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윤리 없는 '인간수업'에서 대체 배울만한 게 있었을까

2020.05.22 16:12 입력 2020.05.22 20:22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넷플릭스 ‘인간수업’

“재수가 없었던 거야, 자네나 나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의 주제의식은 어쩌면 극 중 이왕철(최민수)이 성매매 알선 사업 파트너인 주인공 오지수(김동희)를 위로하며 던진 이 대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성매매 알선 범죄로 돈을 버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그리며 큰 화제가 된 이 작품에서, 안정적 삶에 필요한 만큼만 범죄로 돈을 벌겠다던 주인공 지수의 윤리적 일탈은 역설적으로 거의 매회 안정적 삶과 거리가 먼 혼돈으로 그를 끌고 간다. 성매매 알선용 대포폰을 사용하며 모범생의 삶과 온라인 포주의 삶을 분리하며 살 수 있을 거라던 그의 믿음은 같은 반 학생이자 교내 ‘초인싸’인 배규리(박주현)가 대포폰을 훔치면서 그대로 무너지고, 범죄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도망치려던 계획은 여행 가방에 쑤셔 넣은 범죄 수익 6000만원을 도박중독자인 아버지 오정진(박호산)이 훔쳐가면서 무산된다. 이후 규리의 요청으로 시작된 둘의 동업은 사업을 번창시키기는커녕, 조직폭력배와 엮이는 계기가 된다. 지수의 표현을 빌리면 둘의 만남으로 그들은 “하루에 한 번꼴로 죽을 뻔”한다. 이 작품에 대해 미국 드라마인 <브레이킹 배드>의 이름이 종종 소환되는 것은 무언가를 잘해보려다가 오히려 더 수렁에 빠져드는 운명의 불가항력을 서사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 불가항력의 의미다. 지수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은 그가 애초에 윤리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인가, 단지 운(재수)이 없어서인가. 이 두 갈래 길에서 작품은 전혀 다른 윤리적 전망을 남긴다. 후자의 경우 어떠한 윤리적 전망도 남지 않으며 오히려 부정된다. 미리 말하자면, 이 작품은 파국의 소용돌이에 지수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고찰하기보단 그 소용돌이 안에 그의 책임을 파묻어버린다. 그는 단지 “재수가 없었던 거”다.

인터넷 성매매 알선 범죄로 돈을 버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은 각종 성범죄와 맞물려 올해의 문제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인터넷 성매매 알선 범죄로 돈을 버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은 각종 성범죄와 맞물려 올해의 문제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작품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사건들이 지수, 규리의 행동과 상관없이 우연적으로 벌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사건들의 인과에 대해서 만큼은 명백한 원인을 제공한다. 가령 규리가 어머니 조혜연(심이영)이 운영하는 연예기획사 소속 남자 연습생 이태림(곽희주)을 성매매업에 끌어들인 탓에, 그들은 태림의 고객이던 미정(백주희)의 애인인 폭력배 류대열(임기홍) 무리와 엮이게 된다. 또한 지수는 같은 반 학생이자 실은 자신의 알선을 통해 조건 만남 일을 하던 서민희(정다빈)가 경찰에 자백하는 걸 막으려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개입을 늦춰 왕철이 대열 패거리와 싸우다 죽는 빌미를 만든다. 이 일들은 그들 때문에 벌어진 게 맞다. 하지만 또한 그때마다 작품은 이들의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서둘러 변명한다. 태림이 성매매업 일을 수락한 건 데뷔가 무산되어 더는 연습생으로 남기 어려워진 탓이며, 왕철이 죽음까지 무릅쓰고 지수와 민희를 위해 싸운 것은 지수의 판단 착오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지수와 규리의 행동이 철저히 이기적이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이었다는 비판적 전망은 남는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인간수업>은 지수를 위한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를 준비해놓는다. 바로 이 세상은 이미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비정한 곳이라는 전제다. 아버지는 아들의 돈을 훔치고, 어머니는 딸의 인생을 자신의 트로피로 활용하며, 학교조차 일진의 지배하에 돌아가는 그런 세상.

성매매 알선 사업으로 돈을 버는
고등학생 지수와 규리의 일탈은
매 회마다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

철저히 이기적인 주인공들의 행동
사건의 결과에 원인 제공하지만
작품은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변명

도덕적 공백에 가까운 세계 설정은
현실의 죄를 구성하는 맥락을 놓쳐
주인공들에 강력한 알리바이 선사

지수와 규리의 담임인 조진우(박혁권)의 사회 수업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위법 행위자를 처벌하는 공권력의 권한을 누가 주었는지 학생들에게 질문한 뒤, 사실 이것은 “너희나 나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준 권한”이라고 자답한다. 이것은 가장 간단한 수준의 사회계약론이다. 흥미로운 건, 나름 이상적인 선생님으로 그려지는 진우가 인간의 합리성을 믿는 로크적인 의미의 사회계약론자라면, <인간수업>의 세계는 철저히 홉스가 가정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라는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학생주임의 기습적인 소지품 검사에 대해 지수는 사업 관련 물품을 들킬까봐 개인의 권리를 들어 거부하고, 진우는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학생주임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별개로, 진우의 믿음은 철저히 배신당한다. 지수의 가방에 범죄 증거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진 곽기태(남윤수) 패거리가 지수를 괴롭히는 것을 비롯해 그는 실제 교실에서 벌어지는 야만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 민희가 성매매업을 비롯해 위기에 빠졌다는 걸 직감한 학교전담경찰관 이해경(김여진)의 조금 강한 심문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진우였고, 이후 규리가 동아리실에 숨겨 놓은 성매매 범죄의 물증이 나왔을 때도 아이들이 그럴 리 없다고 진술한다. 교사 진우 그리고 역시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하지만 언제나 한발 늦는 경찰 해경이 선하지만 무력한 어른이자 실패한 시스템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어른들이 무능력한 게 아니라 작품 속 비정한 세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규범적 인물들과 문명화된 공권력을 무력하게 묘사한 것에 가깝다.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 어른이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는 왕철인 건 우연이 아니다. 야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건 합리성이 아닌 힘이다. 그에 반해 타인이 옳은 길을 선택할 거라는 믿음을 갖는 이들이 배신당하고 또한 그것이 마치 그들의 무능력 때문인 것처럼 그려진다면, 지수와 규리 혹은 기태, 대열 등 타인을 도구로 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의 행동은 생존을 위한 필연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인간수업>이 범죄 가해자(지수)의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잘못이라는 다수의 비판적 여론은 이 지점에서 더 구체화할 수 있다. 지수는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 이유로 성매매 알선을 시작한다. 물론 헛소리다. 자신의 평범한 삶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성 착취의 메커니즘에 끌어들이고도 거리낌이 없는 그는 도덕적 불감증이 맞다. 하지만 또한 작품 속 모두가 그러하다. 부잣집 딸이지만 도벽이 있고 지수의 사업에 동참하는 규리의 존재는 얼핏 생존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는 지수의 논리에 대한 반박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규리가 사업을 재개하는 데 필요한 자본금을 턱하니 내놓자 지수는 모욕받은 표정으로 “다 이렇게 쉽네, 너는. 그냥 다 돈 주고 사면 되겠네”라며 거절한다. 범죄를 일종의 유희처럼 접근하는 규리와의 대비를 통해 지수의 범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더더욱 필연성을 획득한다. 배우 박주현의 발견을 비롯해 규리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것과 별개로, <인간수업>에서 그의 존재는 지수를 연민하기 위해 활용된다. 결정적일 때마다 지수의 글썽이는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편을 드는 규리의 시점을 거칠 때마다 “미성년자고 나발이고 안 가리고 팔아먹는 악질 포주”로서의 지수의 본질은 지워진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대본을 쓴 진한새 작가가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죄라는 건 왜 나쁜가”라는 문제의식이 작품 안에서 집요하게 반복될지언정 별다른 윤리적 전망을 남기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인간수업>은 분명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죄의식과 도덕의 필요성을 전달할 가능성과 의도를 품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법적 제재를 떠나서도 죄라는 것이 왜 나쁜지에 대한 사고실험을 위해 누구든 죄의식과 이타심을 버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세계를 설계하느라, 그들을 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근거와 비판적 전망을 작품 안에서 마련하지 못한다. 가령 자신의 사업은 성 착취가 아니라 성매매자를 위한 경호업이라는 지수의 변명은 우리의 경험세계에선 분명 헛소리지만, 작가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위해 만약 정말로 성매매자도 자신의 의지로 일을 선택하고, 지수가 그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윈-윈’ 관계라면 그럼에도 그것은 죄이며 나쁜 것인지 질문하는 듯하다. 실제로 민희를 비롯해 조건 만남을 하는 작중 여성들은 지수와 왕철의 경호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에 불만족을 느낄 뿐이다. 즉 <인간수업>이 성매매 문제에 깔린 여성의 성 착취라는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여성주의적 비판은 전적으로 옳지만, 이것은 남성 중심적인 ‘성맹적’ 관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죄는 왜 나쁜가’라는 질문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공백에 가까운 세계를 설계하느라 정작 죄를 구성하는 경험세계의 주요 맥락들을 놓친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인간수업>의 집요한 문제의식은 실천적으로 공허해진다. 선을 선으로 보답받길 기대할 수 없는 세계에서 행위자는 결과적으로 성공하거나 실패할지언정 도덕적 부담을 질 이유는 없다. 기댈 수 있는 건 운, 재수뿐이다. 하여 지수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운명의 불가항력은 돈 없고 보호자 없고, 심지어 재수까지 없는 아이가 겪어야 하는 안쓰럽고 필연적인 사건이 된다.

그래서 궁금하다. 과연 지수가 그토록 비싼 수업료를 치른 ‘인간수업’으로부터 대체 배울만 한 것이 있었을까. 물론 이것은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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