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열혈남아’

2006.11.01 12:34

- 복수에 매몰된 한 인간의 서글픈 삶의 단면 -

‘열혈남아(감독 이정범·제작 싸이더스FNH)’는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라는 사살만은 확실하다. 여기에 배우들의 호연, 유머를 숨겨둔 대사의 찰진 맛, 끝까지 긴장감을 붙들고 있는 드라마의 흐름이 영화의 탄탄함을 뒷받침해 여운이 오래 남는다.

[영화리뷰] ‘열혈남아’

소년원 친구이자 같은 조직에 몸을 담은 건달 재문(설경구)과 민재(류승룡)는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 일로 민재가 대식(윤제문)에게 죽음을 당하고, 재문은 조직에 막 입문한 치국(조한선)을 데리고 복수를 위해 전라도 벌교로 향한다. 주변을 탐색하던 재문은 대식의 엄마 점심(나문희)이 하는 국밥집에 드나든다. 재문은 자신을 아들처럼 살갑게 대하는 점심에게 모성을 느끼고 혼란에 빠진다. 그러던 중 복수의 날이 찾아온다. 대식이 읍내 체육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하들을 잔뜩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실상 조폭영화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의리와 배신이라는 두 가지 테마로 엮어가지만, 싸움도 그렇고 복수도 느와르풍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조직의 명에 따라 칼질을 하지만 찌르는 자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먼저 상대의 배에 칼을 꽂아야만 살 수 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생존의 법칙. 그 안에는 칼에 찔려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영화리뷰] ‘열혈남아’

‘열혈남아’는 화려함을 철저히 배격하고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복수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상대를 쉽게 죽이지 못하는 인간의 갈등, 예기치 않은 만남의 동요에 구도를 잡았다. 그게 용기 부족 때문인지, 모성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심하게 흔들린다. 죽음마저도 생각한 그 순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건 인간 본연의 가장 밑바닥 정서, 극한상황이나 포기한 인생에서 보게 되는 한줄기 빛, 모성(母性)이다.

재문은 북수를 위해 달려간 곳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친어머니도 아니고, 자신이 죽어야 될 앙숙의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의 타박과 핀잔이 서럽지 않다. 무심함을 가장해 툭툭 던지는 말이 살갑고 정겹다. ‘열혈남아’는 예기치 않는 상황에 직면한 재문의 혼란이 결코 우리의 정서와 다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영화는 이처럼 쾌감을 주지도, 잔혹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포악한 생 속에 숨겨진 여린 속내를 보여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재문은 비뚤어진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들어선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작업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가 그 일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다. 이미 의지를 상실한 그의 삶의 서글픈 이유다. 삶이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는다는데 동의한다면 이 영화를 ‘조폭영화’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9일 개봉. 15세 관람가.

<미디어칸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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