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대행사에 정보 공유 허용… 고객정보 유출 방지대책 역행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천송이 코트’ 지시와 금융당국의 ‘헛발질’엔 박근혜 정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무부처가 제대로 된 보고만 했다면 대통령의 황당한 지침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불통 대통령과 복지부동 공무원
28일 경향신문 확인 결과 ‘천송이 코트’는 예전부터도 중국 소비자들이 손쉽게 살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은 금융당국 실무자들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당국 수장들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날 “박 대통령에게 왜 아무도 사실관계를 보고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말을 못 꺼내는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당국자들은 “박 대통령에게 ‘그건 잘못된 말씀’이라고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새로 임명된 장관들이 청와대에 대면보고를 요청한 사실이 시사하듯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부처 수장들의 ‘제 몸 챙기기’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무부서인 금융위·금감원의 소극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공인인증서 존폐 논란 등은 3월 전부터 불거졌던 이슈인 만큼 이 기회에 대통령 지시에 따르는 모양새만 취하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 4개월 ‘쇼’… 보안책은 뒷걸음
엉뚱한 지시는 결국 황당한 정책으로 이어졌다. 금융위는 이날 미래창조과학부와 공동 브리핑을 열어 공인인증서 및 액티브X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전자상거래 결제 간편화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위는 결제대행업체에 카드 고객정보 공유를 허용하겠다는 방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앞으로 카드사에서 관리하던 신용카드 핵심 고객정보를 결제대행업체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박 대통령이 지난 24일 중국의 ‘알리페이’ 등에 맞설 수 있는 국내 간편결제 시스템을 만들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카드사에서만 관리되던 핵심 고객정보를 외부로 옮기겠다는 것은 올 초 1억건이 넘는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 후 형성된 보안 강화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금융위 발표는 결제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는 당연히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도 “외부 업체가 카드 고객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보안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국내 결제대행업체는 알리페이 등 초대형 업체와 달리 규모와 역량 면에서 취약해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현실과 맞지 않는 대책이 잇따라 나와 답답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