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지방관 중대임무 수령칠사

2006.11.07 17:59

경국대전의 수령칠사 항목.

경국대전의 수령칠사 항목.

효종 원년 11월21일 이장형(李長馨)은 강진현감(康津縣監)으로 부임하기 전 하직 인사를 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왕이 수령으로서 해야 할 바를 묻는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왕은 재차 칠사(七事)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이장형은 겨우 수령 칠사에 대해 대답했다. 왕은 다시 이장형에게 부임하는 강진의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이장형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제가 들은 바가 없어 알지 못하겠습니다”였다. 결국 왕은 그 자리에서 이장형을 다른 현감으로 교체하여 부임시킬 것을 명했다.

조선시대 지방관을 목민관(牧民官)이라 했다. 목민관이란 왕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기른다는 의미이다. 지방관은 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므로 그의 정치의 선악은 왕의 치적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임지로 부임하는 지방관을 만나 임무를 확인하고 왕을 대신하여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당부하는 것은 조선시대 왕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왕이 지방관을 친히 만나는 것을 지방관의 입장에서는 하직(下直)을 한다고 했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보면 하직을 하는 자리에서 왕이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첫 번째는 그의 출신 및 이전에 어떤 관직을 거쳤는가? 두 번째는 지방관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무엇인가? 세 번째는 부임하게 될 지역이 안고 있는 어려운 문제는 무엇인가?

여기서 지방관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바로 ‘경국대전’ 이전(吏典) 고과조(考課條)에 실려 있는 수령칠사이다. 수령칠사란 농상을 성하게 함(農桑盛), 호구를 늘림(戶口增), 학교를 일으킴(學校興), 군정을 닦음(軍政修), 역의 부과를 균등하게 함(賦役均), 소송을 간명하게 함(詞訟簡), 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그치게 함(奸猾息)이다. 이 수령칠사는 지방관에 대한 인사 고과의 기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인사고과를 포폄(褒貶:‘포’는 포상을 의미하고 ‘폄’은 폄하를 의미)이라 했다. 매년 6월15일과 12월15일 모든 관원에 대해 포폄을 하게 되는데 수령에 대한 포폄은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다만 제주도는 목사가 포폄단자를 작성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했다. 이때 관찰사는 수령이 칠사를 여하히 했느냐에 따라 상·중·하의 점수를 매겨 인사고과를 하게 되며, 그 성적에 따라 승진이나 파직이 결정되었다.

이처럼 수령칠사는 지방관으로서 명심해야 할 사항이자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 준칙으로 삼아야 할 사항이었다. 왕이 지방으로 부임하는 수령에게 반드시 수령칠사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것은 목민관으로서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이며, 포폄은 지방관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 장치의 작동인 것이다. 결국 승정원일기 하직기사의 동어반복적인 서술과 정기적인 지방관에 대한 포폄은 지방관에 대한 인사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시스템의 운영이 사람에게 달려 있기에 개인의 자질 여하에 따라 시스템의 성능이 좌우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시스템의 운영자가 초심을 잃어 버렸을 때, 그리고 그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어떠한 폐해가 생기는가는 조선 후기 백성들의 저항을 야기하게 되는 삼정(三政)의 폐단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국 지방관들이 그 초심을 잃어 버리고 서로에 대한 견제장지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았기에 발생한 심각한 폐단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자체의 권한이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위임되고 있다는 점에서 왕이 권한을 위임하는 조선시대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 권한을 위임 받아 공무를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다. 조선시대 수령에 대해 왕이 그 임무가 무엇인지를 물었다면 이제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지자체에 물어볼 일이다. 임무는 무엇이고 그것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 말이다.

〈최재복/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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