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정부, 국민의 식품안전보다 교역기준·과학적 입증 중시

2012.05.08 03:00 입력 2012.05.08 03:39 수정
김다슬 기자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의 위생·검역 협정에서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라는 캐나다와 유럽연합(EU)의 압력을 물리쳤다. 협상 대표는 “교역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광우병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높아 수입 허용이 곤란하다”고 대응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이와 다르다. 2008년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 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2012년 미국에 광우병이 실제로 발생하자 ‘과학적 입증’ ‘국제 기준’ 등을 들어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검역 중단마저 하지않고 있다. 출범 직후부터 마지막 해까지 현 정부를 얽어맨 미국산 쇠고기 정국은 대미 굴욕외교가 만들어낸 자충수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황식 총리(오른쪽),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왼쪽)등과 미국산 광우병 소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황식 총리(오른쪽),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왼쪽)등과 미국산 광우병 소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2006년 1월30일부터 2월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위생·검역(SPS)위원회’ 제34차 정례회의가 열렸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의 회의 참석자들이 제출한 출장복명서(출장결과 보고서)를 보면 이 회의에서 열린 EU와의 양자협의 중 EU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과 최혜국대우(MFN) 원칙에 따라 EU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라”고 요구해왔다. EU가 쇠고기 수입 허용을 요구한 근거는 ‘광우병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는 자유로운 교역을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한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이다. 또 2003년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을 금지했던 미국의 2006년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 수입재개 선언’도 앞세웠다. 같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인 유럽산도 수입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유럽 광우병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수입 허용을 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곤란하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대응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6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36차 WTO/SPS위원회 정례회의에서는 캐나다가 쇠고기 수입 압력을 행사했다. 캐나다는 양자협의의 모두발언부터 “쇠고기의 교역 재개 문제는 최대의 관심사항”임을 강조하며 “금년도(2006년) 2건의 광우병 발생을 이유로 (한국 측이) 평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어 이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캐나다가 이를 강하게 주장했던 근거도 EU와 마찬가지로,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쇠고기건은 교역 이슈가 아니라 식품안전에 관한 이슈”라며 “한국 소비자들은 특히 광우병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년도 발생 2건은 사료금지조치 이후 출생한 소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캐나다의 예방조치가 효과적으로 시행되는지 의문시된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는 같은 해 3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WTO/SPS 위원회 35차 정례회의에서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한국 측의 위험평가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데 불만을 표명하면서 “국제기구로부터 인정받은 지역인 경우 추가정보가 없더라도 수입 허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 측은 “제출받은 자료가 미흡하고, 설령 국제기구에서 인증했더라도 독자적인 위험평가를 실시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맞섰다.

[단독]MB정부, 국민의 식품안전보다 교역기준·과학적 입증 중시

쇠고기 개방 압력에 대해 국제기준보다는 식품안전이 우선임을 강조했던 한국 정부는 그러나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대응방식이 달라졌다. 2008년, 미국과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수입키로 하는 등 검역주권 포기 비판까지 낳은 수입위생조건 협상을 체결했다. 특히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때에도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변경을 인정할 경우’에만 수입을 중단한다고 정했다. 국민적 반발이 일자 재협상을 통해 ‘수입 중단’을 부칙에 명문화했지만 이 역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0조 및 WTO/SPS 협정을 전제조건으로 걸었다. 자국의 검역 문제를 국제기구나 협정에 얽매이도록 만든 것이다.

반면 1998·2006년 한국 정부가 미국과 맺은 수입위생조건에는 ‘광우병 발생 시 수입 금지’가 조건 없이 명문화돼있다. 지금도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맺은 수입위생조건은 검역 중단 혹은 수입 중단이 명시돼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정부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 수입 중단을 할 경우 미국으로부터 국제기구에 제소당할 우려가 있고, 과학적으로 현재 발생 광우병은 비정형 광우병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일 열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수입 중단은) 요건에 안 맞고, (쇠고기에) 문제가 없는데, 왜 그 짓(수입 중단)을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과거와 달리 현 정부에서는 국민 식품안전 문제보다 교역 기준, 과학적 입증 문제가 더 우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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