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처럼 모공도 구현…“보이지 않는 근육·치아·잇몸까지 스캔”

2019.01.16 20:56 입력 2019.01.16 21:04 수정

사이보그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김기범 CG 감독

김기범 웨타 디지털 컴퓨터그래픽 슈퍼바이저(CG 감독)가 지난 7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알리타: 배틀 엔젤>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한 장면(오른쪽). 김경학 기자

김기범 웨타 디지털 컴퓨터그래픽 슈퍼바이저(CG 감독)가 지난 7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알리타: 배틀 엔젤>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한 장면(오른쪽). 김경학 기자

<반지의 제왕> 감독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 등이 뉴질랜드에 설립한 ‘웨타 디지털(Weta Digital)’은 세계 최고의 시각효과 스튜디오로 불린다. 웨타 디지털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킹콩>, <아바타>, <혹성탈출> 시리즈 등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바 있다. 웨타 디지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자는 <스타워즈> 감독 조지 루카스 등이 설립한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드 매직(Industrial Light & Magic·ILM)’이다. ILM은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쥬라기 월드> <어벤져스> 등 영화 시리즈의 시각효과를 담당하고 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처럼 ILM과 웨타 디지털이 함께 작업에 참여한 영화도 있다.

ILM에서 10년가량 일하다 경쟁업체 웨타 디지털로 옮긴 한국인 ‘컴퓨터그래픽 슈퍼바이저’(CG감독)가 있다. 김기범씨(41)다. 시각효과와 관련한 여러 부서의 일을 총체적으로 관리·감독하는 CG감독은 해당 프로젝트 총책임자인 시각효과 감독 다음인 2인자 또는 3인자에 해당한다. 다음달 국내에 개봉할 예정인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알리타)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김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 감독은 대학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5년가량 일하며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2007)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게임 시네마틱을 접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싱가포르에 있는 ILM에 근무하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트랜스포머 3> <아이언맨 2> <퍼시픽 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CG감독·조명감독 등으로 참여했다. 안정적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그는 웨타 디지털로 이직을 결심했다. 이직한 계기에 대해 그는 “아내에게는 샐러리(급여)가 높아진다고 말하긴 했는데, 사실 그것보다 개인적인 호기심이 있었다. 웨타에는 ‘마법’과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가보니 ‘마법’은 없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웨타만의 한 방은 없었다. 과정이 효율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웨타는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은 시간 작업한다. 안주하지 않고 연구·개발(R&D)도 많이 하고 개선될 때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적용한다. 다른 스튜디오는 제작자나 감독 등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면 경제적인 이유로 더 이상의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웨타는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그 결과 <아바타> <혹성탈출> 같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받은 클라이언트들이 다음에는 더 많은 예산을 주고 주문하는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발생한다. 사실 결과물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효율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제임스 캐머런 등이 제작한 <알리타>도 혁신적인 영화라고 했다. 1990년대 연재된 일본 작가 기시로 유키토의 공상과학(SF)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하는 <알리타>는 사람의 뇌를 가진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가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의 감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실사와 CG가 결합된 영화로, 주인공 알리타는 영화 내내 CG 캐릭터로 등장한다.

김 감독은 “정교한 표정과 움직임, 감정 전달을 위해 알리타를 연기한 배우 로사 살라자르 자체를 CG로 만들었다”며 “실제 성형외과의와 상의하며 뼈·근육·피부부터 영화에서 잘 보이지 않는 치아와 잇몸도 스캔했다. 보통 머리카락은 ‘가이드 헤어’라고 중심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그에 따라 움직이게 구현하는데, <알리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도 직접 시뮬레이션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를 보면 모공·솜털 등의 정교함으로 눈을 감고 있는 알리타가 CG인지 실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김기범 웨타 디지털 컴퓨터그래픽 슈퍼바이저(CG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김기범 웨타 디지털 컴퓨터그래픽 슈퍼바이저(CG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김 감독은 현재 기술로 상상하는 모든 것을 CG로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우가 필수적이다. 그는 “앞서 CG가 과도해 문제가 있었던 적도 많았다.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감정이나 실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표정과 행동이 있다. 이것을 캡처하고 표현해야 캐릭터라고 해도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각효과의 첨단을 만들어가는 김 감독은 향후 영화에도 배우나 사람은 꼭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기술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더라도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당연히 시나리오와 배우 연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필요하고, 관객들도 이런 영화를 사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과 함께> 등을 만든 덱스터 등 국내에도 시각효과 스튜디오가 있다. 전문가가 본 한국의 시각효과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김 감독은 “CG가 많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과 함께>를 봤다”며 “제작 금액과 CG가 들어간 분량을 보니,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외국 스튜디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완성본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김 감독에게 예산 등 자본력을 떠나 한국 시각효과 분야에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김 감독은 변화와 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문화라고 했다. 그는 “저는 작업자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문제가 반복되면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데 누군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주어진 일을 기한 내 처리하기도 힘든데 개선까지 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당장 변화하기는 어렵더라도 작은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외국은 공개해도 되나 싶은 것까지 기술 교류나 토론을 통해 다음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교류하고 공유하는 데 보수적이다. 이런 변화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국내에 복귀하면 외국에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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