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적 성취가 주는 희열·설렘·경외심…AI에겐 기대할 수 없다

2023.04.21 22:08 입력 2023.04.21 22:09 수정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5) 인간의 발견에 대한 찬가

초현실주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시의 ‘발견의 일기’에선 바람 부는 창가에 놓인 책장이 새가 되어 날아간다. 인간의 지적인 성취는 챗GPT가 줄 수 없는 희열, 설렘,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초현실주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시의 ‘발견의 일기’에선 바람 부는 창가에 놓인 책장이 새가 되어 날아간다. 인간의 지적인 성취는 챗GPT가 줄 수 없는 희열, 설렘,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유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고유한 지적 능력을 묻는 우리의 여정은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를 거쳐 드디어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의 상황이 과거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비단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와 견줄 만한 지적 능력을 갖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처음 마주하게 된 때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파라미터들이 인간 시냅스의 개수만큼이 되고 ‘살아있는 데이터들’을 학습한다면…인간 지능 초월하는 ‘특이점’ 찾아올 것

지적인 탁월함을 향한 인류의 달음질은 오랫동안 인간들만의 배타적인 경주였다. 그러나 고독할 정도로 평온하던 그 경기장에 이제 곧 균열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선수가 경기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 투입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 새로운 선수의 역량을 여러 방면에서 확인해보고 있다. 변호사 시험이나 과학 올림피아드 등 꽤 어렵다는 문제들을 연습 경기로 삼아 인공지능을 시험하자 그 역량이 상위 몇 퍼센트의 실력에 해당한다는 리포트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이 새로운 선수를 경쟁적으로 영입해 경기에 내보내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수면 위에서, 또 물밑에서 점점 더 분주해지고 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능력을 보유한 이 선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결정을 당초 계획보다 더 유예하게 된 면이 있다. 한편으로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이 새로운 선수가 앞으로도 계속 인간에게 어시스트를 하는 정도로 한계를 부여하고 싶어하고, 다른 한편으로 어떤 이들은 그래봤자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을 교체해 새로운 주인공으로 도약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맞춰 게임의 규칙을 개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누가 대표성을 가지고 어떻게 투명한 방식으로 이 사안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지조차 정하지 못했는데 상황은 그새 또 한참 더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선수의 역량이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논의를 더욱 어렵게 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경쟁적인 개발을 일정 기간 멈추고 인공지능의 역할, 지위, 규제 방식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인공지능 모라토리엄(Moratorium·유예 기간)에 대한 이 주장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고 호소력이 짙다 한들 과연 그런 유예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후 환경위기가 단순히 자연재난재해가 아니라 곧 인권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은 해법 마련에 분주해진 것이 위기에 대한 우리의 전형적인 대응 패턴이라면,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에 의한 섬뜩한 위험에 맞닥뜨린 후에야 비로소 강제성 있는 멈춤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한발 앞서 인공지능을 적용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욕심들을 쉽게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이 유예를 유예할수록,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기점인 특이점(Singularity)의 시간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인공일반지능(혹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적용 가능한 약인공지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모든 상황에 널리 적용할 수 있는 강인공지능)의 출현이 그 특이점의 도래를 알리는 시그널이 될 텐데, 그때까지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컴퓨터가 효율적인 것은 학습 알고리즘을 표준적으로 공유하는 통일된 구조 덕분…그에 비해 인간의 학습은 미련할 정도로 반복적이고 더뎌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몇 천억개의 파라미터들이 인간의 시냅스 개수만큼이 된다면, 혹은 웹을 통해 수집한 ‘죽어 있는 데이터들’보다 더욱 인간의 배움 그대로를 모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데이터들’을 학습시키게 된다면 그 시점이 점점 더 앞당겨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상황을 지금 통제하지 못하거나 혹은 앞으로 잘 통제할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당장에 높지 않다면, 이미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대로 꽉 밟고 있는 이 질주를 억지로 멈추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지적인 훈련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연재가 목적했던 인간의 고유한 지적인 능력에 관한 질문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파도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치고 들어오는 이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궁극에 이른 상황이 되더라도 인간에게 남을 고유한 지적 능력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본 적 없는 질문이다.

비록 우리보다 현저히 낮은 지적 능력을 가진 동물들과 대비해 승자의 입장에서 인간만이 가진 지적 능력을 오만하게 뽐낸 적이 있긴 했지만, 더 열등한 처지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 지성의 존재와 정당성을 담보로 이런 위험천만한 고민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마치 디지털로의 대전환이 아날로그 시대의 아름다움을 반추하게 했듯이, 인공지능으로의 대전환이 인간의 지능을 제대로 성찰할 훌륭한 기회일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러한가? 인공지능의 개발이 사실은 한 번도 완전히 포착해보지 못했던 인간의 지능에 대한 탐구를 더 예리하게 파고들도록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인공지능 개발의 역사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기 위한 상징적 인공지능과 인공신경망으로 대표되는 비상징적 인공지능의 경쟁이었다. 이 경쟁이 이제 인공지능연구를 상업적 이익으로 환산시킬 방법을 알게 된 일부 기업들에 의해 인간의 뇌를 재현할 더욱 다양한 모델들 간의 무한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인공지능 모델의 성패와 효율을 결정짓는 변수들을 계속 조정해가면서 어느덧 인공지능 개발은 인간의 지능에 대한 거대한 실험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실험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것 같은 이유는 대중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 통로들이 구석구석 마련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겨울을 인내심 있게 견디고 이제는 딥러닝의 대부로 평가받는 제프리 힌턴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 그는 챗GPT의 성능에 대해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실험실에서 그것과 비슷한 혹은 그것보다 더 월등한 언어모델들을 이미 여러 차례 시험해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더욱 놀랐던 것은 이 초거대 인공지능 언어모델에 대한 세간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2012년 CNN 기반 딥러닝 알고리즘이 이미지 인식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때도, 그 후 2017년 트랜스포머에 대한 첫 제안이 나왔을 때도 인공지능은 여전히 소수의 언어였다. 그러나 챗GPT가 출시된 2022년과 GPT-4를 비롯해 경쟁적인 인공지능 언어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2023년은 인공지능이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심을 쏟는 공통의 사안(res publica)이 돼버린 해로 기록될 것이다.

나는 이 뜨거운 관심을 인공지능 그 자체에 돌리기보다는 인간의 지성을 제대로 탐구할 동력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인공지능의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쉽게 놀라면서도 정작 이런 학습과 연산을 위해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전력자원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비슷한 일을 해내는 인간 뇌의 효율적인 설계에 대해서는 너무 무덤덤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많은 걱정들의 밑바탕에는 우리의 지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미처 충분히 알기도 전에 그것을 모방한 작품을 무작정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만일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놀라운 자연지능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볼 기회로 이어지게 된다면 더없이 가치있는 탐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연재를 인간의 고유한 지성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발제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아이겐밸류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마중물로 내가 꺼내든 것은 비밀을 발견하는 희열(2화), 낯섦을 대하는 욕구(3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는 경외(4화)였다. 몇 시간을 고생한 끝에 어떤 수학 문제를 증명해냈을 때의 희열,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서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설렘, 블랙홀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댄 무언가 모를 경외심. 이런 기분 좋은 감정들은 모두 내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의 발견에 진 빚이다. 적어도 나는 지난 몇 개월간 GPT를 쓰면서 희열, 설렘, 경외심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다. 반대로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뷔 같은 지식의 반복적 산출이 숨겨진 지식을 찾는 희열을 차갑게 식혀버리지는 않을지, 정답을 산출하는 그 최적의 알고리즘이 최선의 생각이 아닌 수많은 차선의 생각들을 다 침묵시켜 다양성의 씨앗을 말려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다. 아직은 그렇다.

컴퓨터가 효율적인 것은 그 모든 기계가 즉각적으로 같은 언어로 통용될 수 있으며 학습 알고리즘을 표준적인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는 통일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만대 혹은 수백만대를 연결해 한꺼번에 셀 수 없이 많은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이다.

지난한 배움의 과정 속에서 때론 엉뚱한 시선과 생각들이 빛을 발해…AI의 어디서 본 듯한 지식 산출과 차별화되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

사람의 배움은 어떠한가? 내가 30년 전에 배웠던 것을 똑같이 반복해 배우기 위해 학교로 등교하는 우리집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배움이라는 것이 때로 참 미련할 정도로 반복적이고 더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매번 디폴트되는 것처럼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무언가 의미있는 발견을 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먹고 자란다. 그러나 그 지난한 과정 속에 종종 마주하게 되는,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만의 엉뚱한 시선과 생각들이 있다. 모든 수고를 감내할 충분한 이유와 삶의 활력이 되는 그런 유쾌한 이야기들이. 물론 어떤 연구자들은 이런 생각들마저 데이터로 만들어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부모가 봄바람 같은 아이의 싱그러운 생각을 차가운 기계의 대답 속에서 듣고 싶어 하겠는가?

결국 우리에게 희열, 설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모든 지적인 성취들은 이 지독히도 반복적이었던 인간의 배움에 기인한 것이었다. ‘발견하다’라는 말이 우리가 검색엔진에 보통 기대하는 어떤 정보를 찾아준다는 뜻이라면 단연코 인공지능은 그 어떤 인간도 능가할 만한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만일 나처럼 ‘발견하다’라는 말에 희열과 설렘과 경외심을 투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아직은 우리의 미련해보이는 언어와 배움에 고유하게 녹아들어있다는 사실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열고 있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패배감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이 시점에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탐구하는 이 연재는, 적어도 인간에 대한 찬가(encomium hominum)로 시작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연재의 존재 이유(raison d’etre)가 없었을 것이다. ‘발견하다’라는 동사를 이 연재의 첫 대상으로 삼은 이유이다.

2주 뒤에 우리는 지적인 행위를 이루는 다음 동사로 ‘수집하다’에 어떤 의미가 담기게 됐는지 다시 고대로부터 돌아가 중세와 근대를 따라가며 살펴보기 시작할 것이다. 지식을 모으는 이 행위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네 차례 연재를 이어가는 동안 계속해서 우리가 이 열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공지능의 정보 수집과는 차별화된 지식의 수집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함께 고민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인간의 지적 성취가 주는 희열·설렘·경외심…AI에겐 기대할 수 없다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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