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2012.05.09 22:27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터지면 돌이킬 수 없다… ‘사전예방’만이 최선

건강과 환경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전예방’이다.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미리 예방하는 것이 낫다’는 원칙이다. 의사들은 질병이 의심되면 ‘가능성은 적지만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흔히 한다.

특히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면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미리 예방조치를 취하라는 것”이 사전예방 원칙 중 첫 번째이다. 바로 광우병이 사전예방 원칙을 지켜야 할 대표적 경우다. 필자의 주장이 아니다. 유럽환경청(EEA)이 발간한 ‘조기경고에 대한 늦은 교훈: 사전예방의 원칙’이라는 고전적 보고서는 사전예방 원칙을 지키지 못해 초래된 재앙적 결과로 광우병을 대표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국의 예에서 보듯이 처음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예방조치만 취했더라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지금까지 영국이 자국 내 전혈 수혈을 금지하고, 편도선 수술에 1회용 도구를 써야 하는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광우병 릴레이 기고](7)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따라서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아니다.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사전예방 원칙을 적용해 위험을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사전예방의 두 번째 원칙, 즉 그 입증책임은 잠재적 피해자인 한국 국민이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인 미국에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안전성 입증을 요구해야 할 한국 정부가 오히려 미국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사단만 보아도 그렇다. 미국 정부의 주장을 반복하려면 왜 미국에 갔는지 의심된다.

미국의 4번째 광우병 소 발견은 미국 광우병 방역체계가 안전성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광우병 검사 문제다. 처음 동물사료(렌더링) 공장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을 때 공장 측은 무작위 검사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우병 소의 농장 주인은 주저앉는 증상을 보여 안락사를 시킨 다우너 소라고 밝혔다. 광우병 증상을 보이거나 고위험군 소 모두를 검사하는 캐나다나 유럽에 비해 미국은 다우너 소도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0.1%만 검사하는 탓이다. 한국 조사단이 미국 광우병 예찰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근거가 없다.

둘째, 미국은 여전히 소 사체를 사료로 쓴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사단은 문제의 렌더링 공장의 소 사체는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렌더링 공장의 홈페이지에는 육골분이 닭이나 애완동물의 사료와 비료의 원료로 쓰인다고 밝히고 있다. 소가 닭사료로 쓰이고 그 닭을 다시 소가 먹는다. 소가 소를 먹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광우병은 L타입 비정형인데 사료와 무관하다고 완전히 밝혀진 것도 아니다. 또 사료가 원인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위험하다. 전염성이 존재하는 이상, 미국처럼 소가 소를 먹는 상황에서는 비정형 광우병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셋째, 미국의 이력추적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이 밝혀졌다. 5월2일자 미 농무부 식품검역국 보고를 보면 광우병 소 새끼들은 두 마리만 행방이 밝혀졌고 나머지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같이 자란 소들의 행방도 모른다.

결국 이번 4번째 광우병 소의 발견에서 밝혀진 것은 미국의 광우병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일개 농장주에게 만나달라고 사정하고 미국 정부의 안전성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수입중단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무엇이 아쉬워 근거도 없는 조사권한을 한국 정부에 주겠는가?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는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고 특정위험물질을 유럽이나 일본 기준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협상을 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유일한 변명으로 내세우고 있는 30개월 미만 수입이라는 조건도 이명박 정부의 작품이 아니다. 수많은 촛불시민들이 구속과 수배, 벌금을 무릅쓰고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 아직도 촛불시위를 ‘촛불난동’이라 부르며, 촛불시민들에게 반성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보수언론과 정부의 정신분열증적 작태도 중단되어야 한다. 문제는 단순하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 국민건강 보호의 대원칙인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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