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할’에 의문

2009.01.18 18:38

1부 - (9) 미국 헤게모니는 끝나는가

토론자들은 대체로 달러 가치 하락, 중국의 부상 등으로 인해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헤게모니 하강 속도와 강도에 대한 전망에서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서울대 문우식 교수는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달러 지위가 다른 통화로 넘어갈 확률은 낮다”고 진단했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도 “달러 지위가 빠르게 약화할 것 같지는 않아 헤게모니 부재시대의 불안정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미국 위기가 더 심화되면 달러를 한꺼번에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구춘권 영남대 교수는 “(냉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지역을 묶는 제국을 만들고 주변지역은 배제, 격리시키는” 제국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 1 - 구춘권 영남대 교수

경제·문화적 영향력 하강…정치·군사적 측면은 복잡

경제·문화적 차원에서 미국 헤게모니는 하강하고 있다. 미 경제비중은 현격히 줄었고 생산력은 크게 떨어졌으며 금융위기로 달러의 ‘우월한 통화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소비를 결합시킨 미국식 생활방식의 매력은 크게 떨어졌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5%를 차지하는 미국은 부자들에게만 천국일 뿐이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토론회

하지만 정치·군사적 측면의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의 문제는 그대로인데도 사람들은 90년대 이후 미국을 새롭게 봤다. 특히 강한 군사력에 주목했다. 냉전종식 때문이었다. 사실 냉전은 갈등을 얼어붙게 하는 ‘냉 평화’를 이끌어냈는데 이 평화가 냉전과 함께 종식됐다. 제2차 걸프전쟁, 유고슬라비아 공습 등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극단적 폭력이 그것이다.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 관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다. 그 중 첫 번째가 유엔버전(유엔을 세계 중심에 두는 것)이다. 국민국가의 안정성이 전제돼야 했다. 그러나 상당지역에서 ‘실패한 국가’들이 나타나면서 작동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인 ‘제국버전’은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지역(미국·유럽·동아시아의 대도시)을 묶는 제국을 만들고 주변지역은 배제, 격리시킨다는 내용이다. 클린턴 시절부터 미국은 미국 주도의 제국버전을 실행하고자 했다. 오바마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국버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오늘날 세계는 그람시가 의미한 헤게모니는 존재하지 않는 ‘제국’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연 미국은 이 제국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연합은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제국은 세계평화를 담보할 수 있을까’이다. 경계 및 완충지대 설정으로 테러리즘에 대응해 평화를 유지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지구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동반한 소통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미국의 역할’에 의문

발제 2 - 문우식 서울대 교수

美 자력갱생 힘든상황…동아시아 성장이 대안

먼저 미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 경제의 어려움은 오랜 기간 지속되리라고 본다. 먼저 부동산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압류한 담보물의 가치가 대출금액보다 낮더라도 추가적으로 빚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부동산담보대출 채권의 실제가치가 20~30% 정도 평가절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미국은 부동산 연금이나 개인들의 주식시장 투자비중이 굉장히 높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개인연금이 타격을 입어 개인 소비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미 달러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달러의 위기는 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잘못은 미국이 했는데 그 결과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부담했다는 점이 두 위기의 공통점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전, 미국은 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통화를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이 인플레이션은 고정환율제를 통해 유럽·일본 등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이것이 첫번째 위기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신용위기다. 증권화·유동화를 통해서 신용이 지나치게 공급돼 이를 통해 미국의 위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가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미국이 주축이 돼 생긴 금융질서하에서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달러 지위가 유로화·위안화 등 다른 통화로 넘어갈 확률은 매우 낮다. 국제통화 지위는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이유에 의해 많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위기와 관련해 달러를 많이 찍어냈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가치가 하락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도 상당히 위태롭게 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과 유럽의 실물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관건은 동아시아 국가의 성장이다. 다만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려면 국제통화 유동성 공급 체제가 필요하다. 현재 국제유동성을 독점하고 있는 IMF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지역적 차원의 아시아 신용기구 등 국제유동성 확보에 관한 다양한 채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발제 3 - 박복영 대외경제硏 연구위원

美 영향력 지속 이유, 달러에 대한 중독 탓

현재 미국 금융 헤게모니의 핵심은 두 가지다. 달러가 주요국 중앙은행의 준비통화금(현재 세계 중앙은행 준비금의 65%) 및 국제무역 결제통화(EU 역내교역을 제외하면 90%)로 쓰인다는 점, 국제 금융규범을 만드는 기구에서 미국이 막대한 영향력(IMF에 대한 30~50%의 출자금)을 지닌다는 점이 그것이다. 미국 금융 헤게모니가 형성될 당시 미국은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역사적 관성을 들 수 있다. 상당수가 달러를 쓰면 나머지도 달러를 써야 편안한 상황, 즉 네트워크 효과가 그것이다. 둘째로 대안통화의 부재 문제가 있다. 셋째로는 미국과 신흥수출국 간 암묵적 합의를 들 수 있다. 신흥수출국(60년대 유럽과 일본)은 미국 수출로써 성장해야 했고 이때 미국은 달러를 맘대로 찍어내 국민들 및 금융자본들의 구매력으로 이용했다. 신흥수출국은 수출경쟁력 때문에 가능한 한 달러를 고평가해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려 했다.

전반적으로 80년대 이후 ‘경제적 파워의 이동’은 미 금융 헤게모니를 약화시켜 왔다. 특히 중국의 교역규모가 커지면서 홍콩과 상하이가 맨해튼처럼 성장할 것이다. 일본과 달리 중국은 일부 무역에서 위안화를 쓰는 등 자국 통화를 국제통화로 키우려는 의지가 있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 돈을 맡겨도 안정적으로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달러 지위가 빠르게 약화할 것 같지 않아 헤게모니 부재시대의 불안정성이 예상된다. 또 이번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위기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재규제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가 앞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에 대비하고자 각국은 더 많은 준비금을 모으려 할 것이고, 그것은 달러가 될 것이다. 달러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달러를 더 확보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예상된다.

발제 4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美·中 통상마찰 가능성…아시아의 협력이 돌파구

앞으로 엄청난 혼란이 지속될 것 같다. 먼저 미국 위기가 심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LTCM, S&L위기, 엔론사건 등 부동산 및 금융 관련 사건이 많이 터졌고 지금 나온 문제점(신용평가회사의 문제, 도덕적 해이의 문제)들이 이미 다 나왔지만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규제 완화를 택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게다가 클린턴 정부 시절 금융 규제 완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가이트너, 서머스 등 이른바 루빈사단과 시장주의자인 벤 버냉키가 현재 미국의 경제를 맡고 있다. 이들은 위기수습은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규제를 더 풀려고 할 것이다. 두번째로 콘트라티에프 파동을 보면, 75년 정도까지 진행됐던 A파동에 이어 B파동이 마지막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달러의 문제다. 상당수가 사용하면 나머지도 따라서 사용한다는 ‘네트워크 이펙트’는 달러의 지위를 유지시켜 줄 수 있지만 반대로 구조가 일거에 무너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차이메리카’, 즉 중국이 수출을 해서 흑자를 내고 그것으로 미국 재정적자를 메워주면, 그것을 가지고 미국이 소비하는 구조가 과연 계속 이어질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 위기로 봐선 유지되기 힘들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생길 텐데, 그래서 ‘글로벌 코디네이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역시 큰 성과가 없을 것이다. 불황에 빠져 있던 미국이 일본 엔화를 절상시키고 일본 금리를 낮추게 한 플라자 협정이 ‘글로벌 코디네이션’의 유일한 사례였다. 중국이 일본처럼 미국 말을 잘 들을 것인지 의문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1 대 1로 맞서게 되고 통상 마찰, 금리 및 환율 마찰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혼란이 예상되지만 아시아 국가끼리 협력을 한다면 국제적으로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나라 돈으로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잠재적인 외환위기 위험을 안고 있다.

만약 역내에서 역내통화에 기초한 외채 발행이 가능하다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치앙마이 협정이 이번에 확대되는데 이것이 제도화되면 아시아통화기금(AMF)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는 일이다.

<송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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