총 120권으로 구성된 피나케스란 이름의 장서 목록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곳에서 방대한 지식의 수집이 이루어졌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안정적 파피루스 수급 바탕으로 지식의 체계 갖춰지고 검증·경전화 작업 시작…여러 책의 지식을 발췌해 새로운 지식 창조 가능해져

그러나 고대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라는 명예만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특별함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도서관의 목적은 막연히 방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알려진 ‘모든 지식’을 수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도서관이 자리 잡았던 알렉산드리아가 지중해 세계의 주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이 ‘모든 지식’을 수집하려 한 야심찬 계획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알렉산드리아를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유하던 책들을 도서관의 학자들에게 제출해야 했고 이 책들이 필사된 후에 원본은 도서관에 보관되고 필사본만을 돌려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소 과장된 면은 있겠으나, 모든 지혜와 지식을 한곳에 모으겠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야심찬 계획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모든 지식’을 수집하려 한 이 계획을 다섯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며 지식을 수집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생각해보자. 첫째,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전성기를 거친 이후에, 또한 동서융합의 대제국을 꿈꿨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 확장 때문에(비록 그의 후계자들이 제국을 나눠 이어받았으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국의 수도로 엄청난 지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급격히 증가하는 지식들을 수집하는 것은 지식 전달과 활용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어떤 새로운 메커니즘인가? 이전에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지식이 전달됐을 때는 지식의 복제와 전수된 지식에 대한 제한적인 변용이 주요한 학문적 활동이었다. 스승의 머릿속에 담긴 지식 중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지식을 참조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학자들은 도서관에 구축된 방대한 장서고에서 이 책의 지식과 저 책의 지식을 ‘발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책이 지식의 종합과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위한 지식의 저장창고로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식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수됐을 때처럼 당장의 쓸모에 바로 동원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미래의 잠정적 가치를 위해 도서관의 학자들은 참조할 만한 지식들을 더더욱 많이 모으려고 애쓰게 되었을 것이다.

둘째, 이 방대한 지식들을 수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다는 점이다. 바로 이집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파피루스 덕분이다. 라이벌 도서관으로 부상하고 있던 페르가몬 도서관을 견제하고자 알렉산드리아에서 파피루스를 반출하는 것을 막을 정도였다고 하니, 지식을 복제할 이 미디어 재료가 지식의 수집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도 지식의 수집이 가능했던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이 지원 덕분에 지중해 세계의 가장 뛰어난 학자들이 도서관에 상주하며 지식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지식의 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칼리마코스의 장서 목록은 곧 당대 지중해 세계에서 확보할 수 있는 지식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목록이었다. 기본적으로 운문과 산문으로 나눈 다음 주제별로 소장된 작품들과 그 작가들에 관해 정리한 이 목록은 지식 큐레이션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 지식의 풍경 속에서 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지식이 메마른 곳이 어디인지를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이는 곧 그 영역에서 새로운 지식의 확충으로 이어졌다. 또한 도서관 장서들의 카탈로그를 만든 칼리마코스의 작업이 대표하듯이, 문학뿐 아니라 의학, 천문학, 지리학, 기하학 등 여러 분야에서도 지식의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이 함께 진행됐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은 그런 지식 카탈로그의 모범 사례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넷째, 지식의 검증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지식이 군소 지식 공동체 안에만 머물러 여러 곳에 흩어져 있을 때는 지식의 교차검증이 일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산재했던 지식들을 하나씩 모아 한곳에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같은 작품에 대한 여러 두루마리 기록들이 모이게 됐을 것이다. 그중 어떤 두루마리 기록들에는 서로 조금씩 차이가 나는 대목들이 있었을 것이고, 도서관의 학자들은 어떤 것이 원래의 작가 기록에 가까운 것인지 대조해가며 더 탁월한 기록을 복원해야 했다. 도서관에 소장될 장서는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복원을 담은 기록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기본적 의미의 문헌학이 시작된 배경이다.

다섯째, 경전화 작업(canonization)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수집한다는 것은 반대로 모으지 않아야 할 것을 버리는 일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모든 지식’을 수집하려 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노력은 ‘모아야 할 가치가 있는 지식’을 ‘모을 필요가 없는 지식’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과정이었다. 수집이 가진 역설적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대에 이름만 알려져 있었을 뿐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기록할 매체들이 오늘처럼 풍족하지 못했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서관의 경전화 작업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위대한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대략 100편이 넘는 비극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아는 그의 비극은 7편에 그칠 뿐이다. 제목만 알 뿐 그 내용을 모르는 나머지 작품들은 살아남은 작품들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수 있다. ‘모든 지식’의 수집을 표방했던 이 도서관에 수집될 만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기록은 ‘모든 지식’의 바깥, 그러니까 수집될 만한 지식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셈이 된다.

종합해보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지식들의 저장소로서의 책들은 풍부한 재정적 지원과 기록매체 자원을 만나 비로소 본격적인 수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고대에 ‘지식을 수집한다’라는 행위는, 지식을 체계화하고, 지식끼리 비교 검증하며, 모아야 할 가치가 있는 지식들을 비판적으로 선별한다는 의미를 갖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곳에서의 지식의 수집과 관련한 학문적 활동이 전부 같은 성격은 아니었겠으나, 적어도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는 그런 의미로 지식의 수집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지식’을 수집하려 한 도서관의 야심찬 계획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도서관이 어떻게 종국을 맞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에 의해, 혹은 기원후 3세기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혹은 기독교가 로마에서 국교화되는 과정에, 혹은 7세기 무슬림의 알렉산드리아 점령 와중에 도서관이 파괴됐다는 가설들이 대표적이다. 어느 한 사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모든 일들이 다 겹친 결과로 이제는 그 도서관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아마도 도서관이 ‘모든 지식’의 수집을 내세웠던 그 처음부터 이런 결론이 예정됐을 수도 있다. 마치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오만한 행동으로 인간의 언어가 혼잡하게 돼 흩어졌다는 이야기처럼, 보물과도 같은 모든 지혜와 지식을 한곳에 모으려는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자신들을 위협할 만한 것이었을 수 있다. 특별히 권력을 잡은 이들은 그곳에 쌓인 모든 지식들을 다시 흩을 만한 충분한 이유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도서관의 파괴와 함께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된 이 지식들은 다시 모으려는 중세·르네상스 시기의 문서사냥꾼·수집가들의 노력을 부른다. 그러나 그때 지식을 수집한다는 행위는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지식을 수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2주 뒤에 살펴보기로 하자.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세상 모든 지식 한곳으로…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지식 활용의 새 장 열다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