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이직 40세 중기 직장인의 고된 삶

2013.01.01 22:07 입력 2013.01.02 00:47 수정
김여란 기자

나은 삶 찾아 대기업 사표… 옮겨봐도 흡수합병에 도산

“애인이 연봉 물을까 걱정”

연봉 3000만원을 받는 마흔 살 노총각 박진우씨(가명). 경기도에 사는 그는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4시간씩 걸려 서울의 한 중소기업으로 출퇴근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5년째, 그는 지금 7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하반기 취업전선은 붕괴됐다. 서울의 한 공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박씨의 과 동기생들은 대기업 채용이 결정됐으나 위기가 닥치자 줄줄이 합격 취소통보를 받았다. 동기생 80명 중 취업한 이는 그를 포함해 둘뿐이었다.

박씨는 “당시 삼성이 1000명을 뽑으면서 기존 직원 1만5000명을 해고했다고 들었다”며 “입사하고 공장에서 생산 기술업무를 맡았는데 한 라인에 속한 수십명 중 정규직은 1~2명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입사 두 달 만에 사표를 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근로자들은 치열한 경쟁과 격무에도 불구하고 고용 불안정과 양극화에 내몰리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안정적 고용을 담보하는 대안의 경제, 사회적 경제가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한 중년 남성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근로자들은 치열한 경쟁과 격무에도 불구하고 고용 불안정과 양극화에 내몰리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안정적 고용을 담보하는 대안의 경제, 사회적 경제가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한 중년 남성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느 선배가 하루는 집에 일찍 갔더니 아이들이 아버지를 못 알아보고 누구냐고 물었대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어요.” 삼성전자의 노동강도는 듣던 그대로였다. 여기서 일하면 돈 모아 가정을 꾸리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만, 일 외의 삶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싶었다.

박씨는 “지금이라면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그때보다 2~3배는 더 벌어졌어요. 1999년에는 대기업이 일은 2배 많지만 임금은 20~30% 높았으니까 정 싫으면 나올 법도 했던 거죠.”

이후 박씨는 하고 싶었던 영상 관련 일을 1년 반쯤 하다가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 후 10년간 4번이나 이직해야 했다. 가는 곳마다 다른 기업에 흡수 합병되거나 망한 것이다. 박씨가 다니던 코스닥 상장기업을 사서 코스닥 우회상장을 하려는 기업에 사장들은 미련 없이 팔았다.

“이득이 나기도 힘들지만 나더라도 제품 잘 만들거나 마케팅하는 데 투자할 생각을 안 해요. 대기업 아니면 어차피 힘드니까. 사장들이 돈 굴려서 돈 벌려고 하니까 주가 뻥튀기하고 회사 팔아넘기는 거죠. 직원 복지, 고용은 뒷전일 수밖에요.”

그때마다 박씨는 살아남았지만 2009년에는 넘어간 회사에서 그가 일하던 부서가 통째로 사라졌다. 박씨는 “회사가 바뀔 때마다 해고되는 동료들을 봐 왔으니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고 했다. 석 달간 놀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의 회사로 옮겼다. 현재 회사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원청 업체가 요구하는 무리한 납품 방식과 일정이다. 박씨는 “원청에 거의 공짜로 일해줘 보람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국같이 큰 클라이언트도 하청업체에 약속한 돈을 덜 주거나 결제일을 안 지키는 걸 당연시해요. 그러면서 납품 일정이 빡빡하니까 직원들은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죠. 사장은 원청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공짜나 다름없는 일을 계속 가져오고 직원들을 볶는데 야근, 특근 수당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도 하청을 주는 업체에 똑같이 굴어요.”

조각 난 11년차 경력에 평균 근속기간 3년이 안되는 박씨는 지금 회사에서 지난해 과장을 달았다. 승진 후 연봉이 25% 올라서 3000만원이지만 5년 전에 받던 것과 같은 수준이다. 4~5년째 연봉이 동결된 동료들도 수두룩하다.

“넌 돈만 있으면 다 좋은데.” 10년 전 헤어진 첫 여자친구의 말은 박씨 가슴에 박혀 있다. 그가 여자를 만날 때마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돈이라고 했다.

“지금 애인은 아직 연봉을 묻지 않았는데 솔직히 걱정돼요. 정은 잔뜩 들었는데 이런 문제로 헤어지게 될까 싶고…. 첫 직장 그만둘 때, 작은 회사 가서 월급 조금 받으면 결혼 못하려나 얼핏 생각하기도 했죠.”

박씨는 “외환위기 이전과 지금은 딴 세상 같다”며 “이전에는 사회에, 사람에게 꿈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돈이 최고가 됐다”고 말했다. “다들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른 채 돈을 좇지만, 운좋은 몇 사람을 빼고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해요. 그렇다고 대세인 경제권력에 맞설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박씨는 지금 다니는 회사 역시 망가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늘 갖고 산다고 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다 느끼는 건데, 세상엔 마치 대기업밖에 없는 것처럼 중소기업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종 회사를 그만두고 좋아했던 번역일을 해볼까란 생각도 하지만 스스로도 막연한 꿈같이 느껴진다.

“차라리 외국에 나가서 비정규직 알바를 하며 살까 하는 생각도 해요. 거기선 최저시급으로도 밥 두 끼는 먹으니까.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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