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편법지원 가능성

2002.10.01 18:25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당좌대출금 4천억원 가운데 반기 보고서에 누락된 3천억원이 대북(對北) 지원용이 아니라 ‘현대건설 살리기’에 쓰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1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00년 6월말 현재의 반기 보고서에 4천억원 가운데 1천억원만 기표돼 누락된 것으로 지목된 3천억원은 당시 ‘현대위기설’로 자금난이 극에 달했던 현대건설 등의 지원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반기 보고서에는 현대상선이 산은에서 4천억원을 대출받은 이튿날인 6월8일부터 8월11일까지 모두 9회에 걸쳐 현대건설의 기업어음(CP) 3천억원어치를 매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공교롭게도 반기 보고서에 기재되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는 ‘3천억원’과 액수만큼은 일치하는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돈에 꼬리표가 붙은 것이 아니어서 CP 매입으로 현대건설을 지원한 3천억원이 산은 대출금인지, 아니면 현대상선이 갖고 있던 다른 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출 직후 4천억원이 모두 인출됐다’는 산은의 확인을 고려하면 산은 대출금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석이 맞을 경우 ‘선박 용선료 등으로 4천8백억원을 썼다’던 현대상선의 종전 공식해명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현대의 다른 관계자는 “대출 후 곧바로 인출해 3천억원을 현대건설 등의 지원에 썼으면서도 반기 보고서에 이를 적지 않은 것은 사실대로 기재할 경우 부당내부거래 등 변칙 지원이 드러나 문제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 당시 ‘현대위기설’로 현대 계열사들이 자금난에 빠지자 정부가 대북사업을 전담하던 ‘현대 살리기’에 나섰고 이때 현대건설보다 부채비율이 낮아 지원시비가 덜할 현대상선을 ‘지원창구’로 활용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회계전문가는 “반기 보고서는 법적 구속성이 없는 보고서여서 먼저 3천억원을 기재하지 않고 계열사에 지원한 뒤 자금난이 풀린 9월부터 상환하면서 연말의 결산보고서에 정식 기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종남(李種南) 감사원장은 1일 대북 비밀자금 제공논란과 관련, 산업은행의 현대그룹 계열사 대출문제에 대해 오는 14일부터 감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원장은 이날 국회 법사위의 감사원 국감에서 “당초 오는 11월 산업은행에 대한 일반감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최대한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5일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의원에 의해 제기된 후 연일 증폭됐던 대북 비밀자금 제공의혹은 감사원의 사실상 특별감사에 의해 밝혀질 전망이다.

〈최효찬·김준기·이용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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