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유공자, 지도층으로 국민 존경 한몸에

2004.03.01 19:09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독 항전에 나선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지금도 정치·사회·문화·종교·예술 등 각 분야에서 지도층으로 활동하며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있다. 친일 경력의 인사는 찾기 쉬워도 항일 경력의 인사를 찾기 힘든 우리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8차례에 걸쳐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1위에 오른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 아베 피에르 신부도 레지스탕스 출신이다. 1938년 서품을 받은 피에르 신부는 1941년부터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했다. 그는 당시 핍박받던 유태인들을 스위스로 피신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됐다 탈출하는 등 죽음의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피에르 신부는 1945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1951년까지 정치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빈민을 위한 공동체인 엠마우스 재단을 설립해 빈민구제 운동에 헌신했다.

언론계·문학계에도 레지스탕스 출신들이 많다. 지난해 1월 타계한 프랑스의 진보적 언론인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지루 여사도 레지스탕스 활동 경력이 있다. 독일군에게 체포, 수감된 경험이 있는 그는 종전 뒤에 사회당 계열의 논객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때인 1974~76년에는 여성문제담당장관을, 1976~77년에는 문화장관을 역임하며 공직에 몸담기도 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적(知的) 거인 사르트르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이듬해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가 1941년 탈출했다. 사르트르는 그 뒤 지식인 저항그룹을 만들어 종전까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유명하다. 독일군 점령하의 1942년 ‘이방인’을 발표, 찬사를 한몸에 받은 그는 1943년부터는 좌파지 ‘콩바’의 편집장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했다. 1945년에는 전시 중에 썼던 4편의 편지 형식 글을 묶어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독일인의 편협한 애국심의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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