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모듈원전은 탄소중립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021.06.19 16:17 입력 2021.06.19 18:54 수정

소형 모듈 원전(SMR)은 출력 조절이 유연하고, 응용범위가 넓어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 확보에서 어려움이 예상되고, 핵폐기물과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지구인은 연간 51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기후재앙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 빌 게이츠가 지난 2월 출간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제시한 한 해법은 소형 모듈 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이다. SMR은 300㎿ 이하로 원전을 소형화하고, 원전을 구성하는 여러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해 모듈로 제작한 원자로를 말한다.

빌 게이츠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면, 석탄을 가스로 대체하는 데 시간과 돈을 들이기보다 태양광·풍력·SMR 등 싼값에 제로 탄소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 출간 후 국내에서도 SMR에 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SMR이 산악지대가 많고 송배전망이 부족한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할 유용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SMR은 주요 배관이 기존 원전처럼 외부로 나오지 않아 냉각제 배관 파손으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에서 비교적 안전하다. 원자로가 지하 수조 등 밀폐된 곳에 들어 있어 가동 정지돼도 장기간 자연적으로 물이 순환하면서 냉각돼 안전 조치를 취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모듈 방식으로 공장에서 제작해 현지에 바로 설치할 수 있어 건설기간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장점은 구현하려는 목표일 뿐 아직 현실화된 것은 아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미국의 뉴스케일파워는 2025년 SMR 착공을 목표로, 내년 설계 심사 완료를 앞두고 있다. 뉴스케일파워의 SMR 건설에는 두산중공업이 참여한다. 한국의 경우 늦어도 2029년 한국형 SMR의 설계완성, 인허가를 계획하고 있다. SMR이 내세우는 장점이 현실성이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검증해야 한다.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77㎿로 발전용량을 키운 SMR의 설계 심사를 내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신청할 계획이다. 사진은 뉴스케일파워의 소형 모듈 원자로(SMR) 원전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제공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77㎿로 발전용량을 키운 SMR의 설계 심사를 내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신청할 계획이다. 사진은 뉴스케일파워의 소형 모듈 원자로(SMR) 원전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제공

“SMR의 유연성, 넓은 응용범위가 장점”
미국 자산운용사 라자드의 분석에 따르면 2009~2017년 사이 생산 전력당 평균 발전 비용은 풍력이 67%, 태양광은 86% 감소했다. 반면 핵발전은 20% 증가했다. 재생에너지 투자가 늘고, 비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원전의 경제성은 악화됐다. 국제에너지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시점에서 원자력의 균등화 발전단가(설치비, 연료비, 폐쇄 비용 등 발전 전 과정에 걸친 비용을 발전량으로 나눠 계산)는 수명 연장을 통한 장기 운영을 제외하면 태양광·육상 풍력과 거의 비슷하거나 높은 것으로 나온다. 글로벌 평균으로 국가별 편차가 크지만, 이 지표는 경제성만으로 원전을 택할 때는 지났음을 보여준다. SMR 역시 모듈화, 대량 설치, 자율·자동 운영 기술로 단가를 대형원전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목표라 경제성 면에서 기존 원전에 비해 뚜렷한 장점은 없다. 다만 SMR을 연구하는 학계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유연성과 발전 외에 교통, 산업의 탈탄소화에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응용범위, 안전성 강화를 장점으로 보고 있다.

이정익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SMR이 재생에너지와 보완 관계임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 문제를 에너지 저장기술(ESS)이나 가스터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면서 “소형원전으로 가스터빈을 대체해 탄소중립에 기여하자는 것이 SMR 개발에 나선 첫 번째 이유”라고 말했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 연구소장도 SMR이 출력 조정이 훨씬 유연하도록 설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 원전이 기저부하를 담당한다면 SMR은 첨두부하(일정 기간 가장 높은 부하를 의미)를 담당해 전력 시장에서 재생에너지의 출력이 들쭉날쭉할 때 이를 메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많은 나라가 가스발전처럼 첨두부하 시 출력을 조정하는 전기에 높은 가치를 매기는데 SMR이 이를 담당하도록 설계하면 생산단가가 대형원전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훨씬 높은 가격에 전기를 팔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순전히 생산원가의 관점에서 대형원전 수준까지 가는 게 목표다. 그 정도 수준이면 SMR은 유연한 출력조정과 초기 투자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수월성을 포함해 훨씬 환영받을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SMR은 전력 수요에 따라 일부만 가동할 수 있고, 전력 생산에 쓰지 않는 모듈은 지역난방이나 산업단지에 열원을 제공하거나 수소 생산을 위한 고온전기분해, 해수담수화에 쓸 수 있다. 최근에는 소형 모듈 원자로를 탄소배출 규제가 심해지는 해상운송에 사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들이 탄소중립 선박 개발에 나서면서 원자력연구원 등과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삼성중공업은 용융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용융염원자로를 이용한 원자력 추진선 공동 연구개발에 나선다. 이정익 교수는 “교통과 열 공급은 발전만큼 탄소를 배출하는 분야인데 교통 분야에서도 탈탄소가 가장 어려운 곳이 해운 산업이다”면서 “전 세계 무역량의 90% 이상이 해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해상 물동량을 탄소중립할 방안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검증된 탄소중립적 추진 기술은 원자력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단지에 공정열을 제공하는 건 재생에너지로 대체가 어려워 이 분야에도 소형 원자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원자력기구(IAEA)가 집계한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가별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 현황. 한국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스마트’와 울산과학기술원 황일순 석좌교수 주도로 개발하는 ‘마이크로우라노스’ 등 두 종류의 SMR이 있다.

세계원자력기구(IAEA)가 집계한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가별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 현황. 한국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스마트’와 울산과학기술원 황일순 석좌교수 주도로 개발하는 ‘마이크로우라노스’ 등 두 종류의 SMR이 있다.

“글로벌 시장 확대 대비해 기술 개발 필요”
원전에 반대하는 이들은 SMR 역시 핵폐기물 문제와 사고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SMR이 20년 가까이 연구됐지만, 경제성이 없어 실현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SMR 투자로 재생에너지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영국 서섹스대학 연구진이 2020년 <자연에너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생산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핵발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며, 함께 결합할 경우 두 기술이 서로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것만이 아니라 핵폐기물을 비롯한 다른 환경 문제와 사회적 수용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지금까지 대형화로 발전량을 키워 경제성을 추구했으면서 소형화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 모순된다”면서 “경제성도 문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주민 수용성인데 1000㎿ 하나를 지어도 난리가 나는 상황에서 100㎿로 10개를 짓는게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위 위원장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가 정말 고민된다면 ESS나 인접 국가와의 송전선로 연결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40%를 넘은 유럽은 재생에너지만으로도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태양광과 풍력을 다양한 지역에 설치하면 한 지역에서 끊기더라도 전국적인 규모에선 변동이 적다는 점에서 간헐성 문제가 과장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SMR은 모듈 안에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재펌프 등 주요 기기가 일체화 된다. 설비 압축으로 검사와 관리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병섭 소장은 “캐나다 등 해외에서 SMR을 개발하는 이유는 땅이 넓어 전선을 깔기 힘들기 때문에 도시 주변에 소형 원전을 설치해 해결하려는 것”이라면서 “SMR은 소형이라 기존 원전에 비해 안전성은 높겠지만 원자로 바깥의 안전계통에서의 안전까지 준비했는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채영 소장은 “대부분 1960~70년대 개발된 대형원전과 비교해 우려하지만 그때 자동차와 요즘 자동차가 다르듯 SMR에도 여러 다양한 혁신기술이 들어간다. 공간이 협소하고 한군데 몰려서 정비가 기존 대형원전보다 난이도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원론적으로 맞지만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설계되는 SMR은 거의 피동형 안전계통을 택하고 있다. 정전 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강제순환형 냉각시스템이 아니라 외부 전원이 없어도 자연순환형 냉각이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임 소장은 “냉각 펌프가 없는 상황에서도 원자로 안쪽에 물탱크가 있어 특수 상황이 되면 중력으로 저절로 물이 떨어져 들어간다. 데워진 물은 대류 현상으로 저절로 위로 가고 차가운 물이 밑으로 가는 순환을 만들 수 있다. 피동형 안전계통이 훨씬 안전성에서 신뢰도가 높은데 이를 구현하기에 대형보다 소형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SMR인 ‘스마트(SMART)’와 대형원전의 비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SMR인 ‘스마트(SMART)’와 대형원전의 비교. 한국원자력연구원

설계상 안전성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아직 원전에 대한 의구심이 걷힌 것은 아니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들이 SMR 개발에 뛰어든 속에서도 유럽연합은 아직 원자력에 거리를 두고 있다. 핵발전을 ‘그린 투자’ 목록에 집어넣을지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유럽연합은 올해 4월 지속가능한 금융 목록(EU taxonomy)을 발표했지만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친환경 발전원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일어 올해 말로 결정을 보류했다. 이 목록의 그린 투자 목록에 들어가야 향후 유럽 내 각종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펀드로부터 자금 조달이 유리해진다.

논란이 있지만 SMR 기술 경쟁이 시작된 만큼 정부도 손 놓고 있을 순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12년 소형원전으로는 세계 최초로 설계 인가를 받은 스마트(SMART) 원자로 개발을 완료했지만 실증하진 못했다. 올해 새롭게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한국형 SMR(i-SMR) 개발에 나선다. 정부는 8년간 4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 9월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을 위해 민간위원들이 사업기획위원회를 꾸려 연구하는 중이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SMR은 모듈당 170㎿로, 모듈 4개를 붙여 680㎿를 구현하는 것이다. 정부는 개념상 SMR은 모듈당 용량이 작아서 사고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주민을 소개하고 토지를 수용하는 비상구역의 범위도 기존 대형원전이 3~5㎞인데 반해 SMR은 원전 부지 경계를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일단 정부는 SMR의 국내 설치보다 수출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분산형 전원이라 전력망이 갖춰지지 않은 벽오지에도 설치할 수 있지만 국내 설치는 주민의 수용성을 고려해서 먼저 원자력 안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회적 논의를 거친 후라면 가능하겠지만 아직 국내에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SMR 연구가 정부의 탈원전 흐름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헌석 위원장은 “자국에 설치하지 않는 원자로를 수입할 나라는 없다”면서 “국내에서 탈원전을 말하면서 해외에 수출한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말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2030년대쯤 글로벌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미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을 기술력을 확보하자는 차원”이라면서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우리나라 국토 넓이에 비해 원전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 추가로 대형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것이지 원자력 연구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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