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판 뒤흔드는 ‘디지털세’
조세회피 논란 있던 넷플릭스 등
매출정보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
과세권 확보 용이…추가 징수 기대
명목세율 낮은 국가로 진출한 기업
내부 운영 대책 ‘전략 조정’ 가능성
2023년 도입되는 ‘디지털세’는 전 세계 조세 제도와 기업 환경의 판을 바꾼다. 정부로서는 그간 한국에서 큰돈을 벌면서 세금은 안 낸 해외 기업들에 대한 과세권을 갖게 된 점은 긍정적 요인이다. 기업 입장에선 저세율 국가에 진출해 그간 이익을 취했던 경영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헝가리 등 명목세율이 낮은 국가에 진출했던 국내 기업은 최소 81개다. 각종 조세 혜택으로 실효 세율이 낮은 베트남 같은 나라에 진출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세금을 더 물게 되는 기업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포괄적이행체계(IF)는 지난 8일(현지시간) 총회에서 회원국 136개국이 동의한 디지털세 최종합의문을 발표했다. 디지털세는 필라1과 필라2로 구분된다. 필라1은 다국적기업이 매출 발생국에 세금을 낼 수 있도록 과세권을 여러 나라에 배분하는 것이 골자다. 이번 IF 회의에서는 초과이익 배분비율(배분총량)을 지난 7월 합의된 20~30%에서 25%로 확정했다. 2023년부터 글로벌 합산 매출 가운데 통상이익률(10%)을 초과하는 이익의 25%를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내야 한다는 의미다. 필라2는 글로벌 최저한세율 15%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IF는 지난 7월 회의에서 ‘15% 이상’으로 협의했던 내용을 이번 10월 최종 합의문에서 15%로 확정지었다. 연결매출액 7억5000만유로(1조원) 이상 다국적기업은 2023년부터 15% 글로벌 최저한세를 적용받는다.
정부는 필라1·2 도입이 세수와 과세권 확보에 모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를 마친 뒤 특파원들을 만나 “세수가 소폭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라1 도입 시 우리 기업이 해외에 납부하는 것보다 다국적기업들이 국내에 내는 세금이 더 많을 수 있다. 2023년 필라1이 적용되는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 추정된다. 2030년부턴 연 매출액 기준이 200억유로에서 100억유로로 낮아져 적용 기업이 3~5개 정도 더 늘어난다.
정부는 이들 기업이 해외에서 세금을 더 내는 만큼 국내 법인세를 공제해주기로 했다. 김태정 기재부 신국제조세규범 과장은 통화에서 “이중과세 해소를 위해 시행 중인 외국납부세액공제 제도에 필라1 적용 기업도 대상이 되도록 법령 정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국내에 세금을 물게 되는 해외 다국적기업은 구글 등 80여개로 추산된다. 특히 넷플릭스 등 그간 조세회피 논란이 있던 기업들이 매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 과세권 확보가 용이해질 수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한국에서 매출 4154억원을 내고 법인세는 21억원을 납부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아 800억원을 추가로 징수받았다.
필라2는 정부 입장에선 세수 플러스 요인이지만 해외에 진출한 기업 입장에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저세율 국가에 진출해서 그간 낮은 법인세 혜택을 받은 국내 기업들이 15% 미달하는 추가 세금을 한국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OECD가 발표한 국가별 명목 법인세율 기준을 보면 최저한세율이 15%가 안 되는 나라는 스위스, 버진아일랜드 등 22개국이다. 법무법인 율촌이 합의문 기준(매출 1조원 초과, 해운업 제외)으로 필라2 대상 국내 기업을 산출한 결과, 저세율국 22개 나라에 진출한 한국 법인은 총 81개고, 이 기업은 이들 국가에 연결 종속 법인 총 150여개를 두고 있었다. 최소 81개 기업은 필라2 대상이 확실시된다는 얘기다. 현시점에선 매출이 1조원에 다소 못 미치는 60여개 법인과 헝가리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진출 예정인 기업들을 합치면 더 많은 기업들이 필라2 시행 시점인 2023년에는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밖에 명목세율은 15% 이상이지만 각종 조세 혜택으로 실효세율이 낮은 베트남도 사정권에 들어올 수 있다. 베트남은 낙후 지역 투자나 첨단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에 우대세율 10%를 적용하고 있다. 이동훈 법무법인 율촌 미국회계사는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 토론회에서 “매출 1조원 초과 기업 중 베트남에 진출하지 않은 한국 기업을 세는 게 빠를 만큼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이 많다. 이 중 다양한 세금 인센티브를 받아 실효 세율이 15%에 훨씬 미달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필라2가 도입되면 실효 세율이 나라마다 비슷해지고 법인세 인하 경쟁도 감소한다. 세금 이유가 절대적 요인이 되어 해외에 진출했던 기업들은 제도 시행 전까지 전략을 조정하는 내부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