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권 얘기하며 지원 꺼리면 모순… 진보가 나서 북에 개선 요구해야”

2012.11.18 22:12 입력 2012.11.19 07:39 수정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2030 탈북자 좌담회

탈북자들은 대체로 보수의 눈으로 북한을 본다. 북한 정권을 증오하고, 붕괴시키는 것이 유일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젊은 탈북자들’은 달랐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부모나 남한 내 보수·진보의 시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견해를 표출했다. 경향신문은 다각도로 북한 인권문제를 조명하는 차원에서 20~30대 초반 탈북자 4명의 좌담을 마련했다.

▲ 삐라 보내기 등 보수 방식, 젊은층엔 오히려 반감
반대 땐 종북, 찬성 땐 애국 ‘북한인권법’ 극단적 시각
남한엔 언론자유 있는데 간첩·종북 검증 받기도

탈북자 박요셉·최장현·동명숙·김영주씨(가명·왼쪽부터)가 지난달 중순 경향신문 좌담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서울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씨와 김씨는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나 친·인척들의 안전을 고려해 얼굴을 가렸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탈북자 박요셉·최장현·동명숙·김영주씨(가명·왼쪽부터)가 지난달 중순 경향신문 좌담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서울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씨와 김씨는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나 친·인척들의 안전을 고려해 얼굴을 가렸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가장 심각한 북한 인권문제는 뭐라고 보나요.

최장현 = 아무래도 생존권 문제예요. 특히 일한 만큼 보상을 못 받는 농촌 사람들의 생존권 문제가 가장 심각해요. 도시 쪽 사람들은 여유시간이 있어서 장사도 하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장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친척집들을 방문해봤는데 물고기를 잡아먹는 어촌이나 국경 쪽으로 갈수록 그래도 좀 나아요. 북한 지원은 도시보다 농촌으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박요셉 = 제 생각엔 자유권 침해가 제일 심각하다고 봅니다. 이동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 같아요.

동명숙 = 어쨌거나 저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출해서 그런지 다른 자유 문제도 심하지만 먹고사는 게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 보장 책임을 아예 부정하고 있잖아요. ‘자력갱생하라,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라’면서 ‘죽고 사는 것은 너희들 능력에 달렸다’고 합니다.

- 인권 개선이 안되는 이유는 뭘까요.

김영주 = 간단하죠. 주민들이 어떤 걸 당하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니까, 들고일어나지 않으니까 인권이 개선될 여지가 없죠.

박요셉 = 과거에 북한에서 홍명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임꺽정>을 많이 보여줬어요. 부패한 봉건사회 관가를 향한 농민봉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인가 김일성(주석) 죽고 나서 안 나옵니다. 북한 당국이 느끼기에 사회 체제가 <임꺽정>의 배경과 맞아서 그런 거 같습니다. 인권 개선이 안되는 이유는 첫째로는 북한 체제 때문이고, 둘째로는 인권 의식이 낮아서죠. 셋째는 외부 정보가 들어가지 않아 비교를 못하기 때문이에요.

최장현 = 1990년대 말 노동신문에 이런 게 났어요. 미국 등에서 인권 압박을 하니까 ‘우리식 인권’이라고 했죠. 미국이 인권을 압박하는 건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대학 때 외우게 했어요. 자유권을 든든하게 방어해서 일제 때처럼 식민지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요.

박요셉 = 북한에 전체주의적인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개인적 자유는 없습니다.

- 요즘 휴대전화 보급도 100만대를 넘었다던데요.

최장현 = 북한을 우물에 비유하면 돼요. 우물 안의 개구리끼리 얘기해봤자지요. 이집트 혁명이 일어났던 것도 그쪽 사람들은 외부와 인터넷을 할 수 있으니까 가능했잖아요. 북한은 국내용 인트라넷만 허용해요.

박요셉 = 배가 덜 고프면 인권문제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김영주 = 그전(김일성 시대)엔 잘살았잖아요.

박요셉 = 전엔 중국도 인권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잘사니까 인권 생각을 하지요.

- 보수진영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 방식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장현 = 삐라 뿌리는 건 반대예요. 효과가 없다고 봐요. 만약 북한 주민들이 봤다고 해도 이미 (북한 당국에 의해) 많이 세뇌당해 효과가 별로일 거고 황해도 쪽 사람들은 외부 정보를 아예 몰라요. 또 농촌 사람들은 컴퓨터는커녕 전기도 없는데 USB 같은 거 뿌려서 어쩌겠다는 건지.

김영주 = 난 효과가 있다고 보는데요. 전에는 삐라 뿌리기를 완강히 반대했는데, 그래도 계속 들어가다보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완전히 안된다는 건 없어요.

박요셉 = 보수의 방식은 젊은층에는 반감이 들 것 같아요. 보수단체 사람들이 전철역 앞에서 북한군복 입고 포승줄 묶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젊은 사람들은 무서워하며 피하더라고요. 삐라 뿌리는 것도 똑같아요.

최장현 = 책 같은 거 많이 들여보내주세요. 거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요. 나는 몰래 들여온 서적들 봤어요. 민주주의가 이런 거구나, 생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좋아했어요.

- 북한 정권 붕괴가 인권 개선의 답이라는 주장도 많아요.

박요셉 =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기 때문에 절대 못합니다. 북이 무너지면 다 될 것 같아요? 아니에요.

동명숙 = 북한 주민들의 남한 인식도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개성공단 근로자가 5만명입니다. 개성공단 하나로 먹고사는 거예요. 여기 와서는 하잘것없지만 북한에서는 거기에 보위부, 안전부 등 ‘빽’ 있는 사람들만 들어가 있습니다.

김영주 =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퍼주기만 했다고 하는데 (그때) 북한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은 북한 입장에선 땅을 내준 거나 같은 거예요.

최장현 = 남포, 청진 항구도 마찬가지예요. 아는 형이 한국 사람 만나서 담배, 달러도 받고 통일 이야기도 했대요. 그러면서 ‘남조선 괴뢰들이 성격도 나쁠 줄 알았는데 참 좋더라’고 했어요.

- 여당의 북한인권법은 실효성이 있다고 보나요.

동명숙 = 탈북자 단체들 먹여살리겠다는 거 같기도 해요.

최장현 = 효과가 있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하면 ‘종북’이고 찬성하면 ‘애국’이라고 하는 게 문제죠.

- 탈북자 사회에서 보수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지 않나요.

박요셉 =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 발언 논란이 있었을 때 백요셉씨도 잘못했다는 글을 올렸는데, 한 교회 장로님이 페이스북에 ‘왜 이런 글을 올려서 큰 혼란을 일으키느냐’고 했어요. 국가보안법이나 대북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데 사상 검증을 받는 것 같았죠. 탈북자는 당연히 보수 성향을 가져야 하는데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이야기를 한다는 거겠죠. 북한 사회가 싫어서 왔고 여기는 언론의 자유가 있는데 왜 간첩·종북 검증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김영주 = 나랑 생각이 너무 비슷하네요. 이게 젊은 탈북자 사회의 분위기예요.

박요셉 = 보수냐, 진보냐는 생각을 가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보수에서 많이 도와주니까 탈북자들은 ‘보수가 내 친구구나’라고 생각해요. 북한인권법안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하는 어떤 인사가 ‘박원순 시장 후보는 빨갱이’라고 했어요. 왜 빨갱이인가요.

최장현 = 탈북자의 사회적 인식을 가지게 하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해서 교회 목사님이나 무슨 단체 회장 등인데, 주입교육 받는 게 많아요. 젊은 탈북자들은 여러 가지 책도 읽고 하는데 어른들은 박원순 빨갱이라고 하면 ‘아멘’ 하는 거예요. 수령님 교시처럼 목사님 말씀을 따르게 됩니다. 남한 사회도 경험해보고 해야 하는데 전혀 안된 상태에서 극단적 성향이 됩니다.

동명숙 = 기존 탈북자들은 삐라를 뿌리든 뭘 하든 잘나가는 사람만 조명을 받았는데 젊은 탈북자 목소리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어디 감히 탈북자 주제에 국민의 권리 운운하느냐는 사람도 있어요.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김정일 죽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계속 물어봐서 미치겠습니다. 마치 탈북자 전체가 삐라 뿌리기를 하는 것인 양 비추니 20~30대 탈북자들이 얘기할 공간이 없어요.

김영주 = 자유의 땅이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탈북자라는 그물이 쳐져 있더라니까요.

- 북한에 지원한 물품이 전용된다고 하는데요.

동명숙 = 유엔이 탁아소, 유치원, 영유아 시설에 배정하도록 한 쌀, 콩기름, 밀가루가 청진항에 있었어요. 유엔 사람들(조사단)이 사진 찍고 간 뒤에 호위국 차가 와서 가져갔습니다. 사람들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어요.

최장현 = 국제기구가 지원해주는 양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지원 양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북한 입장에서 한국의 지원은 선택사항일 뿐이죠. ‘너희들이 안 해도 국제사회에서 많이 받으니까’라며 자존심 싸움을 하는 거죠.

- 진보진영은 그래도 인도적 지원이 우선이라고 하죠.

김영주 = 북한 인권 얘기한다면서 지원을 꺼리면 모순이지요.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면 대북 지원을 해야죠.

최장현 = 아예 지원을 안 해주면 주민들을 수탈할 겁니다. 장세도 올라갈 거고. 북에서 대한민국이라고 포장에 찍힌 쌀을 봤어요. 지원한 것이 다 배급은 안되더라도 시장에 쌀값이 떨어지는 것만 해도 어디에요.

김영주 = 그것도 얼마나 큰 도움입니까. 인권을 말하기 전에 우선적인 게 뭐냐를 알아야 해요. 옆집 사이에 먹을 것도 주면서 똑바로 하라고 해야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비판만 하면 더 엇나가죠. 남한이 통일을 이루겠다 하면 직선만 있는 게 아니에요. 좌회전, 우회전, 후퇴 등등…. 그래야 넘어오는 거죠. 어렵게 생각할 것 없지요. 같은 한반도라도 왜 절반은 굶어야 하나요.

- 진보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보나요.

동명숙 = 솔직히 북한 정권이 나쁜 건 다들 아는데 ‘나쁜 놈’이라고 백날 얘기한다고 듣겠습니까. 그건 똑 부러진 대응법이 아니라고 봐요. 북한이 반성하고 바른 길로 들어서게끔 개선책을 얘기해야죠. 진보는 북한과 화해의 악수를 해야 한다고 그동안 너무 소극적이었어요. 진보가 나서서 주민의 삶이 실제로 개선되도록 하라고 진정성을 가지고 요구한다면 그걸 북한 정권이 내정간섭이라고 ‘딴지’만 걸기는 어려울 겁니다.

■ 2030 탈북자 4인

박요셉씨(31)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4년 혼자 들어왔으며, 현재 수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최장현씨(28)는 평양에서 함북 청진으로 쫓겨난 가족과 함께 2007년 탈북해 이듬해 남한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공장 지배인 출신이다. 함북 청진 출신인 동명숙씨(35)는 고난의 행군(1994~1998년) 시기에 탈북해 2002년 입국했다. 지난달 1일 서울공항의 에어쇼 전날 느닷없이 청와대 경호처가 탈북자란 이유로 참석을 불허해 논란을 빚은 당사자다. 당 간부 아버지를 뒀던 김영주씨(34·가명)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2006년 가족과 함께 남한에 들어왔다. 참석자 2명은 본인들의 요청에 따라 얼굴 사진을 가렸다. 그중 1명은 가명을 사용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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