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이렌’ 리더 소방관 김현아 “다 바꿔보자…‘퍼스트 펭귄’이 되고 싶었다”

2023.06.26 16:03 입력 2023.07.05 20:21 수정

여성 24인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소방팀, 아레나전 세번 모두 승리

“‘연예인병’ 욕 들어도 보여주고파

젠더 갈등 해소 도움됐으면 했다”

안녕하세요 소방관 김현아입니다

김현아 소방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소방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최유진 PD

김현아 소방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소방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최유진 PD

‘편견을 먹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지난달 전세계에 공개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은 전·현직 경찰관, 소방관, 군인, 경호원, 스턴트맨, 운동선수 여성 24인이 직업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여성들이 진흙을 뒤집어쓰고, 망치와 삽을 들고 경쟁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출연자들은 “악바리는 자신 있거든요” “센 놈이랑 붙자, 그게 멋있지” 같은 기개 넘치는 대사를 날리며 편견을 부쉈다.

그중에서도 소방팀의 활약은 대단했다. 프로그램은 팀워크를 보여주는 ‘아레나전’과 서로의 기지를 공격해서 탈락시켜야 하는 ‘기지전’으로 구성됐다. 소방팀은 방송되지 않은 분량까지 총 세 번의 아레나전에서 모두 우승했다. 부상을 입은 팀원을 위해 한계까지 노력하는 모습,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전략을 짜는 모습 등으로 많은 시청자의 응원을 받았다. 소방팀 4인의 리더를 맡았던 김현아 소방장을 지난 23일 경기 화성소방서에서 만났다.

김현아 소방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소방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최유진 PD

김현아 소방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소방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최유진 PD

-<사이렌: 불의 섬> 출연은 어떻게 결정하셨나요.

“넷플릭스에서 프로그램 출연자를 찾는다는 공문을 소방청으로 보냈고, 청에서는 열정 있는 직원들은 지원을 하라고 각 본부에 전달을 했어요. 나갈지 말지 고민을 엄청 했죠. 여론이 여자 소방관을 좋게만 보지 않기 때문에 잘해도 욕 먹고 못 해도 욕먹잖아요. 그때 내부에서 추천 전화도 받았어요. ‘김현아 반장님이 나가달라’고 하셨죠. 제가 2018년에 최강소방관대회를 나갔기 때문에 저를 아시고 김 반장이 나가서 보여주라고 하신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결혼한 신혼인데요, 남편도 제 성격을 알아서 그러더라고요. ‘너 이거 안 나가면 평생 나한테 내가 나갈 걸, 하면서 후회할 거잖아. 귀 아프니까 그냥 나가.’ 그래서 하루 고민하고 지원서를 썼습니다. 나가서 욕을 먹더라도 내가 먹자, 가서 다 보여주고 그래도 욕하면 내가 당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김 소방장은 2018년 ‘최강소방관대회’로 불리는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여성 소방관 최초로 출전해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6개 수관이 끼워진 금속 관창을 어깨에 짊어지고 40여m를 달린 뒤, 20㎏ 물통을 두 개 들고 7m 높이 건물을 오르는 등 5단계로 진행되는 코스를 완주해야 하는 경기다. 김 소방장은 그해 경기 소방기술경연대회, 전국 소방기술경연대회, 세계 소방관 경기대회에 출전했다. 남성 소방관들과 대등하게 경기를 펼쳤지만 악성 댓글 세례를 받았다. 뒤이어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참여하는 여성 소방관들이 매해 나오고 있다.

2018년 6월7일 경기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전국 여성 소방관 최초로 참여한 김현아 당시 소방교.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2018년 6월7일 경기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전국 여성 소방관 최초로 참여한 김현아 당시 소방교.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제공.

-2018년 소방기술경연대회는 어떻게 나가셨나요.

“모든 직업이 다 비슷하겠지만, 경찰·소방관·군인 같은 남초 직장의 여성들은 젠더 갈등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죠. 제가 소방공무원이 막 됐던 2013년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점점 여성 소방관이 여성혐오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소방기술경연대회는 전국에 있는 소방관들이 체력과 기술을 겨루는 멋진 대회예요. 너무너무 힘들고, 인간의 한계를 테스트해요. 남녀를 불문하고 완주하는 것 자체가 힘들죠. 제가 왜 나갔냐면요. 제가 현장에 나가면 보호자 등이 ‘무슨 여자가 들 것을 들어?’ ‘여자 두 명이서 왔어요?’ 이래요. 불신의 눈빛이 온몸에 느껴져요. 근데 거기서 싸울 수는 없잖아요. 구조 대상자가 숨이 넘어가고 있는데, 언제 ‘제가 현장 경험한 거 보셨어요?’ 이렇게 설명을 합니까? 저는 그냥 환자 둘러업고 병원에 가죠. 그럼 그때서야 보호자가 ‘아까 그렇게 말한 거 미안해요’ 하는 거예요. 해냈구나 싶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나는 앞으로 계속 보여줘야 하는구나. 나는 항상 입증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무시를 시작으로, 이겨낸 뒤 완성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이게 제 숙제라고 생각해서 대회에 나간 거예요.”

방화복을 입은 김현아 소방장. 백준서·최유진 PD 이미지 크게 보기

방화복을 입은 김현아 소방장. 백준서·최유진 PD

-나간 뒤 반응이 어땠나요.

“나간다고 했을 때도 핍박을 좀 받았어요. 미쳤냐, 시집을 가야지 무슨 대회에 나가냐, 어디 완주나 하나 보자, 연예인병 걸렸다…. 왜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칭찬받고 누구는 욕을 들어야 하나요. 그래서 오기도 생겼고, 자긍심이 떨어져 가는 여성 소방관들한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움직이게 하고 싶었어요. ‘퍼스트 펭귄’이 되기로 마음 먹었죠. 그런데 대회에 출전했다는 게 기사에 나가고 나서 여론의 화살을 엄청 받았어요. ‘우리 집에 불나면 너는 오지 마라’ ‘소방차도 못 타면서 무슨 소방관이냐’는 둥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여혐의 대상이 됐죠.

솔직히 소방에도 ‘금녀의 구역’들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구급차, 사다리차 운전도 안 했죠. 이제는 다 여성들도 하고 있어요. 무거운 거 드는 것도 다 하고요. 소방차도 다 타고요. 불도 다 끕니다. 화재진압장비 차지 않습니까? 그럼 머리카락 한 올도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헬멧부터 방수화까지 다 차거든요. 밖에서 보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자는 불도 안 끈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희 너무나 다 잘하고 있습니다.

저 이후에 다른 시도 본부에서 여성 소방관들도 최강소방관 대회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대견스럽고 멋있었어요. 원동력이 됐구나, 욕을 온몸으로 받았지만 그걸로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다 바꿔보자. 뒤집어 엎어보자. 뭔가 만들어 보자. 이번 프로그램 출연으로도요, 젠더 갈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김 소방장은 당시 혐오성 댓글을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소방팀 김현아 리더가 상대방이 메고 있는 깃발을 빼야 하는 기지전에서 군인팀 강은미와 대치중이다.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소방팀 김현아 리더가 상대방이 메고 있는 깃발을 빼야 하는 기지전에서 군인팀 강은미와 대치중이다. 넷플릭스 제공.

김현아 소방장을 리더로 한 소방팀은 아레나전에서 전부 승리했다. 방송에 나온 두 번째 아레나 전 중 한 장면. <사이렌: 불의 섬> 예고편 갈무리.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김현아 소방장을 리더로 한 소방팀은 아레나전에서 전부 승리했다. 방송에 나온 두 번째 아레나 전 중 한 장면. <사이렌: 불의 섬> 예고편 갈무리. 넷플릭스 제공.

-프로그램에서 소방팀 구호가 ‘언제나 늘 현장처럼’이었습니다. 담긴 의미가 있나요.

“제가 정했는데요, 제가 독재를 좀 했죠. 저희는 살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사이렌: 불의 섬>은 몸싸움 하고 문 부수고 깃발을 뽑아 누군가를 게임에서 죽여야 저희가 생존하는 게임이었어요. 저희 일이랑 반대인거죠. 그래서 이기려면 현장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깃발 뽑는 게 사람 구하는 거라고 생각해야지 저희 팀이 좀 더 사기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경쟁하는 기지전보다는 협동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아레나전을 연속 우승한 게 더 좋았어요. 소방관은 팀워크거든요. 불 끄러 혼자 들어가면 안 돼요.”

-프로그램 보시니 실제 촬영 때와 다른 점들이 있었나요.

“저희 프로그램이 생존 경쟁 서바이벌이잖아요. 근데 경쟁이랑 서바이벌 이미지가 부각되다보니 생존이 별로 안 나왔어요. 생존이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화장실 가려면 경호팀 같은 경우에는 15분을 산을 타고 내려가야 됐어요. 저희도 12분을 달려야 간이화장실에 갈 수 있었어요. 저희는 베네핏으로 가스레인지를 받았지만 다른 팀은 장작불 1시간씩 붙여서 냄비 밥 겨우 끓여 먹고 이랬거든요. 소금이랑 간장도 너무 비쌌어요. 샤워실도 갯벌인지 샤워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난리가 나 있었고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안 나온 건 아쉬웠죠.”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김현아 소방장. 백준서·최유진 PD 이미지 크게 보기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김현아 소방장. 백준서·최유진 PD

-왜 소방관이 되셨나요.

“제가 전남 곡성 사랑병원 응급실에서 2년 10개월 정도 근무를 했는데요. 소방관들이 환자들을 구조해 오면 후 처치를 했어요. 그런데 기다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넘치는 힘을 현장에서 쓰고 싶어서, 직접 구하러 나가고 싶어서 소방관 시험을 쳤어요.”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나요.

“너무나 많은 현장이 기억에 남는데요. 제가 2년 차 때 비닐을 만드는 공장에 사고가 나서 출동한 적이 있었어요. 롤러가 결합한 기계에 사람이 끼어있다는 긴박한 신고를 받았죠. 현장에 가보니 기계에 40대 후반 남성이 끼어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참혹했어요. 그 기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서 구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 환자분이 눈을 뜨고 있었는데요.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나는 이런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힘든 순간들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다수 사상자가 나온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지 않게 본부에서도 노력하고 계시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도 할 일들이 있어요. 경험상 직원들이랑 힘든 걸 나누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특히 출동 나가자마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화하고 다독이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혼자 곱씹으면 상처밖에 안 되더라고요.”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해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직업인데, 계속 하는 동력이 있나요. 뿌듯한 순간들이 있다면요.

“고맙다는 말 듣는 것. 그것보다 짜릿한 경험은 없어요. 시민들이 그 긴박한 상황에도 고맙단 말들을 막 하셔요.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쌈짓돈 주시려고 하면 ‘어머니 저희 이거 받으면 잘려요’하면서 거절하죠. 그 순간도 뿌듯해요. 믿음에 근거해서 뭔가를 보여줬고, 시민들의 불편함과 힘듦을 해결했으니까요. 고맙단 말 한 마디가 월급보다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아, 요즘은 멋있단 말도 참 좋아요. 예쁘단 말보다 더요.”

김현아 소방관의 학생 때 모습. 본인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김현아 소방관의 학생 때 모습. 본인 제공.

-개그우먼이 꿈이셨다고요.

“늘 누군가 웃기고 그 사람이 웃으면 행복해요. 소방관으로서 현장에서는 웃음기가 없어야 되긴 하지만요. 제가 매직이나 스트레이트 펌을 주기적으로 하는데요. 예전 <개그 콘서트>에 출산드라 아세요? 혹은 개그맨 윤택씨. 제가 완전히 곱슬머리라서 그게 제 머리스타일이었거든요. 제가 선생님들 성대모사를 하니까 친구들이 막 웃어요. 그때 제가 개그우먼의 꿈을 키우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술 취한 사람들이 때리려고 하거나, 그런 미운 환자 만나고 와서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 개그를 하죠. 개그로 힘든 현장을 버텨내고요. 서로 위로하고, 보호해줘요. 제가 무슨 기술이 그렇게 많이 있겠어요. 팀워크로 버텨내는 거죠.”

-어렸을 땐 어떤 아이셨나요.

“제가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곱슬머리가 정말 심했어요. 아기 때부터 외모 가지고 놀림을 엄청 많이 받았죠. 라면 머리, 폭탄 머리 별명은 기본이고 인종차별적인 놀림도 너무 많이 받으니까 초등학생 때는 자살까지 하려고 했어요. 많이 울었죠. 그래서 성장이 좀 더 빠르지 않았나 싶어요. 사춘기도 없었고요. 핍박을 받고 이겨내는 일대기가 아닌가 싶어요, 제 인생이.”

현장에서 환자를 처치하는 김현아 소방장. 백준서·최유진 PD 이미지 크게 보기

현장에서 환자를 처치하는 김현아 소방장. 백준서·최유진 PD

-롤모델이 있나요?

“딱히 없는데요. 롤모델이 돼야죠. 제가 잘 나서 그런 건 아니고요. 영화를 생각하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나오는 퓨리오사 캐릭터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에요. 영화가 삶이라면 나는 저런 인물이 돼야지 생각했어요. 엄청 멋있잖아요. 영화가 러브라인이 없어서 더 완벽했어요.”

-앞으로는 어떤 소방관이 되고 싶나요.

“요즘 후배들이 정말 똑똑하고 무섭거든요. 선배님들보다 후배님들이 더 무서워요. 후배들한테 배울 점은 배우고, 선배들한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제가 지금은 프로그램 덕분에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기 앉아서 인터뷰하는 것도 부끄러워요. 전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소방관 중에 한 명이고,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죠. 계속 현장에 남아 있을 거예요. 멋있고, 힘세고, 특이한 소방관이 되고 싶고요. 지금은 한 100분의 1쯤 보여준 것 같아요. 저 110살까지 살 거거든요.”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제가 그럼 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할게요. 포기하지 마세요. 체제는 뒤집으라고 있는 거예요. 체격은 키울 수 없어도 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너무 멋진 일을 하고 계시는 전국의 소방관분들, 그리고 금녀의 구역에 도전하시는 여성분들 다 힘내세요. 변화시키고 개혁하세요. 저도 항상 먼저 뛰어들겠습니다.”

김현아 소방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소방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최유진 PD

김현아 소방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소방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최유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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