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역할 재도전 ‘천문’ 한석규 “어머니가 품은 한에 영향받은 ‘다른 이도’ 보여주고 싶었다”

2020.01.05 21:51 입력 2020.01.05 21:53 수정

영화 <천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천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달 26일 개봉한 <천문>의 영문 제목은 ‘Forbidden Dream(금지된 꿈)’이다. 백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조선의 절기와 시간을 정하려 꿈꾼 세종과 그 꿈을 실현시킨 노비 출신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세종은 많이 다뤄졌다. 배우 한석규(55)는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에 이어 세종을 또 한 번 연기했다. <천문>에서 한석규는 나이 들고 병든 모습부터 젊고 총명한 모습, 인간미 넘치는 인자한 미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의 세종을 선보인다.

세종의 상상력과 원동력
‘뿌리 깊은 나무’ 연기할 때는
아버지의 영향이라 여겼었는데
내 나이 50살이 넘어 생각하니
‘그건 아니었다’고 느껴

개봉에 앞서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한석규는 “세종은 왜 그런 다양한 걸 했을까, 세종의 상상력이나 원동력이 뭘까를 생각했다”며 “<뿌리깊은 나무> 때는 아버지의 영향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왕권을 멋지게 펼칠 수 있게 많이 죽인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저도 50살이 넘으니 ‘그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도란 인물은 분명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문>의 감독 허진호는 한석규와 최민식을 섭외한 뒤 누가 세종, 장영실을 맡을지 두 사람이 알아서 정하라며 시나리오를 줬다. 한석규와 최민식은 각각 동국대 연극영화과 82·83학번으로 대학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넌 뭐하고 싶니? 형은 아무거나 괜찮다.” 형인 최민식이 먼저 말했다. 시나리오를 읽을 3일의 시간을 가진 뒤 한석규는 자신이 세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석규는 다시 한 번 세종 연기에 도전한 것 역시 이전과 다른 세종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석규는 “관객들에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다른 이도’를 보여줄 마음이 끓었다”며 “한을 품은 어머니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은 이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세종을 두 번 연기한 한석규는 “10·20대 때 연기는 내가 아닌 남을 표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40대가 돼 ‘나를 벗어난 연기는 불가능하다’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연기’임을 알게 됐다. 그러다 만난 인물이 이도였다. 나를 정확하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세종을 두 번 연기한 한석규는 “10·20대 때 연기는 내가 아닌 남을 표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40대가 돼 ‘나를 벗어난 연기는 불가능하다’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연기’임을 알게 됐다. 그러다 만난 인물이 이도였다. 나를 정확하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석규는 원경왕후 민씨에게 매일 문안드린 어린 이도의 마음을 떠올렸다.

“이도가 문안 인사를 드릴 때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 집안 남자를 다 죽였는데. 아마 미친 여자처럼 넋이 나가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도는 분명 착한 아들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왜 그렇게 사람들을 죽여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뿌리깊은 나무> 때 ‘사람을 절대 죽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세종을 연기했다면 <천문> 때는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연기했다. 명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지만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 도량형을 정비하고 천문의기, <농사직설>, 훈민정음 등을 만들지 않았을까.”

<천문>은 한석규, 최민식 두 사람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한국 대표 배우인 두 사람이지만 연기 결은 매우 다르다. 한석규는 “나는 물 같고, (최민식) 형은 불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형은 안 태웠다간 큰일 나는, 계속 뭔가를 태우는 사람이다. 태울 게 많은 사람으로, 연기하기 전에 미리 태워놔야 한다. 반면 저는 태우면 안된다. 저는 물처럼 모았다가 조금씩 뿌리거나 많이 뿌려야 할 때는 더 모았다 한 번에 쏟아내야 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최민식은 “둘이 달라서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제가 전자 기타면 석규는 베이스 기타”라고 말한 바 있다.

한석규는 2018년 11월 <천문> 촬영 중 부친상을 당했다. 지난 6월부터는 수십년간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한석규는 “아버지는 80세 전후까지 담배를 피우셨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께서 저를 많이 좋아하셨는데, 아버지 생각이 나 끊었다. 담배가 제게 기쁨이나 위안, 좋은 것들을 많이 줬다. 그런데 좋은 게 있으면 그만큼 잃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에 덜 까불게 되고, 겸손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됐다. 집중이 필요하면 더 피우고 했다. 그런데 혈관을 좁게 만드는 것 같고 가래 같은 것도 많이 껴 연기하면서 소리 낼 때 분명 안 좋은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배우는 몸이 악기로, 소리를 내야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내 연기의 원동력도 엄마
엄마가 기뻐해서 연기자 돼

한석규는 자신이 배우의 길에 들어서고 지금까지 연기하는 원동력 역시 세종처럼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몰랐는데 <천문>에서 이도를 연기하며 ‘나는 왜 연기를 하나’를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큰 덩어리의 한 축은 ‘엄마’였다. 엄마는 늘 자신을 어머니 말고 엄마라 부르라 하셨다. 엄마에게 말도 배우고, 음식도 배우고, 엄마 영향을 평생 못 버리겠구나 싶더라. 엄마가 제 연기를 보며 기뻐하셔서 연기자가 됐다”고 말했다.

다시 세종을 연기할 기회가 오면 잡을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같이 답했다. “(제안이 왔을 때 제가 세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없으면 안 하고 싶겠죠. 이번에 했던 건 어머니를 떠올려서 한 것이었죠. 물론 돈이 필요하다면 할 수는 있겠죠(웃음). 그렇게 될까 두렵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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