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 대안은?

2009.11.01 10:30
연합

"여러분, 우리 드라마 막장 아닙니다."(안내상),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어요."(권오중), "막장 취급하는 것은 출연 배우로서 거부하고 싶다."(조민기)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의 풍경이다. 배우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막장'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만큼 방송가에 '막장 드라마' 논란이 거세다는 간접증거다. 과연 '막장 드라마'는 무엇이며, 왜 반복 생산되는 것일까.

◇'막장 드라마'의 특징은?

사실 '막장' 드라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무척 막연하다. 불륜과 복수 등 드라마의 설정을 두고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생의 비밀'이나 '복잡한 인척 관계' 등 드라마의 전개 과정을 '막장'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불륜이나 복수, 출생의 비밀이 현실에서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닌 만큼 이를 표현했다는 점만 가지고 드라마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배우 안내상은 '수상한 삼형제'의 제작발표회에서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고 '막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드라마 작가 문영남을 변호하고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설정이나 코드만으로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할 수는 없고, 중요한 것은 그런 내용이 나올 '개연성'이라고 설명한다.

문화평론가인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중요한 것은 전개되는 내용이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그럴듯한가 하는 것"이라며 "개연성이 떨어지는 상황 전개는 드라마의 완성도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아내의 유혹'도 '점 하나 찍고 복수한다'는 비난을 받은 것은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라며 "같은 복수극이라도 지난해 방송된 KBS '태양의 여자'는 인물들의 상황이 공감을 이끌어낼 만큼 개연성이 있었기 때문에 '막장' 논란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막장' 드라마, 어쩔 수 없이 만든다?

이런 '막장'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으로서는 '막장'일수록 시청률이 따라오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막장' 논란을 일으켰던 '아내의 유혹'은 최고 40.4%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밥줘'도 최고 20.5%의 시청률을 보이는 등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공식을 보여줬다.

윤 교수는 "분당 시청률이 집계되기 시작하면서 맥락을 무시하고 순간적으로라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채려는 '낚시질' 방송이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광고 판매와 밀접하게 관련된 시청률을 제작진이 아주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KBS '수상한 삼형제'의 연출을 맡은 진형욱 PD는 "시청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막장'으로 간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그 말에는 드라마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개연성을 상황에 따라 무시해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진 PD는 최근 드라마가 '막장'으로 흐르는 이유로, 제작 여건상의 문제도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급조된 드라마가 늘어나면서 제작기간이 짧아진 이후 '막장' 드라마가 늘어났고, 외주 제작 드라마의 편성이 늘면서 방송사 내에서 제대로 필터링되지 않은 드라마가 많이 생기고 '막장' 논란도 불거졌다"고 말했다.

MBC '밥줘'의 제작을 맡은 오현창 CP도 "이른바 '쪽대본'을 가지고 촬영을 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연출자와 작가가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치기 어렵다"며 드라마 제작 여건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막장' 드라마의 대안을 찾는다면?

그렇다면 '막장' 드라마의 범람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에서 '막장' 드라마와 '막말' 예능프로그램의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며 무기한 중점심의 할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제작진과 전문가는 '막장' 드라마라고 해서 심의와 규제를 남발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현창 CP는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고 해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그것이 심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시청자들이 '막장' 드라마에서 잘못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진 교수도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드라마의 '막장' 상황에 몰입했던 시청자가 현실에서도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욕하면서 본다'는 표현도 있듯이 시청자가 드라마를 볼 때 사실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비판의식'을 갖고 시청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말을 보탰다.

이들이 염두에 둔 대안은 제작진의 자체적인 정화다. 특히 최근 '착한 드라마'로 인기를 끈 SBS '찬란한 유산'이나 KBS '솔약국집 아들들'과 같은 드라마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병문 단국대 교수는 "휴먼 가족드라마를 표방한 '솔약국집 아들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꼭 '막장'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도 "결국 중요한 것은 드라마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며 "등장인물의 성격에 개연성을 부여한 '엄마가 뿔났다'와 같은 드라마를 모범 사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CP는 "심의는 최소화하되 제작진 내부에서의 '게이트키핑'을 강화해 무책임한 '막장' 드라마는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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