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히틀러를 동경한 나치 소년 웃기고 울리는 ‘유쾌한 반격’ 선사

2020.01.30 21:01 입력 2020.01.30 21:07 수정

영화 ‘조조 래빗’

<조조 래빗>은 2차 세계대전 말 패망을 앞둔 독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열살 소년의 시선에서 그린 영화로, 재기발랄한 연출과 배우들의 고른 호연이 돋보인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조조 래빗>은 2차 세계대전 말 패망을 앞둔 독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열살 소년의 시선에서 그린 영화로, 재기발랄한 연출과 배우들의 고른 호연이 돋보인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벽장 뒤 숨은 유대인 소녀와 생활
암울한 상황보다 재기발랄함 가득
좌충우돌 상황마다 기발하게 연기
감독이 직접 히틀러역 맡아 ‘눈길’

성장영화는 인물이 몇 가지 사건을 겪고 한 단계(또는 여러 단계)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말한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거의 모든 영화가 성장영화다. 로맨스·멜로 영화 속 인물들은 연애나 이별을 통해 성장하고, 액션·스릴러·호러 영화 속 인물들은 목숨이 걸린 사건과 공포를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다른 장르의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핵심은 성장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느냐다. 자칫 인물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그리다 보면 관객이 들어갈 틈이 없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서 그리면 인물의 감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조조 래빗>은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딱 적정한 거리에서 10살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성장영화다.

1940년대 독일.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나치 소년단의 주말 특별훈련에 참가한다. 조조는 마른 체구에 혼자 신발끈도 묶지 못하지만, 히틀러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당찬 아이다. 조조는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한다. 그러나 순탄치 않다. 살아있는 토끼를 손으로 죽여보라는 선배의 말에 조조는 머뭇댄다. 결국 토끼를 죽이지 못한 조조는 겁쟁이 ‘조조 래빗’으로 불리며 놀림감이 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수류탄 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오히려 큰 부상을 당한다. 상심한 채 집에서 지내게 된 조조는 우연히 자신의 집 벽에 숨어 살던 엘사(토마신 매켄지)를 발견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조 래빗>은 엄청난 감동을 주는 영화는 아니다. 신선함과 유쾌함, 가슴 뭉클하게 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관객을 기분 좋게 하는 영화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유대인들을 학살·차별·탄압했던 독일군의 잔혹함, 그리고 그 속에서 생존하려는 유대인 등의 안타까운 모습을 그린 영화는 많다. 이 같은 영화는 주로 당시 암울한 분위기 그대로를 영화에 담는데 <조조 래빗>은 생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타이카 와이티티의 엉뚱함과 재기발랄함이 영화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뉴질랜드 출신 배우·각본가·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는 <토르: 라그나로크>(2017)의 감독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와이티티는 독일 나치 소년단 소년과 벽장 뒤 유대인 소녀와의 심리를 중심으로 서술한 크리스틴 뢰넨스의 장편소설 <갇힌 하늘>을 각색해 시나리오를 썼다. 어두운 면은 덜어내고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빈 곳을 채웠다.

히틀러는 조조의 상상 속 인물로 등장한다.<br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히틀러는 조조의 상상 속 인물로 등장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에는 히틀러가 등장한다. 악의 근원이자 미치광이 지도자가 아닌 다소 모자란 듯한 히틀러로 그린다. 더구나 실제 인물이 아닌 조조의 상상이 만든 허구의 인물로 다소 밋밋할 수 있던 극에 재미와 깊이를 더한다. 히틀러 역은 와이티티 자신이 맡았다. 히틀러 역에 대한 배우들의 부담을 접하고 자신이 직접 연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70여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성차별, 혐오, 가짜뉴스, 세뇌 등 현재도 여전히 곱씹어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특유의 풍자로 그린다. 똑같이 군사훈련에 지원했지만 소년들은 전투 훈련을 받는 반면 소녀들은 소독이나 침구 정리, 임신하는 법과 같은 훈련을 받는다. 또 유대인에 대한 말도 안되는 황당한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한 아이들은 유대인을 혐오·악마화하며 나치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담백한 연출과 우스꽝스러움을 극대화할 슬로 모션, 독일 특유의 정서를 살린 미장센, 이전에 잘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색감의 당시 의상, 전쟁터인 동시에 삶의 터전인 도시를 담은 미술 등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배우들의 고른 호연도 돋보인다. 개성 넘치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주인공 조조다. 1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이 영화로 데뷔한 2007년생 배우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천진난만한 조조를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본인은 물론 숨겨준 이의 목숨도 위태롭게 하는 유대인 소녀 엘사는 <흔적 없는 삶>(2018)에서 노숙자 소녀로 열연한 토마신 매켄지가 맡았다. 매켄지는 불안 속에서도 생기와 강인함, 침착함을 표현하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스칼릿 조핸슨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와 <결혼 이야기>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펼친 조핸슨은 강인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조조의 어머니 로지를 연기한다. 조핸슨은 다음달 열릴 미국 아카데미에서 <결혼 이야기>로 여우주연상, <조조 래빗>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소년단 훈련관 클렌첸도프 대위를 맡은 샘 록웰은 등장시간은 길지 않지만 누구보다 깊이 있는 연기로, 자신이 왜 할리우드 최고 연기파 배우인지를 입증한다. 다음달 5일 개봉. 108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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