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향포럼

“화합의 길로 국제사회 되돌리는 일, 지도자 세대교체 돼야 가능”

2024.06.12 20:06 입력 2024.06.12 20:11 수정

극단 치닫는 국제정세, 돌파구는 없나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이 지난달 15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 교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이징|이창준 기자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이 지난달 15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 교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이징|이창준 기자

냉전 시기에 나고 자란 정치 지도자들이 더 이상 집권하지 않아야 변화 가능

향후 10년 탈세계화·인권 억압 심화되고 국지적 군사분쟁 빈발할 것

독도·남북 군사분계선 충돌 배제 못해…‘정책 방향 바꾸라’는 사회적 요구 더 거세져야

“앞으로 10년 동안 탈세계화는 더 심해지고, 인권은 더 억압되며, 전제 지도자는 더 많이 나타날 겁니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72)은 단호했다. 국제사회가 냉전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유지해온 평화의 질서는 20년 남짓에 그쳤을 뿐이다. 질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파괴되기 시작했고, 2030년대 중반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옌 원장의 진단이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갈등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옌 원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이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부상하는 양상을 이미 1990년대 ‘중국굴기’라는 용어로 예견했다. 2014년에는 10년 뒤 세계가 미·중 양극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그를 세계 100대 지식인으로 선정했다.

향후 10년 국제정세는 옌 원장에게 비관적이다. 탈세계화 추세가 멈추고 국제사회가 화합의 길로 돌아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가 간 분열과 갈등은 계속되고 나아가 국지적인 군사분쟁까지 빈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반도 역시 군사분쟁의 예상 진원지 중 한 곳이다. 옌 원장은 “전면전으로까진 발전하지 않겠지만 독도와 남북 군사분계선에서의 군사충돌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뿐 아니라 일본도 군사분쟁 대상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국제정세, 돌파구는 없을까. 옌 원장은 젊은 지도자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 정책에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옌 원장은 “냉전을 경험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국가 지도자가 된다면 (갈등의 국제정세는) 바뀔 수 있다”며 “강대국의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일반 시민의 요구도 거세져야 한다”고 말했다. 옌 원장은 오는 26일 <2024 경향포럼>에서 ‘거세지는 글로벌 긴장’을 주제로 강연한다. 지난달 15일 베이징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에서 옌 원장을 만났다.

- 현 국제정세를 평가해달라.

“냉전 이후 이어졌던 자유주의 질서가 최근 탈세계화로 변하고 있다. 지금의 탈세계화 흐름은 주요 강대국들이 세계화 정책을 폐기하고, 상호 경제협력을 축소하고 제재를 가하며 보호무역을 채택하고, 정치적으로는 인권보다 주권을 중시하는 규범을 취한 결과물이다.”

- 탈세계화의 결정적 계기는.

“최초의 사건은 2016년 결정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고 봐야 한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후 서방의 러시아 제재, 2023년 발발한 가자 전쟁도 탈세계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다. 탈세계화가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선에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4년 만에 재집권을 노린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스트롱맨’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원인은.

“경제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중산층이나 서민이 기존 자유주의 엘리트에게 가지는 불만이 커졌고, 포퓰리즘 정치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 최근 거세지는 미·중 갈등은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자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이 제동을 건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갈등을 피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미국만큼 강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을 피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1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의 국력 차는 아직 굉장히 크다. 10년 안에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언제쯤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 과거와 비교해 중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나.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세계 다른 주요 강대국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쇠퇴하는 양상인데, 중국 역시 포퓰리즘 정치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 사회에서는 최근 국제협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수도 점점 줄고 있다.”

- 중국이 성장뿐 아니라 분배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중국이 세계 전방위에서 리더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미국보다 무조건 적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의도적으로 국제질서를 파괴한다면 중국도 막아낼 도리가 없다.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미국에 이어 2위이고, 성장동력이 강한 나라인데.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를 줄였을 뿐이다. 양국의 격차는 경제 외에 여러 방면에서 나타난다. 고등교육 측면에서도 큰 격차가 있다. 단순히 경제 규모만 봐서는 안 된다. 사회의 여러 모습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 중국과 미국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전쟁 중인데, 무력을 동원해 직접 맞붙는 전쟁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미·중 간 전면전이 벌어질 일은 없다. 핵보유국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전쟁하면 전 인류가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전(분쟁 당사국이 직접 나서지 않고 동맹국 등이 대신 싸우는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미 대만 문제를 두고는 전쟁을 피하자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전쟁이 발발할 우려는.

“트럼프는 전쟁을 싫어하는 인물이다. 집권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그는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동맹국을 위해 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트럼프는 그간 동맹국의 안전을 보장하느라 미국이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이 전면전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 11월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한다면.

“지금 상황을 보면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높다. 왜냐하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자 전쟁 이후에도 트럼프를 계속 지지하겠지만, 조 바이든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바이든이 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에 선다는 이유로 지지를 철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갑자기 트럼프를 뽑진 않을지라도 바이든이 얻는 표는 줄어들 것이다.”

- 중국과 대만, 한국과 북한은 대치 중이고 일본도 주변에서 크고 작은 군사분쟁을 벌이고 있다.

“1991년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분쟁은 있었지만 전쟁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향후 10년 안에도 소규모 군사충돌이 있을지는 몰라도 전쟁으로 발전하진 않을 것이다.”

- 소규모 군사충돌이 가장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어디든 다 가능하다. 한국의 독도, 중국의 댜오위다오, 한반도 군사분계선 등에서의 소규모 군사충돌 발생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전쟁까지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 향후 10년간 국제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

“탈세계화는 더 심해지고 국제규범을 어기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 더 많아지고 전제 지도자는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 지도자의 철학이나 성품이 국제질서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보나.

“일단 좋은 성품을 가진 최고지도자가 당분간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포퓰리즘을 이용해 자국의 실패를 외국의 탓으로 돌리는 지도자가 더 많아질 것이다. 변화를 바란다면 두 가지 요인이 선행돼야 한다. 하나는 먼저 강대국의 정책이 곳곳에서 벽에 부딪혀야 한다.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져야 한다. 다른 하나는 냉전 시기에 태어나고 자란 정치 지도자들이 더 이상 집권하지 않아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세대의 젊은 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강대국의 지도자로 집권한다면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그들만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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