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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아니지만 식용 금지는 국민적 합의 필요”…정부의 ‘개고기 궤변’

2019.08.22 21:11 입력 2019.08.22 21:15 수정
서국화 변호사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공동대표

삼복더위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가을이 올 준비를 하나보다. 뜨거웠던 올여름, 여느 해와 다름없이 ‘개식용’ 논란 역시 뜨거웠다. 광화문에서, 대구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개식용을 금지하라’는 대국민 집회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전통이자 문화’라고 주장하는 육견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야 할까?

[기고]“식품 아니지만 식용 금지는 국민적 합의 필요”…정부의 ‘개고기 궤변’

엄밀히 이야기하면 개식용은 ‘불법’이다. 축산물의 위생적 관리를 위해 가축 도살을 ‘허가받은 작업장에서만’ 하도록 정하고 있는 축산물위생관리법 어디에도 ‘개도살’의 작업장에 대해 정하지 않고 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의 규율 대상에 ‘개’가 포함되지 않아 허가받지 않은 작업장에서의 개도살을 동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도살행위’ 자체가 합법은 아니다. 이렇게 도살된 ‘개의 지육’을 판매하는 행위,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보신탕’ 판매 행위 역시 식품위생법 위반임은 자명하다.

식품위생법 제7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에 관한 기준 및 규격을 정해 고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약처장은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을 고시하고 있다. 이른바 ‘식품공전’이다.

식품공전에서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식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제조·수입·가공·사용·조리·저장·소분·운반·보존 또는 진열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식품위생법 제95조 제1호, 제7조 제4항). 그런데 식품공전은 축산물위생관리법이 정하는 가축 이외 동물의 식육 역시 축산물위생관리법이 명시하고 있는 도살 및 해체 방법과 검사기준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나아가 그 성분의 세부규격까지 정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여전히 ‘보신탕’ ‘영양탕’집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음에도 위와 같은 기준과 규격에 대한 식약처의 감독과 단속 및 처벌이 이루어진 예는 내가 아는 한, 단 한 차례도 없다. 오히려 개고기 유통에 관한 식약처의 입장을 묻는 질의에 식약처는 ‘개고기’가 식품공전에서 ‘식품의 원료로 인정되지 않음’을 밝히면서도 ‘개고기의 섭취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임을 양해해달라’고 회신했다.

이미 법률과 그에 따른 고시에 의해 식품의 원료가 아니기 때문에 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도록 법률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를 운운하는 것은 국가기관이 ‘법률 위반을 용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는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현재 ‘개식용’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과연 국민적 합의가 없어서일까? 동물보호단체들이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식용에 찬성하는 국민은 18.5%에 그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지속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국민은 1.2%에 불과하다. 문제는 ‘국민적 합의의 부재’가 아니라 통일성 없는 법률(축산법, 축산물위생관리법 그리고 동물보호법)을 여전히 개정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는 입법부와 명백히 단속과 규제를 위한 근거법률이 존재함에도 ‘사회적 합의’를 핑계 삼아 자신의 직무를 방기해온 관계 행정기관이다.

축산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축산법 개정안, 도살의 법적 근거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음에도 그 통과는 요원하다. 식약처는 식품의 원료가 아닐 뿐 아니라 항생제 성분이 검출되는 개고기의 유통을 단속하고 제재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동물학대의 온상이자 비위생적인 지육의 유통으로 국민 보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개식용 문제를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 국가의 총체적 불법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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