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조선시대 격쟁과 언로

2006.11.20 17:32

격쟁 상소의 장면을 그린 김홍도의 ‘취중송사’(부분).

격쟁 상소의 장면을 그린 김홍도의 ‘취중송사’(부분).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렸던 박문수. 소론계열이었던 그는 한때 정적 홍계희의 탄핵으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다. 박문수 아들 박구영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궁궐 금호문 경비를 뚫고 임금님 계신 차비문 밖에까지 들어가 꽹과리를 쳐댔다. 그러자 궁문이 뚫렸다는 이유로 금호문 수문장 윤동구와 함께 박구영을 하옥하여 치죄케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승정원일기’ 영조 19년 2월19일 기사에 그 내용이 잘 소개되어 있다.

금호문은 창덕궁 서쪽 출입문인데, 궁궐 법식에 따르면 서쪽에 궐내 각사를 두는지라 신하들이 항상 드나들어 복작거린다. 그러니 자연히 임금 가까이서 자신의 뜻을 알리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곳이 금호문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입구가 아니라 출구로 사용되고 있어 오히려 조용한 편이다.

영조 19년 2월5일 기사에는 홍계희가 박문수를 탄핵한 상소 전문이 실려 있는데, 함경감사로 있던 박문수의 여러 가지 실정을 지적한 것이었다. 경신년에 일어난 대흉년 상황을 부풀려 곡식을 타내 관내 백성들에게 인심을 썼고, 수만냥을 따로 서울로 보내 횡령했으며, 감영 소속 기생 이매(二梅)에 빠져 관곡을 낭비하고 아이를 갖게 하고자 명산에 기도다니면서 수백 민(緡)이나 되는 돈을 썼다는 내용 등이었다. 그러나 곧 박문수의 혐의는 풀렸고, 탄핵을 했던 홍계희가 역풍을 맞아 오히려 삭직 당하고 말았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신문고를 두드리거나 임금이 들릴만한 곳에서 꽹과리를 치는 격쟁(擊錚)이 자주 이용되던 수단 중에 하나였다. 오늘날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역할을 수행하던 기능이다. 신문고가 태종 때 설치되었다고는 하나, 얼마 후 기능을 상실하였고, 그 대체 수단으로 허용되던 것이 격쟁이었다. 이는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서 정식으로 법제화되었다. 형벌이 자기 신상에 미칠 경우, 부자 형제간의 분간(分揀), 처첩 분간, 양천 분간 등 신문고가 네 가지 사건에 허용되었던 데 비해, 격쟁은 자손이 조상을 위해, 처가 남편을 위해, 동생이 형을 위해, 종이 주인을 위한 것 등 네 가지였다. 가족윤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로 진전하였음을 보여준다. 함부로 격쟁하는 것을 금지하긴 했으나, 그 외에도 민폐에 관계된 것이면 외람률(猥濫律)의 적용을 받지는 않았다.

인조부터 영조까지 153년의 치세 동안 ‘격쟁(擊錚)’이란 단어를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면, 승정원일기에서는 무려 3,535개가 나타나는데 비해, 실록에서는 128개만이 보인다. 그만큼 ‘승정원일기’ 내용이 자세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방대한 양의 ‘승정원일기’조차 웹으로 검색 가능한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로만은 예전이 낫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사간원 간원들은 군주 잘못을 지적하는 간쟁이 주 임무였고, 면전에서 직간 하다 화를 당한 인물 또한 부지기수였다. 관직을 그만 둔 자나 지방 유생들은 상소를 통해 의견을 진달했다. 왕의 일과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잠자리 들기 전에 상소문을 읽는 것이었다.

상소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지부상소다. 도끼를 짊어지고 대궐밖에 꿇어앉아 상소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차라리 도끼로 목을 쳐달라는 극약처방이었다.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앞두고 올린 면암 최익현의 ‘병자지부상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를 요구하자 대궐 밖에서 사흘 동안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고 청했던 조헌의 ‘지부상소’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결국 목숨마저 기꺼이 국가를 위해 바쳤다. 대마도로 끌려간 최익현은 왜놈이 주는 음식마저 거절하며 절개를 지키다 순국했고, 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은 700의병과 함께 금산에서 전사했다. 유생 1만여명이 동원된 만인소,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사림의 신원을 위해 41번이나 올려 선조 동의를 얻어 낸 율곡의 상소 등도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것 중 하나이다. 옛 시절로 회귀하고픈 생각이 든다.

〈박홍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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