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장소·쟁점도 ‘깜깜이’…혈세 5조원 걸렸는데 ‘밀실 재판’

2015.05.14 22:07 입력 2015.05.14 22:08 수정

정부 “비밀유지 의무” 증인 출석 여부도 공개 안 해

국제판결 ‘단심·구속적’… 검증없이 세금 물어줄 판

국민 세금 5조여원이 걸린 론스타-한국 정부의 투자자-국가소송(ISD)은 ‘깜깜이’ 재판이다. 15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소송을 맡고 있는 정부 측 금융위·법무부 관계자들은 정확한 소송 쟁점 등 소송 관련 일체를 “비밀유지 의무”를 이유로 함구하고 있다. 만일 한국 정부가 패소하거나 화해로 막대한 금액을 물어주게 되더라도 중재 결정문마저 공개되지 않을 상황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14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연 ‘론스타 ISD 쟁점 설명회’에서 노주희 민변 국제통상위원(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14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연 ‘론스타 ISD 쟁점 설명회’에서 노주희 민변 국제통상위원(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것은 두 가지다. 정부는 론스타가 2012년 5월 한국 정부에 국제중재 의향서를 보내왔을 때 이 사실을 보도자료 형태로 공개했다. 또 하나는 같은 해 8월 론스타가 기업뉴스 통신사인 ‘비즈니스 와이어’를 통해 직접 공개한 중재의향서다.

소송 청구액수조차 최근 국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가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론스타는 2차 서면을 통해 1차 서면에서 청구한 43억7860만달러에 환율 계산 오류가 있었다며 46억7900만달러로 올려 청구했다. 약 5조1328억원이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증인으로 신청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누가 언제 출석하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가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 규정상 양측이 비밀유지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월 중재재판부는 미국 기업 론파인 리소스 주식회사와 캐나다 정부 간 중재사건에 대해 내린 비밀유지 명령에서 ‘캐나다 정보공개법상 공개 예외인 정보, 기업의 영업비밀’에만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고 한정했다. 재판부의 직권 결정이든, 합의에 따른 결과든 적어도 한쪽의 이의제기가 있었다면 최소한의 투명성 보장은 가능했다는 얘기다. 즉 한국 정부가 국내 정보공개법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채 모든 비밀유지에 합의해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재결정문도 공개되지 않는다면 소송결과에 대해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정부가 제대로 대응했는지 검증없이 수조원의 세금을 물어주게 될 상황이다. ICSID 협정에 따르면 국제중재판정은 단심제로 운영된다. 중재판정의 적정성을 가리는 자국 법원의 집행 판결도 받아볼 수 없다.

한국 정부의 ‘ISD 밀실주의’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제석유투자회사의 네덜란드계 자회사 하노칼, 이란계 가전회사 엔텍합이 각각 지난해 10월,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 등을 수신자로 중재의향서를 보내왔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타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는 중재신청서, 중재판정부의 심리 의사록·속기록을 공개하도록 한 한·미 FTA의 투명성 조항조차 들어 있지 않다.

[론스타·한국 ‘국가소송’ 시작]시간·장소·쟁점도 ‘깜깜이’…혈세 5조원 걸렸는데 ‘밀실 재판’

▲ 투자자-국가소송(ISD)

해외투자자가 투자 대상국의 불합리한 법령이나 정책으로 피해를 봤을 때 국제중재기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벨기에 투자협정을 근거로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과 차별적 과세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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