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프린트’(Alfa Romeo Giulietta Sprint)는 경주용 자동차의 DNA를 가진 스포츠카이면서도 보통 사람들을 위한 차라 할 만하다. 고성능과 매력적인 디자인을 뽐내면서도 가격은 저렴해 대중적인 모델로 평가를 받는다. 전쟁 후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자국 이탈리아의 재건을 함께하며 대중적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알파 로메오는 줄리에타 스프린트의 성공을 발판으로 여러 후속 모델들을 내놓게 된다.

알파 로메오는 철도 기사였던 니콜라 로메오(Nicola Romeo)가 1915년 롬바르다 자동차 제작 주식회사(ALFA: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를 인수해 만든 자동차 메이커다. 사명은 회사 이름에 자신의 성을 붙여 만든 것이다. 정부 발주의 군용 트럭을 주로 생산하다 1920년대 들어 경주용 차를 직접 제작하며 고성능 브랜드로의 입지를 굳혀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파 로메오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다른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처럼 알파 로메오 역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생산 공장이 대부분 파괴돼 종전 후인 1940년대 말엔 험난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경영 정상화에 몰두하던 경영진은 이때를 즈음해 고성능 자동차에서 승용차 생산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 전범국 처지로 자력갱생이 시급했던 이탈리아 정부가 알파 로메오를 지원하면서 알파 로메오는 승용차 시장에서 회생의 기미를 엿볼 수 있게 됐다.

첫 국영 대량 생산차 1900 후속 모델…베르토네가 디자인 = 1950년 국영 회사의 최초 대량 생산 차인 알파 로메오 1900이 생산됐다. 이때에도 알파 로메오는 스포츠카 경주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었다. 1900은 세단이면서도 스포츠카의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1900은 일체형 구조에 독립 위시본형 전륜 서스펜션을 장착했으며 1,900㏄ 4기통 엔진에는 이중 오버헤드 캠축을 달았다. 카브리올레형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인 업체 피닌파리나(Pininfarina S.p.A)가, 2도어 쿠페 제작은 차체 제작과 공기역학 스타일로 이름이 알려진 토우링이 맡았다. 하지만 라이벌 피아트 등 유럽 메이커와 경쟁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00의 가능성만 타진한 알파 로메오는 1952년 이보다 작은 소형차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바로 ‘줄리에타’(Giulietta)인데,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따온 줄리엣의 이탈리아식 이름이었다. 당시만 해도 로메오(Romeo)라는 회사명과 잘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전달했다.

먼저 줄리에타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750’이 가동됐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Ferdinand Porsche)의 제자 사타 풀리가(Satta Puliga)와 루돌프 후루스카(Rudolf Hruska)가 총괄을 맡았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직렬 4기통 1.3ℓ 엔진으로, 가벼운 알루미늄 블록과 크랭크 케이스(Crank Case)로 제작됐다. 엔진은 특히 서로 다른 모델로 변형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는데, 각기 다른 시장을 겨냥한 4도어 세단과 2도어 쿠페가 계획됐다.

하지만 줄리에타의 본격적인 시판에는 산적한 현안들이 있었다. 생산 여력이 부족했다는 것인데, 당시 알파 로메오는 줄리에타에 앞서 시판된 1900의 생산 라인은 있었지만 새 차의 개발비는 물론 생산 설비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개발비를 모으기 위해 고심한 끝에 나온 방책이 바로 복권 발행이었다. 신형 줄리에타 500대를 내걸고 복권을 판매, 그 수익금으로 1.3ℓ 엔진을 장착한 신형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세단의 개발에 물꼬를 텄다.

그러나 복권 당첨자가 나오기까지 줄리에타는 개발되지 못했고 다급해진 알파 로메오는 당초 2도어 쿠페와 4도어 세단을 함께 개발·공개하려던 계획을 바꿔 2도어 쿠페부터 먼저 내놓게 된다. 이때의 디자인은 토리노의 카로체리아 기아(Carrozzeria Ghia)에게 맡겨졌으나 함께 일한 동료들의 불화로 인해 2도어 쿠페 개발의 과제는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1968년 중앙에 엔진을 장착한 알파 로메오의 V8과 1971년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디자인했다)에게 넘겨졌다.

주문량 급증해 공장 새로 증설…최고 180㎞/h 스프린트 벨로체 등장 = 1954년 4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데뷔한 줄리에타 스프린트는 줄리에타 시리즈 중에 첫 모델인 쿠페형이다. 뛰어난 성능의 엔진과 핸들링, 매끈한 디자인, 경쟁력있는 가격대 등으로 인해 출시 초기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쿠페의 성공은 이듬해 출시된 4도어 세단으로 이어졌다.

1,290㏄(1.3ℓ) 4기통 엔진을 장착해 80마력의 힘과 최고 142㎞/h까지 속력을 낼 수 있었던 줄리에타 스프린트는 당시로서는 ‘스포츠카’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성능으로 평가 받았으며 아마추어용 경주차로서 경쟁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이 차가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주문량도 급증해 베르토네는 토리노 외곽 그롤리아스코의 새로 지은 공장으로 옮겨야 했다. 1956년에는 10마력을 더 내도록 엔진을 보완, 최고 180㎞/h까지 달릴 수 있는 스프린트 벨로체(Sprint Veloce)가 공개됐다. 줄리에타 스프린트는 6년 동안 모두 2만7000여대가 생산됐으며 그 중 3,058대는 스프린트 벨로체였다.

1961년 공개된 줄리에타 티 베를리나(Giulietta Ti Berlina)은 1,300㏄급 FIA 그랑프리 투어링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다. 이듬해 줄리에타 전 차종이 1,600㏄로 확대된 가운데 줄리에타 후속 모델로 줄리아(Giulia)가 공개됐다. 피스톤의 크기가 늘어나고 긴 행정의 크랭크축을 단 1,570㏄ 우수한 소형 엔진이 장착됐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