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될 수 있는 대학 캠프 학생들에 독려

“내가 홍보맨인가” 교사로서 심한 자괴감

서울의 사립고에서 ‘1학년 부장’을 맡고 있는 전용현 교사(42·가명)는 지난 3일 기자를 만나 “못해먹겠다”고 말했다. 교사로서의 가책이 크다고 했고, 심한 자괴감도 호소했다. 대학들이 쏟아내는 각종 캠프의 “홍보 도우미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 전략논문 아카데미 95만원, ○○대 미래경영자 스쿨 70만원, ○○대 푸른나무 과정 45만원, ○○대 ROTC 주관 리더십 콘퍼런스 40만원, ○○대 창의수학 캠프 28만원, ○○대 생명과학 체험학습 프로그램당 12만원….

전 교사가 지난해 2학기에 학생들에게 알린 대학 캠프는 기억나는 것만 15가지다. 과학관 등에서 진행하는 주말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20개를 훨씬 넘었다. 대학에서 오는 공문은 방학을 앞둔 지난달 초 더 많아졌다.

전 교사는 한 달에 3번 정도 1학년 학부모들에게 알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학생들의 ‘스펙’이 될 수 있는 캠프를 적극 홍보하라는 학교 지침 때문이었다. 캠프 정보는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교사들에게도 반 게시판에 꼭 게시하도록 했다.

“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한 줄 넣을 스펙과 겉포장을 하는 것이죠.”

전 교사는 짧은 것은 3~4일, 길어도 1~2주 참가하는 수십만원대의 고액 캠프들이 얼마나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짧은 방학에 캠프 2~3개를 훑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딱한 생각도 든다. 그는 “1·2학년 때 열심히 했다가 3학년 때는 뭐했느냐는 소리가 나올 수 있어 바쁜 3학년들도 스펙쌓기 고민은 계속된다”며 “특히 캠프를 여는 대학에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내리 4년간 고3 담임을 한 그는 지난해 1학년 부장을 맡으면서 입학사정관제 바람을 느꼈다. 저학년 때부터 학교도 권장하고 관심을 갖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교사나 학부모 사이에선 ‘공부만 열심히 한 학생은 명문대에서 떨어지고, 캠프나 각종 스펙을 쌓은 아이들이 합격했다’ ‘입학사정관제는 교내활동만 입력하도록 돼 있지만 외부활동을 빵빵하게 쓴 애들이 결국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왜 다른 학교는 다양하게 스펙을 만들어주는데 안 하고 있느냐”고 원망하는 학부모도 만났다.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방학 때 대학 교수들 수입원을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교사들의 비아냥이 있지만, 입학사정관제 바람에 묻힌다고 했다.

“캠프를 공지할 때 학부모에게 가격까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걸 알기에 정보를 전하면서도 정말 찜찜해요.”

전 교사는 “캠프 참가자는 주로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갈 만한 아이들 중에, 경제적 능력도 중산층 이상이 되는 집”이라며 “강남·목동 등에서 진학담당을 하는 선후배 교사들을 만나봐도 부모가 교우회장,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부유층 자녀들이 입학사정관제에 많이 도전하고 합격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여유와 돈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유용한 ‘입시 카드’가 하나 더 던져진 셈이다. 정작 비합리적인 것을 목도하면서도 ‘캠프 홍보맨’으로 살고 있다는 그는 “유체이탈되는 이 상황을 빨리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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