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를 읽는다]12. 권당과 학생운동

2006.11.14 17:08

〈홍기은/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성균관 유생들이 기숙사로 사용했던 ‘양현재’.

성균관 유생들이 기숙사로 사용했던 ‘양현재’.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은 성균관이다. 당연히 입학 자격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우리의 귀에 익은 생원과 진사가 바로 그 자격자이다. 여기에 고위 관료의 자제나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하는 자가 있는데 전자를 상재생(上齋生), 후자를 하재생(下齋生)이라 불렀다. 이들이 기숙하는 곳이 양현재(養賢齋)이고, 강학하는 곳은 명륜당(明倫堂)이다.

성균관 유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학부의 학생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강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재야 사림(士林)을 대표하는 역할까지 겸하였기 때문에 임금이나 관료라 하더라도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반드시 단체로 의사를 표시해야만 임금에게 보고되기 때문에 자기들의 의사를 표현할 일이 있으면 단체로 행동해야만 했다. 단체행동에는 연명(連名), 공관(空館), 권당(捲堂)이라는 방법이 있었다. 공관이란 성균관의 유생들이 기숙사를 비우고 밖으로 나가는 시위이고, 권당이란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고 거부하는 시위이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숙종 45년 6월20일 대성전(大成殿) 동무의 남쪽 끝에 있던 회나무가 벼락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영의정 김창집은 차자(箚子)를 올려 성균관 유생들이 야박하고 예절이 바르지 못해 재이(災異)가 일어났다며 책임을 성균관 유생에게 돌렸다. 그러자 7월1일 유생들이 권당을 결행하였다. 대신이 성균관의 유생을 모독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 고종 10년 10월25일에 최익현이 사직소(辭職疏)를 올렸는데, 그 속에는 ‘인륜이 무너지고 손상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대해 고종은 “이렇게 정직한 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면 소인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3일 뒤인 28일 성균관 유생들이 최익현의 말을 빌미삼아 정면으로 반박하며 권당을 단행하였다. 고종은 “최익현의 상소에 무슨 사문(師門)에 저촉되는 말이 있었는가. 지금 이 권당은 매우 온당치 못하다”라며 당장 들어가게 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29일에도 유생들은 들어가지 않고 버티자 고종이 또 “다시 엄히 신칙해 깨우쳐 주어 들어가도록 권하라”라는 명을 내렸다. 그래도 들어가지 않자 고종은 주동자를 협잡배로 규정하고 “발론(發論)한 자 및 주창한 자를 형조로 이송하여 엄히 형문(刑問)한 뒤 원악지(遠惡地)로 정배하라”라는 전교를 내린다.

그래도 계속 저항하며 들어가지 않자 고종은 11월2일 “여러 차례 신칙하였는데, 권당한 제생들이 이처럼 항거하니 어찌 이와 같이 한단 말인가. 너무도 놀랍다”라는 전교를 내리고, “발론한 생원과 진사 및 반수(班首)를 형조로 이송하여 엄히 형문한 뒤 극변(極邊)으로 유배하고, 들어가지 않는 유생은 모두 정거(停擧)하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11월4일 형조판서 이우의 요청으로 형신(刑訊)은 면하였지만, 다음날 마침내 이번 사건을 주도한 이희문·황조하·이정곤을 각각 강진·영암·영해로 유배보내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유생들은 다시 성균관으로 들어갔다.

최익현이 상소한 날로부터 10일간에 걸쳐 왕과 성균관 유생들 간의 긴박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다가 결국은 주동자가 유배되는 처벌을 당하고서야 끝을 맺은 것이다.

성균관의 유생들은 때론 당파에 휩쓸려 특정한 주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양반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려는 치기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동량임을 인식하고 왕이건 대신이건 학문적 또는 국가적으로 위해가 되는 행위를 한다고 판단했을 때에는 주저없이 들고 일어나 권당을 행사하였다.

이처럼 이들이 행사한 공관과 권당은 배우는 자의 양심과 주체성을 드러내며 시대의 청량제 역할을 하였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의 학생운동은 그 뿌리가 바로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운동이 성균관의 시위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했는지 반성해 보면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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