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원자력 발전 '녹색' 분류했지만…“엄격한 기준에 사실상 원전 규제 더한 것”

2022.02.04 16:33 입력 2022.02.04 17: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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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으로 분류하는 녹색분류체계(Taxonomy·그린 택소노미)를 확정한 가운데 이를 근거로 국내 재계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도 원전을 넣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EU가 제시한 녹색분류체계의 기준을 살펴보면 현재 원전 기술로는 친환경으로 분류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EU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했지만, 사실상 원자력 업계에 규제를 더한 것이라고 봤다.

EU는 지난 2일(현지시간)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해 녹색분류체계 최종안을 발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4일 논평을 내고 EU 집행위원회가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기키로 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원자력 발전을 녹색 에너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지침서’를 발표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에서 제외했다. 산업계에선 정부의 원전 배제 방침으로 인해 신규 원전 건설과 원전 수출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유익환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이번 EU 집행위원회의 최종안은 독일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원자력과 천연가스의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원전이 EU 녹색분류체계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우선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고, 운영 세부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이에 더해 2025년부터 신규 건설되는 원전과 수명 연장을 하는 원전에 대해서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적용하는 경우에만 녹색분류체계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매이리드 맥기네스 EU 금융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기후 중립으로의 힘든 전환을 위해 천연가스와 원자력이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 제시한 것”이라며 “녹색분류에 포함되기 위한 조건을 엄격하게 제시했다”고 말했다.

일단 전세계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한 국가는 핀란드와 스웨덴 뿐이다. 핀란드는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하는데 40년이 걸렸다. 스웨덴 역시 부지 확보에 약 50년을 쓰고, 운영에는 시간이 더 걸려 2030년대에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위한 부지 선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고 저항성 핵연료’ 기준은 원자력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생긴 것이라는 평가다. 기존에는 지르코늄 피복 핵연료를 사용하는데, 이 경우 고온에 노출되면 녹거나 공기에 노출돼 화재·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에서 등에서의 사고가 이런 이유로 났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는 원래의 핵연료에 크롬 계열의 코팅을 적용해서 고온에서도 화재·폭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제너럴 일렉트릭 등의 회사에서 2030년쯤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인 기술이다. 이 때문에 유럽 원자력산업협회(FORATOM)는 성명을 통해 “원자력의 녹색분류체계 포함을 환영한다”면서도 “2025년까지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냈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가 2030년 개발된다고 해도 원전에 적용하기까진 시간이 더 걸린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사고 저항성 핵연료 개발이 끝나더라도, 원자로에 맞는 설계 코드를 갱신하는데 적어도 4~5년이 걸린다. 이에 더해 규제기관에서 허가를 받는데도 또 5년~10년이 걸린다”며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넣으란 건 하지말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도 “핵연료 성분과 피복을 바꾼다는 것은 한두 번의 실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업용으로도 수년 운용을 해봐야 한다”며 “상용화가 언제 될지 모르는 기술을 의무화 시키는 EU 녹색분류체계는 오히려 원자력 업계에 간접적인 규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계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 에너지전환포럼은 “이번 EU의 엄격한 전제조건들을 감안할 때, 단순히 유럽 사례를 근거로 국내 분류체계에도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원자력계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며 “정부도 이미 구축한 녹색분류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해 대내외적인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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