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버려진 아기 고양이의 양부모 되어준 ‘꼭지’…고양이도 배려를 알아요

2019.08.22 21:12 입력 2019.08.22 21:15 수정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길고양이 ‘꼭지’와 ‘도시락(자동차 바퀴 옆)’이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꼭지는 도시락을 자기 새끼처럼 보살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길고양이 ‘꼭지’와 ‘도시락(자동차 바퀴 옆)’이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꼭지는 도시락을 자기 새끼처럼 보살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고양이들의 몸은 고도의 살상무기로 무장되어 있다. 그들의 송곳니는 사냥감의 척수를 절삭하기에 딱 알맞은 모양과 길이로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다. 움직임에 예민한 눈과 항상 날카롭게 다듬어둔 발톱은 빠르게 도망가는 설치류를 잽싸게 낚아챈다. 쓰레기를 먹고라도 어떻게든 생존해 자손을 낳고, 사람들 감각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곳에 은신처를 마련해 살아가는 길고양이들. 이들은 척박한 삶의 조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체득한, ‘생존에 특화된’ 동물로 보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고양이는 원래 그렇게 사는 동물이라며 밥을 줄 이유도, 겨울철 집을 마련해 줄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건 이같은 고양이에 대한 집합적 이해에 근거할 것이다.

2006년쯤부터 연중 길고양이 밥을 내주기 시작했다. 한겨울 너무 혹독한 굶주림의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거나 더운 여름 상한 음식을 면하게 해주자며 나름 세운 원칙에 따라 특정 기간만 밥을 주다 야금야금 상시 급여로 확장됐다. 사실 어떤 길고양이도 내가 내주는 밥에 의지해 살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책임질 방안이 없는 존재가 길고양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길고양이들에게 결코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결심들은 얼마간 지켜지기도 했다. 두 번이나 잡혀갔던 중성화 고양이 꼭지가 갈 곳 없는 어린 고양이를 양자로 들여 보살피거나 성묘들이 동맹을 형성하고, 작은 암컷 고양이를 동네 원로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로부터 보호하는 모습들이 생생히 관찰되기 이전까지는.

2008년, 꼭지가 사는 동네에 어느 날 작은 고등어태비 무늬의 고양이가 나타났다. 작은 녀석이 어찌나 소심한지 차 밑에 놓아둔 사료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 지역은 6㎏이 넘는 중성 거묘 꼭지의 핵심 영역이었다. 꼭지보다 영역 내 서열이 더 높은 녀석은 먼저 중성화 수술을 받고, 자리 잡은 연장자 암컷 삼선이뿐이었다. 어린 녀석은 사료를 한입씩 물고 길 건너 자신의 은신처로 가서 먹고는 몇 번이고 다시 길을 건너왔다. 로드킬이 걱정되었던 나는 작은 비닐에 사료를 넣어 녀석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녀석은 ‘도시락’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뒤 꼭지가 길 건너 도시락의 은신처 부근에서 야옹거리는 모습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친근한 동료를 부르거나 어린 새끼를 부를 때 내는 소리였다. 곧이어 꼭지가 도시락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꼭지는 도시락이 자신의 밥자리에서 밥을 먹도록 허용하는 것은 물론 옆에서 안심하고 놀도록 지켜주기까지 했다. 도시락이 안 보이기라도 하면 꼭지가 여기저기 야옹거리며 겅중겅중 뛰어 찾으러 다니는 모습도 여러 번 관찰됐다.

좋은 양부모를 만난 도시락은 4개월여의 보살핌으로 제법 청소년 고양이 모습으로 변해갔다. 두 녀석이 노는 것을 보시며 동네 몇몇 분들이 “자기 새끼냐”고 물으셨다. 새끼를 낳을 수 없는 고양이이고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다 말씀드리면 모두가 신기하고 귀엽다고 하셨다. 이 대목에서 고양이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고 배려도 할 줄 아는 신사적인 동물이라고 빠트리지 않고 한마디씩 덧붙여 드렸다. 꼭지는 혼자가 아니라 행복해 보였다.

어디 먼 곳으로 영역 이동을 해나간 것인지 아니면 로드킬을 당한 것인지, 또는 갑자기 병이 났던 것인지, 도시락이 갑자기 사라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 녀석이 함께 밥을 먹으러 오거나 놀러 다니는 것을 봐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행복의 시간이 너무 짧아 더 야속했다. 그 예쁜 모습들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 둘 걸 하면서 후회했다. 갑자기 사라진 도시락을 찾기 위해 동네를 수소문할 때 기운 없이 홀로 배회하는 꼭지를 보기도 했다.

[기고]버려진 아기 고양이의 양부모 되어준 ‘꼭지’…고양이도 배려를 알아요

사람들은 동물들도 각자가 개별성과 개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애틋한 동료애, 나아가 약자에 대한 배려 같은 고상한 감정들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 착각한다. 동물들은 그저 본능의 지배를 받는 생존 기계쯤으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명백히 사람과 유사한 감정적 행동이 동물에게서 관찰돼도 이를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적 행동으로 치부한다. 특히 길고양이들에 대해서는 더욱 인색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해충’ 취급, 또는 잘해봐야 관리가 필요한 성가신 존재로 대상화해서 본다.

도시락이 사라진 후 몇 날 며칠 꼭지는 코가 쑥 빠져 있었다. 꼭지를 위해 나는 특식이라도 준비해야 했다. 나처럼 꼭지의 마음에도 빈 곳이 생겼을까.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우리의 마음과는 얼마나 다를까. 홀로 된 꼭지의 삶에 또 다른 행복한 인연이 나타나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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