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에필로그

2014.02.21 20:44 입력 2014.02.21 22:25 수정
천정환 |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모순 속에서도 성장한 민주주의,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

■ 유신의 모더니즘, 그리고 오늘

이 연재는 ‘박정희부터 선데이서울까지’ 즉 1970년대의 정치·사회·문화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고, 박정희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흘러넘치는 이 땅의 오늘을 헤쳐나갈 지혜의 일단을 함께 도모하고자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 글들을 통해 얼마나 멀리, 저 전형화된 1970년대에 대한 서사와 이해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 시대의 사회나 문화를 오늘의 모순에 닿은 물결의 저류로서 이해하며 새롭게 읽으려 애썼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통치성, 대중문화의 성장과 민중의 저항, 유신의 생체정치와 성정치, 1970년대적 지성의 새로운 양식 등을 탐구하려 했다. 그러나 지면의 제약과 능력의 부족으로 그 시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또 다른 항목들인 미디어, 성, 스포츠, 코미디, 스펙터클, 마약 같은 항목은 다룰 여유가 없었다. 추후 다른 기회를 통해 이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치 부활로 단순히 환원할 수 있을까. 유신시기와 지금을 비교해 무엇이 다른지 잘 파악하고 실천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사진은 1975년 10월 유신 3주년을 맞아 열린 ‘총화유신국민대회’(위쪽)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치 부활로 단순히 환원할 수 있을까. 유신시기와 지금을 비교해 무엇이 다른지 잘 파악하고 실천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사진은 1975년 10월 유신 3주년을 맞아 열린 ‘총화유신국민대회’(위쪽)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세상에서 가장 ‘비정상’이었던 ‘유신’

애초에 필자들이 생각한 연재 제목은 ‘유신의 모더니즘’이었다. 고대 중국인이 만들고 근대 초 일본인들이 다시 쓴 것을 수입한 단어인 ‘유신(維新)’은 후진성과 군국주의, 근대화와 반민주의 상징어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정상’인 게 있었다면 바로 ‘유신’이다. 그것은 총체적인 억압과 착취, 개인성 말살의 기호이다. 그래서 ‘유신’의 정체(政體)란 일종의 정치적 쓰레기나 암흑의 대명사로 간주된다. 물론 우리 사회 일각에는 그런 것조차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 국가주의자도 여전히 많다. 그런데 그 따위 쓰레기나 암흑에도 모더니즘이 있는가? 있다.

그것이 유신시대와 모더니즘의 비밀이라 생각한다. ‘유신과 오늘’을 이해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세 가지 관점을 제안하고 싶었다.

첫째, 박정희가 추진하고 달성한 근대화·산업화는 단지 일국 수준에서 이뤄진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의 근대화·산업화는 미국의 중재(간섭)로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식민통치 36년의 고통을 3억달러에 ‘퉁치고’ 일본 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그리고 미국의 용병으로 수천 생령의 목숨을 월남의 전장에 갖다 바침으로써 비로소 시동이 걸릴 수 있었다. 즉 근대화·산업화란 애초에 세계 분업체제에의 편입과 ‘서구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국제시장뿐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그랬다. 후기식민국가의 두령이었던 박정희는 제 필요에 따라 민족주의자 코스프레를 했다. 특히 유신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68혁명 전후 ‘우드스탁’이나 비틀스로 상징되는 급진적인 청년문화와 세계적인 문화적 조류가 한국에도 일부 유입되자 주체성과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검열체제를 옥죄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막지는 못했다. 한국 청년들도 히피처럼 머리를 기르고 진바지를 입고 존 레넌과 레드 제플린을 들었다.

하길종은 미국에서 영화를 배워와서 청년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만들었고 신중현은 한국 록을 꽃피웠다. 이문구가 <우리 동네>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잔존하던 전통사회가 붕괴하고 일상적 삶의 양식은 근저로부터 서구화되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근대화’ 과정과 등가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둘째, ‘유신’은 ‘한 사람을 위한 체제’가 아니었다. 유신체제가 비정상적 헌정체제였음에도 8년간 유지된 것은, 또 반대로 전체주의 뺨치는 철권통치에도 불구하고 8년 만에 끝장난 것은 오로지 국민-대중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국민-대중은 박정희 체제가 근대화와 경제성장, 그리고 복지를 이루는 데 효율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해주었다. 이 동의를 정신이 나가버린 박정희는 자신의 영구집권체제로 횡령하려 했다. 그러나 유신체제는 박정희의 욕망대로 영속되지 못하고 내부로부터 붕괴했다. 알다시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자신의 보스에게 총을 쏴버림으로써 유신은 끝났다. 그러나 그 일은 부산·마산 민중의 저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혹자들이 말하듯 김재규는 ‘의인’도 ‘혁명가’도 아니었다. 김재규는 자신의 은인이자 절대권력자를 쏘아 죽인, 정치학적으로 흥미롭고 놀라운 일을 실행했으나 그가 불완전한 그의 ‘의(義)’와 ‘혁명’을 사유한 것은 총을 쏘기 전이 아니라 보안사 감옥에 가고 난 뒤부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혁명’에 대해서 고교생보다 못한 유치한 사유를 갖고 있었다. 김재규를 의인으로 만든 것은 결국 전두환과 계엄령 하의 군사법원이다. 따라서 오히려 아쉬운 것은 김재규가 그렇게 어설프게 박정희를 처단하는 바람에 한국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박정희를 물리칠 중대한 역사적 기회를 잃고 또 다른 ‘유신 본당’인 전두환이 권력을 탈취하게 됐다는 점, 그리하여 ‘민주화’가 또 7년 뒤로 연기됐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오늘날 한국 정치의 퇴행과 유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착시 또는 오류라 생각한다. 10년 전쯤을 돌이켜보면 좀 놀랍다. 한국사회는 그때보다 하나도 좋아지지 않아 이런 것을 ‘퇴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민주정권의 실패와 이명박의 등장이 민주주의에 대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신념과 성취를 상당 부분 망쳐놓았다.

그러나 아무리 나빠도 유신 시절에 직접 비교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분명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불가역적인 발전을 했다. 그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욕망의 강도가 커지고 폭력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자라났다는 데 있다.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하다 해도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생활 양식이자 시민의 상식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고도로 발전한 한국 자본주의와 디지털화된 문화 자체가 그 토대이기도 하다.

■ 독재-민주 이분법 아닌 구조적 성찰 필요

그런데 예를 들어, 어느 진보정당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유신독재 반대’라는 구호가 걸려 있다. 이는 오늘날 ‘유신’이라는 정치사의 키워드가 오남용되는 대표적인 사례 같다.

물론 일부 정치권과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에 고장난 시계가 들어있고 바로 그 사람들의 의식이야말로 ‘유신’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해도 우리가 그 장단에 춤을 출 수는 없다. 막연히 유신 때와 지금이 비슷하다고 말하지 말고 뭐가 다른지를 잘 파악해야 더 나은 ‘실천’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박근혜 정권은 겨우 4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언제나 민주주의 전선이 있겠으나 ‘독재-민주’라는 이분법으로는 1970년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또 오늘의 모순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천주교 교단을 위시한 양심 있는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집권 과정에 작지 않은 하자가 있었으나 그 자체가 현정권의 정통성을 죄 부정하는 대중적 논리가 되기는 힘들다고 본다. 대중은 그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관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 최초의 하자가 더 중요한 다른 이유, 즉 이 정권의 사회경제적 한계나 실책과 결부될 때 대중은 단호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것은 새마을운동 수준의 낡은 인식과 미국식 혁신경제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을 뒤섞은 소위 ‘창조경제’와 대중을 기만하는 데 동원된 ‘경제민주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우리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대통령 개인의 한계보다 그런 대통령을 있게 만든 구조를 더 성찰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1970년대가 만든 발전과 모순 속에서 성장했다. 우리는 유신과 박정희의 하수인들, 즉 그 ‘꼬붕’과 별다를 바 없는 무기력하고도 못된 학교체제와 소심한 소시민인 부모들 아래서 자랐으나 민주주의자로 컸고, 지금도 괴로워하는 민주주의자이다. 민주주의자는 괴로워한다. 가진 돈이나 먹은 나이 따위에 함몰되지 않고 동료시민들과 함께,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사회를 고민해야 함을 생각한다. 또한 그런 고민이 역사를 보는 시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사나 민중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도 나이를 꽤 먹었다. 그런데 저 군복 입은 ‘어버이’들, 또 조로해 버린 수구 보수와 기득권을 누리는 486·586들, 그들이 우리를 청년으로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박정희나 그의 딸, 또 그를 맹종하는 배부른 사람들보다, 또 그 짝패인 소위 ‘백두혈통’ 김가 식솔과 그 수하들보다 훨씬 더 나은 민주공화국의 국민 아니 정의롭고 선한 한반도 주민이 되기를 꿈꾼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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