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강 사업’ 르포

주민들 “자연하천 섬진강 뿌듯… 훼손 땐 재첩잡이 망칠라”

2015.06.01 22:39 입력 2015.06.01 23:00 수정

전체 친수지구 4배 이상 늘어… 하류지역 대부분 포함

정부, 임실 등 100% 보전지구도 변경…기준없이 구분

지난달 25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에서 섬진강 너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바라봤다. 햇빛 따라 반짝이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하얀 모래톱은 별 차이 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두 곳의 모래톱은 이제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5대강 개발 계획에 악양면 평사리 쪽은 친수지구로, 다압면 고사리 쪽은 지금처럼 보전지구로 나뉘어 선이 그어진 것이다.

지난달 25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 쪽에서 섬진강 너머로 바라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전경. 섬진강 양쪽에 자리한 모래톱이지만, 국토교통부의 5대강 지구지정 계획상 다압면 고사리 쪽은 그대로 보전지구로 남고 악양면 평사리 쪽은 친수지구로 지정됐다. | 김기범 기자

지난달 25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 쪽에서 섬진강 너머로 바라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전경. 섬진강 양쪽에 자리한 모래톱이지만, 국토교통부의 5대강 지구지정 계획상 다압면 고사리 쪽은 그대로 보전지구로 남고 악양면 평사리 쪽은 친수지구로 지정됐다. |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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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우안인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발해 좌안인 하동군 금성면까지 하루 종일 천변을 둘러봤다. 동행한 광양참여연대 박주식 대표는 “섬진강 주변 사람들은 어딜 가나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며 “섬진강 자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4대강 사업 때 섬진강에 보를 만들지 않았어도 자전거도로가 생겨 자연경관이 훼손됐다”며 “그래도 다른 큰 강보다는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뿌듯해하는 섬진강은 그러나 유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미경 의원이 공개한 국토부의 5대강 개발 계획상 섬진강 친수지구 변화 현황을 보면, 현재 1.44%인 친수지구는 6.32%로 4배 이상 늘어난다. 지형상 개발이 쉽지 않고 수요도 낮은 상류(정읍·남원·임실·순창·곡성)의 친수지구는 1.06%에서 2.59%로 2배가량 늘어나지만, 하류(순천·광양·구례·하동) 지역은 2.55%에서 16.95%로 6.6배나 넓어진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국토부 용역으로 작성한 ‘국가하천 하천구역 지구지정 기준 및 이용보전계획 수립’ 보고서를 보면, 전북 임실과 정읍은 100% 보전지구였다가 친수지구를 66%대로 늘리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섬진강 하류인 하동군 금성면의 친수지구는 0%에서 33.61%로, 광양시 진월면은 0%에서 54.17%로, 하동군 악양·고전면은 0%에서 70%대로 급증한다. 국토부의 하천 지구지정 변경안에 따라 늘어나는 근린친수지구에는 체육시설·산책로 등을, 친수거점지구에는 상업·숙박·레저 등 다양한 시설을 짓는 것이 가능해진다.

당장 환경단체들은 국토부가 지자체들의 개발 욕구를 수용하면서 5대강 천변의 난개발을 조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을 그대로 두기보다는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지자체의 계획이 국토부 계획에 투영되고, 아무런 기준도 없이 지구지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압면 고사리 천변의 모래톱과 악양면 평사리 모래톱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고사리 쪽은 보전지구로, 평사리 쪽은 친수지구로 지정돼 있다. 환경단체들은 엇갈리는 지구지정도 문제지만, 평사리 쪽을 보전지구로 지정하는 게 더 옳다는 목소리도 내놓는다. 모래톱 후면으로 작은 공원이 형성돼 있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도 나온 평사리는 관광지로서의 모래톱 보전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이다.

25일 오후 많은 어민들이 재첩을 잡던 하동군 하동읍도 현재 없는 친수지구가 국토부 계획상으로 14.45%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돼 있다. 4대강 사업의 삽날에서 비켜 있던 섬진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하류 지역 어민들의 재첩 채취도 직격탄을 맞을 상황이다. 하동읍 어민들은 “평생 섬진강에 의지하면서 살아왔다”며 “지금이야 지리산·백운산의 깨끗한 물이 그대로 흘러내려오니까 수질이 유지되는데 개발이 진행되면 수질오염을 막을 수 없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광양만녹색연합 박수완 사무국장은 “광양에 제철소가 건설될 때 섬진강 하구를 준설하는 바람에 바닷물 유입량이 늘어나고, 상류에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재첩 어업은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미경 의원은 “국토부가 섬진강 주변 지자체들의 개발 계획을 묵인·방조하는 지구지정을 실현할 경우 섬진강도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다른 강들과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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