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육아빠를 찾아서]남들 시선, 줄어든 수입, 경력 걱정 만만찮지만…그래도 난 육아 아빠

2017.10.02 11:00 입력 2017.10.11 10:35 수정

3명의 아빠들이 말하는 한국에서 ‘육아빠’로 산다는 것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 세 명의 ‘아빠’가 있다. 대기업 유통계열사 직원인 김현우씨(35·가명), 중견 건설회사 대리 유현호씨(36), 그리고 지난 6월부터 건축설계사에서 구직자로 신분이 바뀐 고성원씨(41)다.

세 사람은 모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집에서 살림을 하는 이른바 ‘육아빠’(육아 아빠)다. 걸레질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전형적인 ‘엄마 아들’인 이들에게 아이를 깨우고 먹이고 입히는 육아, 집안 살림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육아를 위해 ‘전업주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제력’과 이를 용인하는 ‘썩 괜찮은 직장’을 가졌다는 점에서다. 과연 육아빠들도 같은 생각일까? 육아빠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 “언제까지 쉴 거니?” 발목 잡는 편견

육아빠 3개월차인 고성원씨는 지난여름 육아빠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은행에서 일하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귀하면서 남편과 육아휴직 ‘바통 터치’를 기대했지만 회사에서 난색을 표했다. 아내 역시 이번에 복귀하지 않으면 회사를 계속 다닐 수가 없던 상황. 장고 끝에 고씨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의 감정 소모도 극심했다. 그래도 고씨는 회사를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고씨는 한창 걸음마를 하는 막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처음에는 틈틈이 공부도, 운동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고씨는 조만간 ‘육아빠 프로젝트’를 종료한다.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고, 고민 끝에 장모님을 모시면서 아이들을 부탁드리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 ‘조부모 육아 세대’로 편입하는 것이다. 고씨가 육아빠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변의 시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며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쉰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육아빠에 대해 처음에는 ‘대단하다’ ‘부럽다’고 하다가 조금 지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언제까지 쉴 거냐’고 묻는다”며 “육아 아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어져야 (육아빠가)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창간 기획-육아빠를 찾아서]남들 시선, 줄어든 수입, 경력 걱정 만만찮지만…그래도 난 육아 아빠

■ 줄어든 주 수입원 “경제계획 다시 짜”

연일 경신되는 ‘사상 최저 출산율’에 정부도 화들짝 놀라 출산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손질하고, 불이익을 주는 기업을 엄벌하겠다는 엄포도 내놨다. 대기업들을 시작으로 육아휴직 장려제도를 강화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 롯데그룹은 지난 1월부터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출산 첫째 달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시행 중이다. CJ그룹은 자녀 입학시기에 한 달간 쓸 수 있는 ‘자녀 입학 돌봄 휴가’ 제도를 도입·운용 중이다.

김현우씨는 육아휴직 한 달차 아빠다. 내년 8월까지 세 살배기 아들을 돌볼 예정이다. 사내 부부인 김씨는 아내가 먼저 2년 휴직 후 복직하며 성공적으로 육아휴직 ‘바통 터치’를 했다. 이른 아침, 아내를 출근시키고 아이를 깨우고 먹이는 일이 이제는 제법 익숙한 일상이 됐다. 김씨는 “첫아이 출산을 준비하며 부부가 번갈아 휴직을 쓰기로 약속했지만 막상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며 “휴직기간 동안 줄어들 수입에 대한 고민도 컸다”고 말했다. 다행히 김씨는 육아휴직 급여가 최근 인상돼 혜택을 받는다. 통상임금의 40%(상한 100만원)이던 육아휴직 급여가 9월부터 휴직 첫 3개월간 통상임금의 80%(상한 150만원)로 인상됐다. 김씨는 오는 12월까지 약 150만원의 휴직급여를, 그 이후 9개월 동안은 약 8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각오하긴 했지만 맞벌이 부부의 소비패턴과 고정비 지출이 있다 보니 휴직 후 적은 씀씀이에도 긴장한다. 급여가 40%로 줄어드는 4개월 차부터는 허리띠를 더 졸라맬 계획이다. 그는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장려·독려하는 조직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육아휴직 급여가 좀 더 오르면 더 많은 육아 아빠가 생겨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력 단절 어쩌나” 뒤처질까 불안

건설회사에 다니는 유현호씨는 당초 1년으로 신청한 육아휴직 기간을 끝까지 유지해야 할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사내 육아휴직 1세대 격인 그가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회사에서는 충분히 양해를 했고, 동료들도 많은 축하를 보냈다.

대학에 출강하며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아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1년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회사 사정을 보니 휴직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당장 입사 동기들이 현장소장으로 발령이 나거나 해외 사업장 인력관리를 위해 파견을 나가는 등 현장 경험을 본격적으로 쌓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휴직 전 담당한 마케팅 업무에 경력직 사원이 충원됐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유씨는 “동기, 선후배들과 경력 면에서 차이가 날 텐데 어떻게 똑같은 기대를 할 수 있겠느냐”며 “다만 승진에서 뒤처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구조조정 등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선 대상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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